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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권태기가 아니였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다. 햇살이 있는 동안 얼른 다녀오자며 우산을 챙겨 나왔다. 서쪽하늘엔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우린 말이 없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데 뭘 준비해야 하나,, 물먹는 하마를 몇 개 더 사둬야겠고,, 또 오늘 저녁메뉴는 뭐가 좋을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 역시 숲이 있으니까 공기가 다르지? ] [ 응 ] 짹짹거리는 새소리 사이로 깨달음이 말을 걸었다. [ 깨달음,,저녁은 뭐 먹고 싶어?] [ 오코노미야끼 ] [ 그래..알았어. 저기 다리 건너 마트에서 장 보고 갈까? ] [ 응, 알았어 ]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난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린 대화가 짧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닌데 아주 단조로워졌.. 2021. 5. 17.
일본은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늦은 밤,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감염자가 줄지 않은 상태인데 매일 출근을 하며 철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그녀가 도쿄 올림픽 개최 반대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보란티어를 정말 할 것인지, 걱정이 가득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회사를 나왔다며 힘없는 목소리였다. [ 일..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 [ 내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이 맨날 나만 찾는 것도 있고...] [ 또 과로로 병원 실려가면 어쩔래? ] [ 그래서...잠은 5시간 이상 자려고 하고 있어..] https://keijapan.tistory.com/1463 여전히 착한 그녀를 만나다. 런치를 함께 하기로 했다. 햇수로 3년 만에 보는 그녀는 날 보자마자 포옹을 하며 밝게 웃어주었다. 한국음.. 2021. 5. 14.
우린 하루 두끼만 먹기로 했다 지난 주말을 끝으로 황금연휴가 끝났다. 연휴라지만 제3차 긴급사태 선언 중인 관계로 우린 스테이 홈을 잘 실천하고 있었다. 마트로 장거리를 보러 가는 일 외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니보니 끼니를 모두 집에서 해결해야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평소 때보다 밑반찬 가짓수를 늘렸었는데 이번 연휴에는 그때 그때 필요한 식재료를 사서 해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리고 하루 세끼가 아닌 두 끼만 먹는 걸로 깨달음과 합의?를 봤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 단순히 휴일에는 조금 느긋하게 아침을 먹다 보니 점심시간이 와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것과 집에만 있다 보니 활동량도 줄어서 그냥 아주 간단히 바나나나 과일주스 한 잔으로 점심을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어야 한다.. 2021. 5. 11.
일본 오디션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 황금연휴가 끝나는 날, 우린 각자의 방에서 여름 맞이 준비를 했다. 한 낮엔 26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를 보였다가 조석으로는 여전히 싸늘해지는 변덕스러운 온도차가 계속되면서 미뤘던 일이다. 능숙하게 겨울옷들을 접어 넣고 양복들을 바꿔놓은 다음, 침대의 이불 커버까지 손끝 야물게 해가는 깨달음. [ 깨달음, 당신이 나보다 훨씬 정리정돈을 참 잘하는 것 같아] [ 원래 A형들이 이런 걸 잘해, O형보다 ] [ 지금 O형 디스 하는 거야? ] [ 응,,ㅎㅎㅎㅎ] [......................................... ] 정리정돈은 잘해도, 여름용인지 봄용인지 속옷 구별을 못하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반격했더니 남자들은 속옷에 그리 신경 안 쓰단다. 여름용 속옷을 집어놓고 있는 걸 멍.. 2021. 5. 8.
요즘 남편이 외운 한국어 오전 시간이 끝나갈 무렵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지 물었더니 오늘은 어디로 산책을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3번째의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이 되면서 황금연휴기간이지만 우린 착실히 스테이 홈을 잘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국형, 인도형으로 코로나 변종 감염자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는데 작년과 같이 별다른 대책 없이 국민들에게 협조만 호소하고 있는 이곳은 코로나에 대한 위기감이나 두려움이 엷어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깨달음,, 어디 나가고 싶은데? ] [ 응,, 답답해서.. 산책하러 가고 싶어서.. ] [ 그래.. 그럼 나가자,,] 깨달음이 고른 오늘 코스는 오다이바 (お台場)의 레인보우브리지(レイン.. 2021. 5. 4.
