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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156

용서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용서하는 게 이기는 것이고 용서를 해야 상처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기에 불가능하다. 먼저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상대를 용서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그렇다면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 용서하지 못한채로 칼날을 품고 살다보면 슬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자해 하듯 나를 베고 또 베고 있다.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상처는 깊어만 간다. 어느 날 꿈에 어린 그날의 나를 봤다. 떨고 있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려는데 형체도 없이 부서져버렸다.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울고 나서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잘 살다가도 어떤 순간에, 찰나처럼 스치는 그 상처들이 튀어나올 때면 어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일어서려하면 자꾸만 늪으로 빠져들어가 듯 아픈 기억들이 날 짓누른다. 억울해서 .. 2022. 1. 25.
삼재는 미리 피해야 하는 것. 연식으로 따지면 12년이 지난 내 자전거가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부품 교체 및 대수술?을 한번 했는데 올 해도 삐그덕 거리고 있다. 오늘은 앞 바퀴에 문제가 있어 교환을 부탁하고 나오려다 새 자전거를 둘러보고 그냥 돌아섰다. 자전거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깨달음은 전동식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난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과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전동식이 꼭 필요하지만 자전거가 가지고 있는 묘미를 느끼고 싶은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였다. 번호표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다 전철을 탔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2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느긋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 화방을 찾았다. 미술용품 외에도 작고 귀여운 문구용품을 함께 파는 세카이도(世界堂)는 미대생 뿐만 아니라 쇼핑.. 2022. 1. 17.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깨달음은 기어코 소수의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종무식을 강행했다. 난 예고한대로 참석하지 않았고 3시가 넘어서 약속장소인 아사쿠사(浅草)로 향했다. 어제부터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은 도쿄를 빠져나갔고 신정연휴를 맞아 도쿄로 관광을 온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센소지엔 언제나처럼 기모노를 차려입은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올 해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은 각자가 믿는 신들에게 한 해의 마감을 고하기도 하고 새해의 소망을 빌기도 하면서 센소지 浅草寺본당 앞에 상향로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오는 선향의 연기를 자신들의 몸 쪽으로 끼얹었다. 400년 전, 중국에서 전해지는 향로는 참배객의 신체를 정화하기 위해 사용된 불사에 쓰는 도구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향로의 연기를 아픈 부위에 끼얹으면 상태가 좋아지거.. 2021. 12. 30.
새벽에 울린 카톡... 건강검진을 하러 찾은 병원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외롭게 서 있었다. 좀 더 풍성하고 좀 더 따뜻함이 묻어 나오게 장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진찰실로 향했다. 옵션으로 신청했던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10시가 넘을 거라고 했다. 시력부터 시작해 마지막 부인과까지 순조롭게 진찰을 하는데 부인과 초음파를 하는 중에 갑자기 의료진과 간호사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자궁근종 수술하셨죠? ] [ 네...] [ 근데.. 여기,, 또 뭐가 보이네요..] 좀 더 초음파로 관찰하려는 자와 저지하는 자,, 커튼 뒤에 있는 의료진의 실루엣과 말소리만 들리는 듯하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지를 입고 앉자 자궁내막이 아닌 곳에 혹 같은 게 보이는데 좀 크기 때문에 정밀검사를 따로 하셔야겠다며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한다. 혹이.. 2021. 12. 17.
일본의 코리아타운 모습의 요즘 주말 오후, 신정 선물을 주문하기 위해 오다큐 백화점(小田急)에 갔다. 깨달음이 해년마다 추석과 신정 선물을 이곳에서 보내는 이유는 다른 곳보다 연배들이 좋아하는 선물이 많아서라고 한다. 예전에는 각종 선물코너가 따로 배치되어 실물을 보고 부과설명까지 들으며 선택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시대에 맞게 상품 사진으로만 벽면을 채워놓았다. 깨달음이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는 동안 난 지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몇가지 골랐다. [ 다 골랐어? ] [ 응 ] [ 한국에 보낼 것도 골랐어?] [ 응 ] [ 이거 신청 끝나면 어디 갈까? ] [ 영화를 한편 보면 좋은데 예약을 안 해서 좌석이 없을 것 같애...] [ 나, 영화 안 볼 거야, 집에서도 볼 게 많은데 ] [.............................] .. 2021. 11. 29.
