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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히로시마, 그리고 오사카까지... 아침 7시, 집을 나와 히로시마(広島)행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좌석에 앉자 바로 깨달음은 도면을 꺼냈고 난 라디오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약 4시간을 달려야 한다. 나고야(名古屋)를 가는 2시간 남짓시간도 지루했는데 3시간 49분을 가야 한다고 하니 잠을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각자 사 온 도시락이며 샌드위치를 꺼내 아침을 먹느라 분주한데 음식 냄새가 앞 뒤로 풍겨서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몇 번 뒤척이자 안 자는 거냐고 물었다. [ 쩝쩝 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 볼륨을 좀 더 높이지...] 음악소리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잡음들이 많아서 너무 예민한 내 감각기능과 신경계가 조금만 무뎌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도착하면 바로.. 2021. 12. 13.
자기 인기에 취해 사는 남편 깨달음 겨울용 양복을 맞췄다. 크리스마스 선물 겸 깨달음이 현역 생활을 하는데 마지막 양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가장 좋은 원단으로 골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깨달음이 너무 비싸다고 망설이길래 마지막까지 멋진 양복 입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라고했더니 그런 뜻이였냐면서 순순히 수치를 쟀다. 재단사분이 작년 여름에도 한 벌 맞추지 않았냐며 허리둘레가 1센티 줄였다고 하자 허리는 다이어트하느라 줄은 것이고 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여름용으로 한 벌 맞췄는데 이젠 양복 맞추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버튼과 안감까지 고르고 수납장이 배달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바로 백화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릇 욕심이 많은 것도 있고 파티용 그릇들을 세트로 사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해 새로 주.. 2021. 12. 10.
감사는 감사로 표현하는 것 2주전,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연어가 한 마리 날아왔다. 홋카이도가 고향이 아이(愛) 짱이 보내온 것이다. 나와 전공은 달랐지만 연구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친하게 되었고 그녀는 졸업을 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작가활동을 하면서 1년에 한두번은 전시회나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도쿄를 찾았다. 내가 연어구이를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가끔 이렇게 아무 소식이 없다가 한 마리씩 보내온다.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더니 마침 일이 있어 겸사겸사 도쿄에 올 일이 생겼다길래 식사 약속을 했다. [ 왜 이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그런 거야? 내가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 [ 케이 짱 집하고 가깝고 나도 이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서 여기가 제일 편할 것 같아서 ] 코로나 전에 만나고 이제 보니 벌써 횟수로 3년이 지났다며 그간.. 2021. 12. 8.
자식들도 실은 조금 힘들다 새벽 4시 반부터 깨달음 방에서 소리가 났다. 불이 켜진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출장을 가기위해 가방을 미리 싸 둬야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자버린 바람에 아침에 짐을 챙기는 중이라고 했다. [ 아침은 어떻게 할 거야? ] [ 역 앞에서 먹을 생각이야 ] 속옷과 양말을 넣고 있는 깨달음 얼굴이 살짝 부어있었다. 현관을 나서는 깨달음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자 [알았어요]라고 한국말로 대답했다. 히로시마에서 (広島) 오픈을 앞둔 빌딩의 최종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검사를 마시면 바로 시골( 이가-伊賀)로 내려갈 예정이라 했다. 시댁 집이 팔린 이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서방님과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뭐가 시원치 않은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오전이면 검사가 끝날 거라 했는데 오후가.. 2021. 12. 6.
당연한 것에 감사하기 [ 깨달음, 11월도 수고했어 ] [ 당신도 수고했어 ] 내가 사주는 술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깨달음은 과하게 밝은 표정을 해 보였다. 매달 월급날이면 내가 깨달음에게 식사를 사는 게 국룰?처럼 정해진지 언 10년...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되는데 나보다 수입이 두배로 많은 깨달음에게 뭔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길 잘했다고 매번 느낀다. [ 이 와인,, 진짜 맛있다 ] [ 한 달간 변함없이 수고해줘서 고마워 ] [ 당신은 집안일까지 해주니까 내가 더 고마워 ] 우린 연말 스케줄을 서로 묻고 답하다가 내년 계획도 조금씩 얘기했다. [ 근데.깨달음, 외식은 오늘이 마지막으로 하자 ] [ 왜? ] [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가 오늘 또 발생했잖아 ] [ 그렇.. 2021. 12. 2.