그래서 재혼이 어렵다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하는 그녀에게 이젠 그만하라고 자꾸 사과하면 더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 [ 하필, 긴급사태 선언이 또 발령될지 누가 알았겠어.. 이럴지 모르고 예약했는데.. 취소할 수도 없고,,,꼭 내가 정 상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어 ] [ 알았어... ] 25일부터 제 3차 긴급사태 선언되었고 어제부터 시작된 황금연휴는 이동을 자제하고 스테이홈을 해달라는 당부의 캠페인이 연일 TV에서 광고처럼 흘러나오고 있지만 거리엔 평소와 다름없는 인파들로 가득하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식사자리를 마련하게 되어서 무라모토(村本) 상은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한 것이다. [ 여기, 코로나 대책 확실히 하는 곳이야 ] [ 고마워....근데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 [ 아니야, .. 2021. 5. 1.
지금 그대로, 있는 그대로... 초음파실 대기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지배적이어서 머릿속 생각들을 지우려고 애썼다. 일상처럼 매번 반복되는 병원에서의 진료와 검사에 진저리가 쳐졌다. 이런 날은 내 블로그에 누군가 댓글로 남겼던 종합병원인 아내와 사는 깨달음이 불쌍하다는 한 줄의 댓글이 자꾸 떠오른다. 날 알면 얼마나 안다고 건방진 소릴하는가 싶다가도 종합병원이라는 표현을 들어야 할 정도로 내 몸이 상했나 싶어 손가락을 펴 아픈 곳이 어딘지 세어보았다. 특별히 나쁜 곳도, 고질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병원을 찾아올 때면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다. 40대 중반에 시작된 갱년기가 오십견으로 먼저 나타나더니 호르몬 분비 변화로 여기저기 약간의 이상 증후를 보였지만 정밀검사를 해보면 특별히 문제.. 2021. 4. 27.
한국의 재래시장에만 있는 것 5월 8일, 어버이날, 그리고 일본의 어머니날(母の日)에 맞춰 깨달음과 함께 선물을 준비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이 좋아하는 과일젤리, 카스텔라와 앙코 빵, 민트 사탕을 똑같이 포장을 하고 약간의 용돈도 넣어 우체국에 들렀다. 시아버님과 떨어져 시설을 옮겨가신 어머님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시고 예전보다 활동량이 늘었다고 한다. 두 분을 정기적으로 진료하시는 담당의께서 서로의 안부를 알려드린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여전히 2.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시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식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음을 알고 계시기에 이젠 언제나 올 수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톡이 왔다. 제주도에 언니와 서울에 있는 동생이 엄마를 보러 광주에서 잠시 모인 모양이었다. 오일장에 들러 장을 보.. 2021. 4. 23.
남편은 내일도 열심히 뛸 것이다 산책을 나왔다. 주말이면 매번 비가 오는 바람에 집에만 있다가 모처럼 날이 좋았다. 집 주변을 돌다 새로운 상가에 멈춰 괜스레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목적지도 없이 뚜벅뚜벅 걸었다. 그렇게 서로가 상념에 젖어 말없이 걷다가 빵집에 들러 빵도 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뭘 봐도 흥미롭지 않고, 그냥 무작정 걷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깨달음은 팔을 휘저으며 걷기운동이 왜 우리 몸에 좋은지 몇 마디 하고는 또 열심히 걸었다. 만보기가 7 천보를 막 넘었을 때쯤 눈 앞에 전철역이 보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전철을 탔다. 우리 둘 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꽤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스타일이지만 이렇게 무계획인 날엔 몸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향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런.. 2021. 4. 20.