일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김치 주말이면 깨달음은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어 한다. 숯불갈비를 먹으러 갈까 망설이다 최근 건강다큐를 본 게 기억났는지 굽는 것보다는 삶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보쌈을 먹자고 했다. 보쌈을 먹으려면 생김치가 있어야할 것 같아 마트에 갔는데 배추가 엄청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 깨달음,, 좀 넉넉히 사서 담글까? ] [ 나야 좋지만 당신이 힘들지 않아? ] [ 어차피 보쌈용 김치 할 거니까 ] 김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담는 김에 담아두자는 생각이였는데 막상 배추를 씻고 절이고보니 너무 많이 사 온 것 같아 약간 후회했다. [ 깨달음,, 보쌈 오후에나 먹겠는데 ..] [ 괜찮아 ] 내가 배추를 씻는 동안 깨달음에게 깍두기를 썰어달라고 했더니 얌전히 아주 알맞은 사이즈로 잘 썰었다... 2021. 10. 25.
예전의 한국을 그리워하는 남편 샤워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30분 늦은 걸 보니 오늘은 깨달음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긴급사태가 서너 달에 한 번씩 발령이 되면서 암묵의 룰처럼 우린 서로의 패턴을 읽게 되었다. 이런 날은 나도 느긋이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다른 날은 깨달음이 먼저 식사하지만 오늘은 겸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외출을 했고 깨달음은 집 안에 있는 동안 뭘 했는지 알지 못한다. 집을 나서기 전, 점심은 뭘 먹을 거냐고 했더니 지난번 코리아타운에서 사 온 버터와플 먹으면서 영화를 볼 거라 했다. [ 과일 챙겨놓은 것도 먹어 ] [ 알았어 ] 내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 무렵,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지 얘기를 나누다 깨달음이 조카 결혼식은 잘 치렀는지 물었다. [ 응, 잘 끝.. 2021. 9. 17.
너무 솔직했던 후배와의 통화 [ 누나, 뭐 해? 요즘? ] [ 응, 뭐 똑같지.. 아 지난주부터 패럴림픽 보란티어 지금 하고 있어 ] [ 기어코하네,,하여튼 그 고집 누가 말려..] 대학원 후배인 민우가 언제나처럼 불쑥 전화를 해왔다. [ 넌 잊을만 하면 꼭 전화하더라 ] [ 응, 일본 뉴스가 많이 나올 때마다 누나 생각나서..] 버릇처럼 우린 서로의 일상들을 묻고 대답했다. 민우는 여행을 자유롭게 못 떠나 몸이 근질거리고 하는 일도 많이 줄어서 모두 접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리고 최근에 썸 타고 있는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썸을 탄다는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터라 썸이라 말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했더니 민우는 설레고 있는 상태와 긴가민가하면서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몇 가지 예를 들어.. 2021. 8. 30.
친정엄마와 일본인 사위 [ 다리는 많이 좋아졌냐? 테레비에서 날마다 일본이 나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든디. 언제나 갈 수있을랑가 모르것다. 이산가족도 아니고 오도 가도 못하고,, 그래도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감사하긴 한디 일본이 맨날 나온께,,가깝게 느껴지고 그런다 ] 엄마가 또 전화를 하셨다. 내 다리 상태가 어떤지 궁금한 것도 있지만 올림픽 경기를 하느라 종일 티브이에서 일본을 보여주니 옛 생각들이 새록새록 나신 모양이었다. [ 니기가 이사하고 집 구경한다고 우리가 갔응께 벌써 4. 5년 됐을 것이디..니가 아프다고 해도 가도 못하고 속상해죽겄는디 맨날 테레비서 일본이 나온께 더 마음이 쓰인다야 ] [ 엄마, 나 많이 좋아졌어. ] [ 인자 걸어 다니지? ] [ 응, 장거리는 못 가고,그냥 가까운 곳은 가 ] [ 그래도.. 2021. 8. 4.
병상일기- 2 이젠 괜찮아 장마의 끝자락에 있는 이곳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택시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다가 굵은 빗소리와 후덥지근함에 새벽녘에 눈을 떴던 홍콩의 어느 호텔방이 떠올랐다. 17층까지 흙냄새가 올라오고 습한 공기들이 방 안 가득했던 어느 여름날,, 핸드폰 액정에 온도 24도, 습도는 83%라 떠 있다. 정각 9시,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또 30분을 기다렸다. 이른 시간에도 환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대기자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오늘은 골절부분이 뒤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엑스레이를 찍었다. 지난 일주일간 다리에 무리해 힘을 줬거나 잘못 움직여 부러진 뼈의 위치가 바뀔 수 있는데 그것들을 다시 확인해야 해서 찍는 거라 한다. 별 문제가 없으면 지난주에 발 모양의 본을 뜬 고정깔판.. 2021. 7. 5.