일본의 코리아타운 모습의 요즘 주말 오후, 신정 선물을 주문하기 위해 오다큐 백화점(小田急)에 갔다. 깨달음이 해년마다 추석과 신정 선물을 이곳에서 보내는 이유는 다른 곳보다 연배들이 좋아하는 선물이 많아서라고 한다. 예전에는 각종 선물코너가 따로 배치되어 실물을 보고 부과설명까지 들으며 선택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시대에 맞게 상품 사진으로만 벽면을 채워놓았다. 깨달음이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는 동안 난 지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몇가지 골랐다. [ 다 골랐어? ] [ 응 ] [ 한국에 보낼 것도 골랐어?] [ 응 ] [ 이거 신청 끝나면 어디 갈까? ] [ 영화를 한편 보면 좋은데 예약을 안 해서 좌석이 없을 것 같애...] [ 나, 영화 안 볼 거야, 집에서도 볼 게 많은데 ] [.............................] .. 2021. 11. 29.
일본인들이 송년회를 싫어하는 이유 이곳은 어제 근로감사의 날로 휴일이었다. 바쁜 깨달음은 아침 일찍 회사를 갔고 난 관상용새우들이 너무 번식을 많이 해서 수조에 넘쳐나길래 치비 몇 마리만 남겨두고 모두 잡아 아쿠아센터를 다녀왔다. 점장님은 언제나 내가 가져오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신기해한다. 이렇게 번식을 잘 시키는? 일반인은 드물다며 뭘 키워도 잘 된다고 칭찬을 하신다. [ 지금 몰리(열대어 종류)도 새끼 12마리나 낳았어요. 키워서 또 가져올게요 ] [ 정말 대단하시네 ] [ 그래도 해수는 실패했잖아요,,,] [ 해수가 은근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시면 잘하실 것 같은데요..] [ 그냥,, 지금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깨달음이 일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만났다. [ 오늘 일은 끝.. 2021. 11. 25.
요즘 남편은 행복하다 주말에도 깨달음은 회사에 나가 도면을 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갑자기 일이 밀려들 때면 깨달음은 주말이나 휴일 상관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지금껏 휴일에도 바쁠 땐 일을 우선으로 하는 깨달음 스타일에 한 번도 불만을 갖지 않았던 나는 오늘도 샌드위치 도시락을 챙겨주었고 깨달음은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후 4시, 나는 집에서, 깨달음은 회사에서 출발을 해 만난 곳은 토리노이치(酉の市)가 열리는 신주쿠(新宿)의 하나조노 신사 (花園神社)였다. 토리노이치(酉の市)는 애도 시대 때 중국에서 농민들을 위해 올리던 수확제를 기원으로 매년 11월에 진행되는 축제이다. 근대사회에 넘어오면서 사업번창을 목적으로 곰발바닥 모양으로 생긴 쿠마테 (熊手)을 판매하는 축제가 되었다. 복을 .. 2021. 11. 22.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고봉밥을 받기 전에 미리 반 만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깜빡 잊였다. 남기면 되는 일이지만 직원을 불러 반 만 부탁한다고 했다. 깨달음과 가끔 왔던 곳인데 오늘은 혼자 들어와 느긋이 점심을 즐겼다. 임파선 정기검진이 있었다. 그리고 부인과에 들러 선생님과 좀 긴 대화를 나눴다. 갱년기가 이제 끝나갈 무렵이어서 잠잠해졌다 싶었던 홍조와 발한 증상이 한 달 전부터 두시간 간격으로 나타나는데 그 때마다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땀이 나고 몸이 더워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갱년기에 겪는 호르몬 이상으로 잠시 그러고 말겠지했는데 발한이 너무 심했다. [ 선생님, 요 몇 달간 밤에 잘 잤었는데 새벽에 또 한번씩 깨기 시작했어요 ] [ 깨고 나면 어느정도 있다가 다시 잠이 드세요? ] [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 2021. 11. 18.