재입사를 원하는 남편 회사의 직원들 돈가스를 좋아하는 깨달음이 많이 참았다. 코로나로 외식을 줄이고 있는 이유도 있고 건강을 생각해 튀김류는 되도록이면 적게 섭취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내 의견을 따라주었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모든 걸 잊고? 본능에 이끌린 채로 그냥 돈가스집으로 발길이 향했다. 니혼슈(日本酒)를 한 모금 하고 나서 짭조름한 쯔게모노(漬け物)를 먹으면 침샘이 자극되서인지 입안이 달달해져 술이 잘 넘어간다. [ 당신도 알지? 노무라 상(野村)? 야마오쿠(山奥) 랑 단짝이었던 여직원 ] [ 알아, 몇 년 전에 그만뒀잖아 ] [ 응, 맞아, 근데 우리 회사 다시 오고 싶다네 ] [ 그래.. 그럴 거면 그때 왜 그만뒀는데? ] [ 나도 이번에서야 알았는데 지난달에 그만둔 미나미 (南)군과 같이 일하는 게 싫어서였다네 ] 미.. 2021. 4. 13.
김치를 일본인들은 이렇게 먹는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깨달음은 중요한? 서류를 내 노트북에 올려놓았다. 작년에 우린 세무사에게 재산정리?를 부탁했다. 재산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만큼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노후 계획들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세우게 되면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모아 세무사에게 의뢰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상품권과 함께 서류를 보내주신 모리 상, 서툰 한글로 일처리가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쪽지를 남기시기도 하고, 경조사를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나름 나도 감사를 표했는데 이번에는 뭘 할까 고민이 되었다. [ 모리 상, 지난번에 당신이 보낸 김치 맛있다고 했으니까 김치 보내면 좋아할 걸? ] [ 맨날 김치만 보내는 거 같아서....] [ 내가 말 안 했나? 작년에 같이 살던 누님이 돌아가신 .. 2021. 4. 5.
여전히 착한 그녀를 만나다. 런치를 함께 하기로 했다. 햇수로 3년 만에 보는 그녀는 날 보자마자 포옹을 하며 밝게 웃어주었다. 한국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민희(가명)은 오늘 식사를 위해 아침까지 굶고 왔다고 했다. 런치정식외에도 갈비 수프와 냉면까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주문한 민희는 3년간 있었던 일들은 식사를 한 뒤에 얘기하자며 잠시 먹는 일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난 그녀가 먹기 편하게 고기를 구웠고 민희는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을 눈여겨보면서 흰쌀밥에 나물과 상추겉절이를 모두 넣고 달달한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비빔밥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잘 구워진 고기를 올려 먹었다. 그동안 한국음식을 못 먹었던 한을 풀고 있는 듯이 행복해 하며 먹었다. [ 민희야, 천천히 먹어..] [ 양념들이 달긴 한데 오랜만에 먹어.. 2021. 4. 1.
한국 드라마가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 집 근처로 꽃구경을 나왔다. 벚꽃이 만개하고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며 감염자 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걱정을 안 할 수 없어 올 해도 그냥 꽃구경은 내년으로 넘길 생각이었는데 집 앞 공원이라도 다녀오자는 깨달음 제안에 흔쾌히 따라 나섰다. 흐드러진 벚꽃 틈 사이로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진다. 이번 주말이면 꽃들이 질 것 같다며 조심스레 꽃망울을 만져보던 깨달음이 갑자기 흔들어 보고 싶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많다며 바로 포기했다. 그것도 잠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자 떨어지는 꽃잎을 잡고 싶다며 다시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어오르기를 몇 번했다. [ 깨달음, 그만해,, 사람들이 쳐다봐 ] [ 정말 따는 건 아니야,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거야, 그냥 갑자기 도깨비 생각이 나서 해 봤어 ] 지난.. 2021. 3. 29.
결혼은 미친짓이다. [ 축하해, 케이 ] [ 축하해, 깨달음 ] 건배를 하며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뭘 축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3월 25일은 우리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날이고 부부가 되었다는 걸 서류상으로 입증받은 날이기도 했다. [ 깨달음, 그 날 기억해? ] [ 응, 저녁에 서로 퇴근하고 만나서 신주쿠 구약소 야간창구에 가서 제출했잖아] [ 그다음은? ] [ 창코나베 먹으러 갔었지 ] 엊그제 일처럼 너무도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 은빈은 정말 9월에 결혼하는 거야?, 신혼집은 어디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간대? ] 깨달음은 조카 은빈의 결혼에 궁금한 게 많았다. [ 날 잡았다고 했잖아 ] [ 그때까지 코로나가 잡히지 않겠지? ] [ 그냥, 못 간다 생각해 ] 결혼날을 잡아두고 여러 가지 신혼.. 2021. 3. 26.