가끔은 미치게 울어도 괜찮다 요즘 난 무슨 생각인지 블로그를 멀리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별로 내 마음이 향하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짬이 날 때면 유튜브를 통해 보고 싶은 장르만 골라 보고는 또 금세 시큰둥해진다. 블로그... 돌아보니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결혼을 하고 낯선? 부부생활을 털어놓으며 일기처럼 써내려가면서 다음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러다 광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티스토리로 뒤늦게 자리를 옮겼다가 두 번의 주소변경을 해야했다. 그러다 블로그 글들이 모인 책이 출간되고,,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년을 채워가고 있다. 결혼, 해외생활, 가족, 친구, 지인들의 얘기를 풀어냈고 7년 전, 아빠를 떠나보내고 돌아와서 약 한 달간 쉬었고,, 그 외는 꾸준히 글을 올려왔던 것 같다. https://keij.. 2021. 6. 10.
일본 오디션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 황금연휴가 끝나는 날, 우린 각자의 방에서 여름 맞이 준비를 했다. 한 낮엔 26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를 보였다가 조석으로는 여전히 싸늘해지는 변덕스러운 온도차가 계속되면서 미뤘던 일이다. 능숙하게 겨울옷들을 접어 넣고 양복들을 바꿔놓은 다음, 침대의 이불 커버까지 손끝 야물게 해가는 깨달음. [ 깨달음, 당신이 나보다 훨씬 정리정돈을 참 잘하는 것 같아] [ 원래 A형들이 이런 걸 잘해, O형보다 ] [ 지금 O형 디스 하는 거야? ] [ 응,,ㅎㅎㅎㅎ] [......................................... ] 정리정돈은 잘해도, 여름용인지 봄용인지 속옷 구별을 못하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반격했더니 남자들은 속옷에 그리 신경 안 쓰단다. 여름용 속옷을 집어놓고 있는 걸 멍.. 2021. 5. 8.
한국의 재래시장에만 있는 것 5월 8일, 어버이날, 그리고 일본의 어머니날(母の日)에 맞춰 깨달음과 함께 선물을 준비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이 좋아하는 과일젤리, 카스텔라와 앙코 빵, 민트 사탕을 똑같이 포장을 하고 약간의 용돈도 넣어 우체국에 들렀다. 시아버님과 떨어져 시설을 옮겨가신 어머님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시고 예전보다 활동량이 늘었다고 한다. 두 분을 정기적으로 진료하시는 담당의께서 서로의 안부를 알려드린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여전히 2.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시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식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음을 알고 계시기에 이젠 언제나 올 수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톡이 왔다. 제주도에 언니와 서울에 있는 동생이 엄마를 보러 광주에서 잠시 모인 모양이었다. 오일장에 들러 장을 보.. 2021. 4. 23.
여러분 덕분에 살아갑니다 주 3회 출근이 일상화로 자리 잡아가고부터 우리 부부의 하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 시간들을 충실히 활용하고 있다. 서로의 출근이 달라도 개의치 않고 퇴근이 빠르거나 느려도 그냥 그러러니 하고 상대의 페이스에 적당히 맞춰가며 생활하고 있다. 오늘은 둘 다 집에서 쉬는 날이었는데 아침 일찍 한국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 너무 무거운데 누가 보낸 거야? ] 깨달음이 물었지만 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주 병원에 다녀온 글을 올린 후 걱정의 메일과 방문록에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이 꽤 계셨다. 괜찮을 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잘 이겨내실 거라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 누가 보내주신 거야? 블로그 이웃님이? ] [ 응,,,] [ 너무 많이 보내주셨네...] 갑상선에는 미역이 좋아서 넣었고 과자는 요.. 2021. 3. 17.
남편과 한국의 교양프로를 보다가 ,,, 코로나로 긴급사태 선언이 재발령 된 지 벌써 3주가 지나가고 있다. 2월 7일이면 해제될 거라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2월 말까지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우리 부부는 요즘 유튜브를 통해 한국 재래시장 투어를 하고 있다. 광주에 내려가면 필수코스처럼 항상 갔던 말바우시장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열린 장날의 모습들을 보며 한국을 느끼고 있다. 또한, 한국 프로도 열심히 보고 있고 특히, 깨달음이 즐겨보는 음식, 요리 관련 프로는 과거 편까지 되돌려 가며 보고 있다. 허영만의 백반 기행, 한국인의 밥상,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전국의 맛집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둘러 볼 수 있어 깨달음은 좋단다. 오늘도 밀린 저번 주 편부터 보고 있는데 출연자 둘이서 남은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는 .. 2021.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