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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결혼생활 5년이면 남자들도 변한다

by 일본의 케이 201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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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미열과 두통으로 시달리다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감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갱년기 증상]이라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단을 받고,,,

너무 우울해서 깨달음에게 전화했더니

맛있는 음식 먹으면 낫는다고

아주 가볍게 흘러 넘겼다.

갱년기라,,몸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나이는 못 속인다는 어르신들 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전철을 갈아타고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맑고 청명한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한 낮엔 여전히30도를 넘나들고 있고

그나마 태풍이 와서 잠시 비바람을 

뿌려줬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가을 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든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진단을 받아

썩 기분이 맑지 않는데

깨달음은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싱글벙글이였다.

자리에 앉아 내 몸의 상태를 묻기도 전에

메뉴판을 들고 낱낱히 훑어보면서

언젠가 직원이랑 런치 먹으러 왔던 곳인데

맛있어서 내게도 소개해 주고 싶은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 병원에서 갱년기 증상이래..]

[ 아,,그래 ? 나이 먹었다는 소리야 ]

[ 그래도 갱년기 장애가 뭐야,,,

아직 50도 안 됐는데.....]

[  여성호르몬 균형이 깨지면

갱년기 장애가 심하다는 얘긴 들어봤어..]

[ 남자들도 갱년기가 있다던데 당신도 그랬어? ]

[ 아니,,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 왠지 우울해..내 몸이 내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 뭐가 우울해? 그냥 나이먹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거야,,

자연의 이치인데 뭘 심각하게 생각해? ]

[ ...................... ]

[ 이 피자 너무 맛있지? 파스타도 죽이거든,,

 한 번 먹어보면 이 맛을 잊지 못해 ~ ]


내가 주문한 토마토 파스타도 

반 이상 뺏어 먹더니 급기야 피자 조각에 

파스타 소스를 접시에서 퍼 올려 작은 입을

 힘껏 벌려 맛있게 먹는다.

어쩜 인간이 이렇게 잘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깨달음은 내가 치료중일 때도 솔직히 

혼자서 아주 잘 먹었다.

갱년기 장애라는 진단 같은 건 내 약물치료에

비하면[ 아프다]는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난 오늘 깨달음을 만나 

[ 갱년기 증상 ]에 관한 얘기가 아닌

 세월의 무상함, 인생의 허무함, 삶의 의미 등등

뭐 그런 이 가을의 문턱에 딱 맞는 

그런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내 앞에 있는 깨달음은 피자를 한 판 더 

시키고나서야 잠시 내 말에 귀를 귀울렸다.


[ 배 불러?]

[ 응, 괜히 한 판 더 시켰어,,,

다 못 먹겠다. 포장해 가야지~]

[ 옛 명언에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거든? ]

[ 알아, 근데 소크라테스도 밥 먹고 고민하거든? 

배고픈 채로 고민 못해~ 그래서 난 밥 먹고

얘기할려고 했는데 뭐가 잘못 됐어? ]

[ .......................... ]

[ 많이 무심해 졌다고 생각 안 해? ]

[ 무심해진 게 아니라 서로가 편해진거지..

그리고 그건 솔직히 병도 아니잖아 ]

[ 너무 편해진 거 아니야?]

[ 이제 정말 부부로써 성숙해져가고 있다는 거지..]

[ 걱정 안 돼? ]

[ 뭘 걱정 해? 이렇게 잘 먹으면 

갱년기 같은 것도 다 잊어버려~

그리고 나이 먹었음을 받아들이면 돼.

아직도 당신은 자기가 30대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 갭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그냥,자기 나이도, 자기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 해결 되는 문제야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근데 당신이 안 받아들이려고 거부하니까

자꾸만 더 우울해지고 그런거야,, 

그리고 갱년기는 병이 아니야,,,

그냥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서 순리적으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야,,노화가 되어가는

 현상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돼... ]

맞는 말만 골라하는 깨달음이 얄미워서

째려봤더니 이제 째려봐도

안 무섭다고 실실 웃으며

또 피자 한조각을 집어 들었다.

[ ......................... ]

당신 때문에 내 갱년기 증상이 

더 오래 갈 것 같다고 그랬더니

괜히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말란다.

요즘 깨달음은 말대꾸도 잘 한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말도 

잘 받아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어쩔줄 몰라

발을 동동거렸던 예전의 깨달음은 이제 없다.

아직 결혼 6년째인데,,,

다른 부부들도 다 이러겠지...

역시, 인간은 변한다. 

특히 남녀사이엔 그게 부부든 연인이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뎌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진리인 것같다.

난 정말 갱년기 얘길 하려는 게 아니였는데...

옷깃을 스치는 초가을 밤바람이

 왠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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