요즘 일본 식당에 붙어 있는 포스터 코로나 감염자가 줄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째 발령되었던 긴급사태 선언이 끝났다. 지금 이상태로 해제하는 건 빠르다는 의견이 49%를 차지했지만 더 이상 연장을 해도 느슨해져버린 시민들의 의식이 되돌아 올 수 없고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지 못하기에 해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올림픽을 치르기 전인 5월에 다시 한번 긴급사태 선언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감염자 수가 증가할 거라 예측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꽃구경을 하러 평일에도 밤낮으로 벚꽃 명소를 찾고 있다. 공원이나 명당자리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비원을 늘리고 테이프로 진입을 막아두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금지 구역까지 들어가 술을 마시며 벚꽃을 즐기고 있다. 마스크는 물론 쓰지 않고, 큰 소리로.. 2021. 3. 23.
모든 건 기브엔테이크였다 택시 안에서도 줄곧 깨달음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직원이 또 문제를 일으켜 그것을 수습하느라 이번 주는 현장과 미팅을 거듭하느라 바빴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난 혼자 가겠다고 했는데 자기가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며 꼭 같이 가겠다며 동행을 했다. 입구에 들어서서도 통화가 이어져서 난 먼저 접수를 하고 진찰실로 향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러서는 혈압을 재라길래 오늘은 검사결과를 듣는 날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혈압을 재란다. 진찰실 근처에서 나를 힐끔 거리며 통화를 하던 깨달음이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다 한참만에 내 옆자리에 앉았다. [ 깨달음, 바쁘니까 가도 돼 ] [ 아니야, 전화로 다 해결했고 그쪽에서 서류보완을 좀 하라니까 그것만 맞춰주면 돼 ] [ 잘 처리된 거야? ] [ 응.. 2021. 3. 20.
여러분 덕분에 살아갑니다 주 3회 출근이 일상화로 자리 잡아가고부터 우리 부부의 하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 시간들을 충실히 활용하고 있다. 서로의 출근이 달라도 개의치 않고 퇴근이 빠르거나 느려도 그냥 그러러니 하고 상대의 페이스에 적당히 맞춰가며 생활하고 있다. 오늘은 둘 다 집에서 쉬는 날이었는데 아침 일찍 한국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 너무 무거운데 누가 보낸 거야? ] 깨달음이 물었지만 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주 병원에 다녀온 글을 올린 후 걱정의 메일과 방문록에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이 꽤 계셨다. 괜찮을 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잘 이겨내실 거라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 누가 보내주신 거야? 블로그 이웃님이? ] [ 응,,,] [ 너무 많이 보내주셨네...] 갑상선에는 미역이 좋아서 넣었고 과자는 요.. 2021. 3. 17.
내년으로 미룬 남편의 생일선물 3월 7일이면 긴급사태 선언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2주간 연장이 되었고, 감염자의 감소가 무뎌지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오늘은 이 상태로라면 5월까지 연장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얘기가 조심스레 의료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아침 뉴스를 함께 듣던 우린 주말로 미뤘던 식사를 오늘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집을 나섰다. 프린스호텔 중식당이 코로나로 영업중단 상태였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찾아갔다가 발길을 돌려 에비스(恵比寿)로 향하면서 전화를 넣었다. 예전 같으면 당일 예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기 가게였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순조롭게 예약이 가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바로 알아보고 창가 쪽으로 안내를 해 줬는데 깨달음이 소파석이 좋다며 옮기자고 했다. 29층이니까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앉아 .. 2021. 3. 13.