갑자기 한국 이름을 만든 깨서방 5년 전 사서 딱 한번 사용했던 재봉틀을 버리기엔 약간의 미련이 남았지만 그냥 스티커를 붙였다. 여름용 좌식의자도 너무 멀쩡한 상태이지만 버리기로 했다. 깨달음은 오전 내내 자기 방에서 도면을 치느라 거실로 나오지 않았고 난 쓸데없는 것들, 아니 3년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마음이 심란하고 생각들이 얽힐 때면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청소를 하거나 무언가를 비우고 정리를 하다 보면 버리다 보면 어느샌가 머릿속도 비워져 개운해진다. 버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적당히 골라 재활용품을 내놓으러 밖으로 나가면서 미니멀 라이프까진 아니라도 호텔처럼 심플하고 깔끔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깨달음은 나와 반대로 잡다구리 한 물건들이 많고 버리지를 못해 보고 있으면 차곡차곡 채워진 상자들에 .. 2021. 11. 15.
마지막 나눔이 될 것 같아요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아마존에서 맥주가 배달되었다. 발송인이 적혀있지 않아 도대체 누구인지 내 지인과 깨달음 지인들을 찾다가 못 찾고 송장번호로 아마존 홈피를 검색하는데 깨달음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알아냈다며 나카무라 (中村)라고 했다. 지난달 내가 김치를 담아 친구들과 지인에게 나눔을 하고 난 뒤, 뒤늦게 깨달음이 혼자인 친구에게도 보내고 싶다고 하길래 월요일날 한국 김과 함께 챙겨 보냈던 분인 나카무라 상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오사카(大阪)에 살고 있고 홀로 도쿄에서 지내는 기러기 아빠인데 깨달음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혼자 산지 20년이 넘어서인지 정말 늙어 보인다며 만날 때마다 짠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당신에게 너무 고맙다면서 해외여행 못 가니까 각국의 맥주를 보낸 거래 ] .. 2021. 11. 11.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오랜만에 자주 애용했던 중화요릿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손님들이 기다리는 걸 보니 다들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 감염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지금껏 발길을 끓었던 레스토랑을 하나씩 다시 찾으려 오늘 온 것인데 역시나 맛집은 사람들이 많다. 쇼코슈(紹興酒)를 주문하고 월 12월부터 실시한다는 부스터 샷에 관한 얘길 했다. [ 깨달음, 당신도 맞을 거지? ] [ 응, 당연하지, 당신은? ] [ 나도 맞을 생각이야 ] 내년이면 한국을 포함, 조금씩 해외여행도 자유로워질 거라며 그렇게 되면 예전의 생활로 서서히 되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서는 한국 마스크를 .. 2021. 11. 8.
그녀는 살고 싶어했다. [ 깨달음, 저녁은 뭐 먹을 거야? ] [ 당신 몇 시에 약속이라고 했지? ] [ 5시, 4시 반에는 나가야 돼 ] 뭘 먹을지 약간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 라면만 있으면 돼? ] [ 응, 근데 그 냄비에 끓여줘 ] [ 알았어 ] 예전부터 깨달음이 사고 싶어 했던 라면 전용? 양은냄비를 블로그 이웃님이 보내주셨다. 집에 냄비가 많은 것도 있고 양은냄비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 사지 않았는데 깨달음이 한국 식당에 가면 양은냄비에 나오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면서 항변을 하길래 라면 전용 냄비로 사용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김밥도 한 줄 말아 라면정식을 차려주고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문화의 날로 공휴일이어서 깨달음과 영화를 한 편 볼 .. 2021. 11. 4.
누가 남편을 일본인이라 할까. 오전 내내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깨달음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 뭐 해? ] [ 책 봐 ] [ 우리 밖에 나갈까? ] [ 어디? ] [ 시장에 ] [ 왠 시장? 뭐 살 거 있어? ] [ 아니. 그냥,, 사람들 구경하러...] 쯔키지 (築地)시장은 이미 영업이 끝났고 다른 재래시장은 우에노(上野)밖에 없는데 굳이 쇼핑할 것도 아니면서 가야 하는 이유가 뭔지 다시 물었더니 살 게 생겼다고 했다. 한국 같으면 재래시장에서 이것저것 살 게 많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살 것도 없어 그냥 시장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찾는 곳이 바로 이곳 우에노 아메요코(アメ横)이다. 한국과 별.. 2021. 11. 1.
