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시댁에 가면 우리가 꼭 하는 일

by 일본의 케이 2014. 10. 30.
728x90
728x170

 

해가 질 무렵에서야 시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며 어머님을 불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어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신문을 보고 계시던 아버님이 깜짝 놀래셨다.

 보청기를 끼고 있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 미안하다고 귀엽게 웃으신다.

웃는 모습도 어쩌면 저렇게 깨달음과 똑같을까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건강은 어떠신지, 요즘 근황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때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올해는 너무 많이 열려 자꾸만 떨어진다고 청소하고 계셨단다. 

 

언제나처럼 우린 이층에 올라 짐가방을 풀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더니

진짜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깨달음이 태어나던 해, 그리도 시동생분이 태어나던 해,

두 그루에 감나무를 심으셨다는 시부모님,

50년을 훌쩍 넘은 감나무 두 그루가 이렇게 변함없이 매해 열매를 맺고 있다. 

 

우린 바로 대형슈퍼에서 반찬거리를 사와 저녁준비를 했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 두었던 식당을 취소하고 집에서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버님의 요실금이 심해져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셔야하기에

 외식이 불편하다고 그러셔서 그냥 집에서의 식사를 택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매번 시댁에 올 때마다 하던 일들을 시작했다.

시부모님들이 80평생 넘게 살아오시며 모아두었던 오래된 물건들, 옷가지들,

 그리고 냉장고까지 [대청소]를 해드리는 것이다.  

 

깨달음은 묵은 살림들을 꺼내면서 어머님과 어릴적 에피소드를 나누다가

10여년 전에 사 드렸다는 실내용 슬리퍼가 그대로 있는 걸 보고

필요없는 물건들은 모두 처분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언제 쓸지 몰라서 놔 둔 거라고 어머님이 그러시며

 행여나 귀한 걸 버리나 보시려고 몇 번 우리가 청소하는 모습을 엿보셨다.

그런 어머님을 보더니 깨달음이

가족들 추억이 담긴 물건은 안 버릴테니까 걱정말라고

여긴 그만 신경쓰지 말고 추우니까 방에 들어가시라고 그래도 어머님은 아들이 하나씩 하나씩

먼지 묻은 과거의 물건들을 꺼낼 때마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조금은 안타까운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묵묵히 정리를 하던 깨달음이 신발장 속 깊숙히 간장병이 5병이나 나오는 걸 보고

크게 한 숨을 쉬면서 어머니께 보이는 곳에 두면 이렇게 또 사고 또 사고 그러지 않으니까

이제부터는 보이는 곳에 두도록 하라고 또 한마디했다.

난 열심히 큰 쓰레기 봉투에 차곡차곡 넣고,

어머님은 깨달음 눈치를 약간씩 보시면서 작은 것들을

미리 쓰레기장에 놓아두시겠다고 밖으로 가져가셨다.

다음날 아침, 어제 사 왔던 샐러드와 계란 후라이 등을 만들어 식사를 하고

 우린 2층방 청소에 들어갔다. 

 

깨달음이 어머님 기모노 옷장을 정리하려고 할 때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그냥 계시라고 그랬더니 당신이 할 수 있는 정리는 

당신이 하고 싶다고 그러시자 우린 아무말 못했다. 

 

어머님에 뒷모습을 보며 부모님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하는 매해 두 번씩의 [대청소]가 과연 잘하는 것인지,,,,

문득 의문스러워 움직이던 손을 멈춰다.

비록 묵은 살림이고, 색이 바라고, 헐어서 쓸 수가 없는 게 태반이지만

80년이상을 시부모님과 함께 했을 물건들,,,,

 그 속엔 깨달음과 시동생분의 성장도 함께 묻어 있는 물건들,,,

목이 떨어진 선풍기,, 사이클 표시가 없어진 라디오,,,알이 듬성듬성 빠진 주판,, 등등

버리면 좀 더 편할실거라고, 공간도 넓게 쓸 수 있고, 위생적이고,,,

그래서 시작한 [대청소]였는데,,,,,

세월이 흘러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그게, 남편과 자식이 쓰던 물건이여서 더욱이 그럴 것이다.

내년엔 [대청소]가 아닌 [추억 정리]를 해드려야 할 것 같다.

시부모님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