그냥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냉장고 속, 반찬들을 꺼내고 볶아놓은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이고 고등어를 구워 아침을 차렸다. 이 날은 깨달음 생일이었다. 작년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까맣게 잊고 지나쳐버려서 행여나 올 해도 잊어버릴까 봐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 깨달음, 생일 축하해 ] [ 당신은 안 먹어? ] [ 응, 우유 마셨어. 생일파티는 주말에 해줄게 ] 깨달음이 식사하는 것을 보고 난 외출 준비를 했다. 눈썹을 그리며 예약시간까지 충분하지만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에 물혹 같은 게 만져진 건 3일 전이었다. 통증도 없는데 상당히 큰 혹이 왼쪽 편에 자리하고 있었고 침을 삼칠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뭘까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갑상선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 그 자리에서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했.. 2021. 3. 9.
일본속, 신한류 붐은 일고 있었다 내 주변의 일본인 친구, 동료들 중, 서너 명은 예전부터 한류에 빠져 있었다. 원조라 말하는 배용준 시절의 한류 1세대부터 지금의 BTS까지 다양하게 한국문화를 발 빠르게 접하고 공유하며 즐긴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한국의 매력에 빠진 사람은 같은 장애협회에서 만난 나카지마 상이다. 그녀는 특히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사극, 멜로, 복수 등 장르불문, 모든 드라마를 즐겨본다. 내게 [ 사랑의 불시착]을 보라고 권했던 것도 나카지마 상이었고 꼭 봐야 한다고, 제발 봐주라며 귀찮을 정도로 추천을 했었다. 그런 나카지마 상이 어제도 내게 코로나가 끝나면 꼭 자기와 한국에 가자고 했다. 나카지마 상은 일본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40대 초반의 미혼이다.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는 그녀는 나를 볼 때마.. 2021. 3. 7.
시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퇴근하고 온 깨달음이 오전에 아버님과 통화를 했는데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셨단다. [ 무슨 일 있어? ] [ 아니, 별 건 아니고 당신이 보낸 소포가 잘 도착했다는 거였어 ] 일주일에 3번씩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과자나 과일을 챙겨 보내드린지 꽤 오래됐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그거라도 해야지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해오고 있다. 요양원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에 맞춰 전화를 드릴 요량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깨달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이셨다. 날씨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내게 깨달음이 전화기를 건넸다. [ 케이 짱, 고맙다. 늘 챙겨줘서..] [ 아니에요. 아버님, 별 일 없으시죠? ] [ 응, 나야 너네들 덕분에 잘 있단다 ] [ 아버님,,외롭지는 않으세요? ] [ 응,,나는.. 2021. 3. 3.
생각이 많았던 남편의 주말 3월 7일이면 긴급사태 선언이 풀린다고 한다. 첫 번째 발령되던 때와는 달리 두 번째였던 이번 긴급사태는 모두가 코로나에 익숙해져서인지 외출과 외식을 자숙해 달라는 도쿄도지사의 당부 캠페인이 광고와 섞여 매시간마다 나오고 있지만 모두가 많이 지친 것도 있고 더 이상 참는데도 한계가 온 듯 주말이면 온 거리에 나들이 인파들이 넘쳐나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의료진에게 먼저 접종되면서 왠지모를 안도감에 지난 2주 연속 주말까지 외출을 했었는데 충분한 분량의 백신이 확보되지 않았고 주사기까지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접종시기가 점점 늦춰질 거라는 뉴스를 듣고 우린 다시 느슨해진 정신을 다잡고 착실히 스테이홈을 하기로 했다. 깨달음은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지금처럼 주 3일 근무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매일 회사에 출근.. 2021. 2. 28.