그래서 결혼을 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고 흩날리는 오후, 우린 신주쿠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가면 갈 수있는 거리였지만 갑자기 기온이 뚝하고 떨어진 탓에 찬바람이 매서웠다. 로비에 들어서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니 그 날의 기억들이 고스란이 떠오르면서 왠지 설레었다. 간단히 축하주만 한 잔씩 하고 나올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괜찮아 코스를 부탁했다. [ 왜 우리가 여길 그동안 안 왔지? ] [ 음,, 이쪽으로 올 일이 거의 없었지 ] [ 근데 하나도 안 변했다.., 그날, 입구에 우리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호텔을 정확히 11년 만에 다시 찾았다. [ 축하합니다 ] 와인을 한 모금 하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깨달음도 생각이 많아졌는지 아무 말 없다. [ 깨달음.. 2021. 10. 28.
일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김치 주말이면 깨달음은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어 한다. 숯불갈비를 먹으러 갈까 망설이다 최근 건강다큐를 본 게 기억났는지 굽는 것보다는 삶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보쌈을 먹자고 했다. 보쌈을 먹으려면 생김치가 있어야할 것 같아 마트에 갔는데 배추가 엄청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 깨달음,, 좀 넉넉히 사서 담글까? ] [ 나야 좋지만 당신이 힘들지 않아? ] [ 어차피 보쌈용 김치 할 거니까 ] 김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담는 김에 담아두자는 생각이였는데 막상 배추를 씻고 절이고보니 너무 많이 사 온 것 같아 약간 후회했다. [ 깨달음,, 보쌈 오후에나 먹겠는데 ..] [ 괜찮아 ] 내가 배추를 씻는 동안 깨달음에게 깍두기를 썰어달라고 했더니 얌전히 아주 알맞은 사이즈로 잘 썰었다... 2021. 10. 25.
깨서방은 지금도 잘 하고 있다 백신 접종 증명서를 만들기 위해 구약소에서 깨달음과 만났다. 해외에 나갈 예정이 있는 사람들은 백신 페스포트(ワクチンパスポート)라는 공적증명서가 필요했고 여권도 함께 가져가야 했다 신청서에 기재를 하고 5분쯤 지나자 바로 증명서가 발급되었다. 여권에 증명 스티커를 붙여주는가 싶었는데 말 그대로 접종증명서라 적힌 A4용지였다. 1차, 2차, 접종일과 백신명, 번호가 적힌 증명서였다. 해외에 나갈 때 이걸 가져가면 되는 거냐고 확인하듯 깨달음이 물었고 직원은 그렇다고 했다. [ 핸드폰 접종 증명 어플( ワクパス)은 언제나 되나요? ] [ 그건, 저희가 잘 모르겠는데요..] [ 혹 그 어플에 등록하면 이 증명서는 필요 없는 거죠? ] 직원이 뒤쪽 상사와 무슨 얘기를 하는 듯하더니 10월 초부터 어플을 이용할 .. 2021. 10. 21.
남편의 생각을 듣다가... 11시에 집으로 오겠다던 공인 중개사분이 20분 전부터 집 앞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열심히 창문을 닦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받은 후 차를 타자마자 바로 오늘 보게 될 네 곳의 맨션 정보가 상세히 적힌 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일본에서 맨션 マンション 은 한국의 아파트, 아파트 アパート는 한국의 빌라를 칭함) 신혼이나 독신들이 살만한 평수와 역세권으로 포커스를 맞춰서인지 우리가 원했던, 아니 깨달음이 생각해 둔 위치와 평면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 집부터 조망권을 시작으로 여러 질문을 계속하는 깨달음 때문인지 긴장한 탓인지 공인 중개사분이 계속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지은 지 20년이 지나도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다며 관리업체가 어디인지까지 물으니 하나하나 .. 2021. 10. 18.
