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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한국에서만 볼 수있는 남편의 다른 모습

by 일본의 케이 201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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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날 오후엔 언니, 동생네도 서울로 올라가야했기에

멀리 갈 수 없어 광주에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순천 송광사에 들렀다.


 

점심으로는 깨달음이 좋아하는 해물지지미과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마셨다. 

산나물이며 장아찌, 밑반찬으로 나오는 음식도 맛있게 먹는 깨달음을 보고

음식 가리지도 않고 아무거나 잘 먹어주는 깨서방이 너무 고맙다며

행여나 한국음식 입에 안 맞아 못 먹고 그러면 우리들도 마음이 쓰이고 그럴텐데

이렇게 잘 먹어 주니 정말 고맙다고 언니가 극찬을 해주었다.

지지미에 갓김치를 올려 먹으며 동동주를 시원하게 한사발 들이키는 깨달음 모습이

영락없이 한국의 시골 농부 아저씨 같아 새삼스럽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깨달음은 지지미와 도토리묵,

그리고 동동주가 궁합이 잘 맞고

오늘은 비까지 와서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기분좋은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깨달음에게 오후엔 뭐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김밥이 먹고 싶다고 그래서

급하게 재료를 사기 위해 우린 슈퍼에 들렀다.

 내가 김밥재료를 사는 동안 깨달음은 과자코너에서

 애리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다. 

 

 

계산대에서 기다려도 안 오길래 가봤더니 뭘 그리도 유심히 관찰하고 고르고 있는지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여러번 하고 있었다. 

당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거 그냥 사라고 그랬더니

 코리아타운에서 안 파는 과자를 고르고 있단다.

[ ........................ ]

그리고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과자들도 있는 것 같고

계절 한정판도 있는 것 같아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단다.

같은 쿠키나 초코케익이여도 크림, 초코, 흰초쿄, 딸기, 바나나맛,

고구마맛, 시나몬, 바닐라맛 등등 맛이 모두 다르니까

일본에서 살 수 없는 것들만 골라서 사야 한단다.

 과자들을 하나씩 들고 포장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집에 들어오니 언니는 깨달음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직접 만들고 있었고

엄마는 김밥 준비를 하고 계셨다. 

 

김밥을 몇 년만에 싸 보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자신없어 하시던 엄마가 

김밥 말기를 시작했고 옆에서 보고 있던 깨달음이 점점 가까이 엄마 쪽으로 다가 오고,,,

김밥을 한 줄 썰자마자 잽싸게 손을 뻗어 김밥 꽁지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런 깨달음을 보고 엄마가 우리들(자식들)이 어릴 적 소풍날 김밥 싸고 있으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썰기가 무섭게 꽁지를 서로 먹으려고 싸우던

생각이 나신다고 깨서방 하는짓이 얘들 같이 순수하고 귀엽다고 웃으셨다.

김밥을 써는 찰라를 노리고 있는 깨달음 눈빛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저녁을 맛있는 먹고 언니네와 동생은 서울로 떠났고

깨달음은 칼국수 두그릇에 김밥 꽁지를 모두 섭렵한 탓에

 배가 부르다고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자유롭게, 아주 평화롭게, 아주 행복하게,,, 마치 자기 집처럼..

다리까지 쭉 뻗고,..

다리 좀 오므리라고 몇 번 주의를 줬지만 언니, 동생들 다 떠났으니

이제 자기가 편한대로 해도 된다고

완전히 릭렉스 모드로 들어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잠옷으로 갈아 입은 깨달음은

어느새 엄마방에서 전용 쿠숀까지 베고

엄마방을 독차지하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너무 자유롭다고 엄마 계시니까 조심 좀 하라고 한소리 했더니만

손톱까지 씹으면서[괜찮아~~]라고  아주 건성건성 대답을 했다.

그래서 지금 당신 태도가 많이 건방지다고 한국말로 가르쳐줬더니

[ 곤반죠? (건방져?) ]라고 되물으며 나쁜 한국말은 가르쳐 주지 말라면서

형님들도 다 가시고 사위는 자기밖에 없으니까

어머님도 그냥 예쁘게 봐 주실거라며 너무 애민하게 신경쓰지 말란다.

[ ........................ ]  

 

그렇게 12시가 될 때까지 엄마와 티브이를 보다가 우리 방에 들어온 깨달음이

어머님이 해주신 모든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김밥은 당신이 더 맛있는 것 같더라고 어머님 손맛이 변한거냐고 물었다.

 김밥을 너무 오랜만에 싼 것도 있겠지만 

이제 나이 팔순이여서 예전처럼 그렇게 건강한 상태도 아니니까

 당신도 뭐 먹고 싶네,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는 주문은 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알겠다고 자기도 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어머님께 사과를 하겠다는 깨달음..

사과할 것까지는 없고, 당신이 즐겁고 행복해 하는 건 나 역시 좋고

가족들도 다 좋아하는데 너무 철없을 때가 있어서 속 없이 보이거나

건방지게 느껴질 때가 가끔 있어 좀 걱정스럽다고 그랬더니 조심하겠다며

자긴 한국만 오면 자기도 모르게 텐션이 업이 돼서 컨트롤이 안 된다고

그냥 마냥 좋고, 즐겁고, 행복하단다.

자기 고향도 아닌데 전혀 낯설지도 않고 자기 친척도 아닌데

보면 반갑고 좋고 기쁘다고,,, 한국에 오면 무언가 마음의 문이

자동적으로 활짝 열리는 듯해서 해방감이 든단다.

[ ........................... ]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 기일인 걸 잠시 잊고 까불었던 점에서 반성해야 할 것 같단다.

아니라고 당신이 우리 가족들, 친척들과 아무 꺼리낌없이

정겹게 떠들고 노는 것을 보면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다고 그랬더니

갑자기 얼굴색이 환해지면서 [ 고맙습니당~ ]라고 코맹맹이 소릴 했다.

[ .......................... ]

언제 또 끝말에 ㅇ붙히는 걸 알았는지...

진심으로 반성을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의 깨달음 모습은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참 많다.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고, 격식없이, 웃고 떠들고, 아주 천진스럽게 논다.

그래서 보기 좋기도 하지만 건방질 때도 많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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