요즘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곳 어제는 봄처럼 따뜻하다가 오늘은 또다시 맹추위가 찾아오는 이상기온이 며칠째 계속되는 이곳. 다운재킷을 넣었다가 꺼내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오늘은 겨울 찬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날아갈 것 같은 날씨였지만 깨달음과 외출을 했다. 엄마 생신선물로 뭘 보내드릴까 싶어 긴자(銀座)로 나가 유락쵸(有楽町) 사이에 있는 안테나숍들을 찾았다. 안테나숍은 전국 각 지역의 공예품, 식자재, 쥬류, 채소, 생선, 액세서리 등 그 지역에서만 나는 특산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오키나와(沖縄)까지 그 지역 대표음식들과 명물들이 준비되어 있어 요즘처럼 코로나로 여행을 못하게 되면서 이 안테나숍이 인기가 많아졌고 우리도 자주 찾고 있다. 특히 냉동된 식재료이 다양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분들은 자신의 고향의.. 2021. 2. 25.
다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지난 주말 13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 후쿠시마현(福島)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고 도쿄까지 흔들렸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섰던 우린 흔들림이 심해지자 얼른 거실로 뛰어 나가 열대어 수조에 물들이 출렁거리다 밖으로 넘쳐나지 않은지 확인을 하고 생방송 뉴스를 20분 정도 지켜보았다. 동일본 지진 때처럼 상당히 큰 흔들림이어서인지 덜컥 겁이 나 얼른 생존배낭을 밖으로 빼놓고 둘이서 티브이를 집중해서 봤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관동지역 83만 가구에 대규모 정전이 되었고 신칸센과 고속철도 일부 노선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여진이 다시 올 것을 염려해 해안가엔 접근을 하지 말고 물과 식료품, 핸드폰 충전기, 손전등을 미리 체크해서 준비해 두라고 모든 채널들이 긴급방송을 내 보내고 있었.. 2021. 2. 23.
9월엔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 14일, 초콜릿도 선물도 없이 그냥 지나쳤다. 매년 작은 초롤릿이나 초코케이크로 기념했던 것 같은데 해가 갈수록,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이젠 우리처럼 노년을 향해가는 부부들에겐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기념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깨달음이 출근을 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왜 올 해는 초콜릿을 안 주냐고 그래서 젊은 층에는 의미 있는 날이겠지만 우리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했더니 자기는 받아야겠단다. [ 알았어. 무슨 맛 초콜릿으로 사줄까? 위스키가 들어있는 거? 아님 블랙 초코? ] [ 아니, 그냥 나 밥 사 줘..] 초코에서 밥으로 왜 넘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밥을 사달라는 깨달음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알겠다고 했다. 4시에 조기 퇴근을 할 예정이니.. 2021. 2. 19.
나 몰래 남편이 주문한 것 한국의 구정이었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매년, 구정이 되면 되도록 한국식으로 쇠려고 떡국이며 갈비, 전 등 명절 음식을 장만하곤 했지만 올 해는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예전처럼 구정날 아침, 떡국을 먹을 거라 생각했는지 내가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준비하자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국은 설날이 아니지 않냐고 확인차 물었다. 설날인데 신정때 떡국도 먹었고, 구정을 굳이 쇨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하자 더 이상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코로나 생활이 1년을 넘어가면서 매 끼니마다 다른 메뉴들을 만들어 먹다보니 특별함을 잊은 지 오래고 솔직히 지겹웠던 게 사실이다. [ 우리 쇼핑 할까? ] 깨달음이 물었다. [ 살 거 없는데...] [ 그냥 나가보면 쇼핑할 게 생기지 않을.. 2021. 2. 15.
의외의 처방전을 내려 준 일본 의사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다행히 환자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 입구의 출입문은 물론 치료실 문도 모두 열어둔 채 환기를 시키고 있는 듯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작은 탁상용 난로가 좌우 열심히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전혀 따뜻함이 전달되지 않았다. 환자가 나 뿐인데 간호사는 서류를 정리하는지 좀처럼 날 부르지 않았고,, 그냥 그러러니 하고 잠자코 기다렸다. 원장님은 오늘도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리며 나와 차트를 번갈아 보셨다. [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오셨죠? ] [ 아니.. 그것도 그렇고 제 입술이...] [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힘든 일 하셨어요? ] [ 아니요,, 평소와 별 반 다를 게 없었는데..] [ 식사는 잘하셨나요? ] [ 네,,] [ 이게 몸이 피곤하거나, 면역이 떨어졌을.. 2021.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