2년만에 시부모님을 뵙던 날-2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린 다시 시댁으로 이동했다. 전날 아버님이 부탁했던 것들을 좀 더 찾고 그것들을 아버님이 계시는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님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하셨던 것은 두 자식들의 성장이 담긴 앨범이였다. 당신 죽기 전까지 실컷 보고 싶다면서 깨달음에게 부탁을 했었고 그 외에 물건들은 모두 필요 없다 하셨다. 취미로 즐기셨던 사진 찍기를 위해 애지중지 하셨던 고가의 카메라도 다 버리라 하셨다. 꼭 남기고 싶은 게 그거뿐이냐고 두 번이나 깨달음이 물었지만 단호하셨다. 그래서 앨범을 찾기 위해 이층에서 아버님 책상 서랍을 꼼꼼히 살펴 사진들을 모았었다. 깨달음이 사진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어머님 옷장 서랍에 것들을 모두 꺼내 처리하기 편하게 봉투에 넣었다. 내가 결혼을 .. 2021. 10. 14.
2년만에 시부모님을 뵙던 날. 4년전, 부동산에 내놓았던 시댁 집에서 연락을 받았다. 시부모님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신 후, 매입자를 찾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팔리게 되었다. 다음 주에 매매계약을 하고 10월 30일엔 집을 철거 할 거라 했다. 서방님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린 집이 철거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가볼 생각으로 스케줄을 조절 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긴급사태도 해제되고 했으니 시부모님과의 면허가 허락될 거라 믿고 미리 전화를 드렸던 어제, 어머님이 계시는 요양원 측에서 어머님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 내에 오셔서 얼굴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신칸센은 빈좌석이 없을 정도로 승객이 가득했다. [ 깨달음,, 지난번 집 때문에 서방님이랑 통화할 때 어머님 얘기했었어? ] [ 아니.. .. 2021. 10. 12.
여전히 두려운 일본의 지진 어젯밤 진도 5강의 지진이 있었다. 수도권 전체가 흔들렸고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깨달음이 잽싸게 몸을 눕혔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진동이 컸다.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가 불연듯 떠올라 얼른 티브이를 켜 상황을 파악하는데 내 심장박동이 빨라져가고 있었다. [ 괜찮겠지? 깨달음..] [ 응,, 나도 몰라,, 일단 거실 보고 올게] 깨달음이 거실을 둘러 볼 동안 난 잠옷에서 외출용으로 갈아입고 양말까지 신었다. [ 왜 옷 입고 있어? ] [ 여진이 또 오면 피난처로 갈지 모르니까 ] [ 그러긴 하네..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겠네 ] 열대어들이 놀라서 다들 우왕좌왕하더라면서 넘어진 장식 인형들을 바로 세워뒀다고 했다. 도심에선 수도관이 파열되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정전이 되어 칠흑에 .. 2021. 10. 9.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아침 일찍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탈까 자전거를 탈까 잠깐 망설이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골절 부분은 잘 붙어서 문제가 없는데 여전히 걸을 때마다 왼발이 불편하다. 재활치료라고는 하지만 집에서 틈나는 대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굳어진 인대와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재활운동을 꾸준히 하고 안 하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말에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발가락을 움직일 때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사람을 희망 고문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슬슬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정각 9시에 도착, 차근차근 서류접수를 하고 강의실 자리에 앉았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일 것 같은 안전교육을 꼭 받아야 하는가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 2021. 10. 7.
일본의 위드 코로나 시대 지난 9월을 마지막으로 이곳은 긴급사태가 전면 해제되었고 위드 코로나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예전처럼 일상이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도 위드 코로나 (With Corona)시대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근 2년 가까이 가지 못했던 영화관을 찾았다. 007 영화는 꼭 스크린을 통해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억제하지 못해 집을 나섰다. 음료와 팝콘을 사려는 깨달음에게 마스크를 벗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그냥 참자고 말렸다. 지정석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깨달음이 오랜만에 와서인지 기분이 색다르다고 했다. 우리 앞 줄 건너편에 앉은 아저씨는 맥주캔을 가방에서 꺼내더니 조심히 티슈로 캔을 감싸며 상표가 보이지 않게 붙이고는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상영시간 2시간이 넘은 영화였지만 지루하지 않고 잘 .. 2021. 10. 4.
한국에 취업하길 원하는 일본 대학생들 지난 패럴림픽 보란티어를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대가 달라 늘상 같은 분들과 활동을 할 확률이 높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3일간 나와 함께 5시간씩 같이 움직였던 요시다(吉田) 상이라는 분이 계셨다. 요코하마(横浜)에서 오신다는 요시다 상은 올림픽 때도 보란티어를 하셔서인지 모든 게 익숙하셨고 미숙한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3일에 한 번씩 해야 하는 PCR 검사날, 검사 키트가 다 떨어져 다음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요시다 상이 다른 부서에 가서 일부러 가져오셨고 마지막 날은 선수촌 근처에 갔다가 찍었다며 한국인 선수 전용 운송차량 사진을 내게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대학생인 자신의 딸이 K-POP과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서 자신도 한국에 친근감이 생겼다고 하셨다. 주말.. 2021. 9. 30.
우린 한국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아침 일찍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어 코스트코에 들렀다. 이른 시간대는 쇼핑객들이 별로 없어 선호하는 우린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멈춰 서 올 해는 큰 통닭구이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애길 했다. 피자 한조각을 사려고 잠시 줄을 섰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도 좀 신경이 쓰였고 늦여름이 계속된 탓에 옷이며 침구류를 지금까지 바꾸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오늘 하기로 해서였다. 각자의 침대 커버부터 카펫까지 모두 가을 옷을 입히고 세탁기를 돌렸다. 1년 365일이 참 빠르다. 계절에 맞춰 침구를 갈아 덮고, 두꺼운 옷들을 꺼내 입었던 텀들이 점점 짧게만 느껴지는 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년 새로운 사계절이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새 옷입히기가 엊그제 같은.. 2021. 9. 27.
특별하지 않아도 좋은 생일날 추분인 오늘은 이곳도 휴일이었다. 아침에 난 수초 정리를 하며 어미와 치어들을 분리시켰다. 나중에서야 거실로 나온 깨달음이 자기도 뭔가 하겠다고 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다고하는데 뒤에서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깨달음,,나 혼자 해도 돼 ] [ 알아,,근데 뭐 할 게 있나 해서 ] 소파에서 수조의 물이 정화되길 기다리는데 깨달음이 옆에 앉더니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고 있냐고 물었다. [ 추분이잖아,,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고 밤이 점점 길어질 것이고 ] [ 그거 말고 ] [ 뭐? ] [ 오늘 당신 생일 아니야? ] [ 아,,음력으로 하면 10월 28일이던데..] [ 난,,오늘이라 생각하고 예약도 했는데..] [ 아,,그래,,그럼 오늘 하지 뭐..] 음력과 양력을 매년 말해줘도 헷갈려하니 그냥.. 2021. 9. 24.
일본에서 맞이하는 추석 [ 뭐를 사 오면 되는 거야? ] [ 과일만 사 오면 돼 ] [ 알았어, 갔다 올게 ] 내가 전을 부치고 있는동안 깨달음은 마트를 다녀오기로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린 한국이 아닌 이곳 일본에서 추석을 맞이했다. 매번 추석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만 이렇게 전을 부치고 있으면 부쩍 가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 추석에는 깨달음이 갈비찜이 아닌 떡갈비가 먹고 싶다고 해 떡갈비를 맛깔나게 구웠다. 전을 완성하고 햇밤이 다 익어갈 무렵 깨달음이 들어와 깨끗이 씻은 과일을 올렸다. [ 이건 뭐야? ] [ 응,,송편 같은 떡이 없어서 알록달록 색이 비슷한 거 사 왔어, 맛은 전혀 다르지만 ] [ 고마워. 얼듯 보면 송편 같네 ] 떡갈비를 먼저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잡채를 한입 가득 넣는 깨달음.. 2021.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