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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한국 설날을 직접 체험한 남편의 반응

by 일본의 케이 201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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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추모관으로 향했다. 

 

 다른 가족들은 이미 아빠와의 인사를 마치고 

 

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여서 왠지 마음이 바빴다.

 

지난 10월에 왔을 때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아빠 옆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삶과 죽음이 종잇장처럼 얇고 허망한 것임을 

내 눈으로 또다시 확인하는 서늘한 시간이였다.


 

 

집에 도착하자 조카들은 추모예배에 부를 

찬송가 반주연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본팀 빼놓고는 이미 설인사를 끝낸 상태였지만

 

우리가 합류했으니 세배 드리지 않았던 조카들, 

시댁에서 늦게 도착한 언니네를 포함해

 

다시 세배타임을 가져야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상차리기 전에

 다들 세배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간 조카, 졸업을 앞 둔 조카, 

취업 준비중인 조카,,,,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고

 

 아무탈 없이 한 해를 바르게 성장해 주

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엄마는 눈물을 훔치셨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깨달음이 날 한 번 쳐다봤었다.

 

내가 우는지 안 우는지 체크하려는 것처럼...

 

형제들 끼리도 세배를 주고 받으며 덕담을

 나누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올 한해도 건강하고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아가자고

 

 조금은 희망적이며 조금은 현실적인 인사들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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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먼저 온 7명의 조카가 

거실에 줄을 서자 깨달음이 얼른

 

 방에 들어가 준비해 온 봉투에 세배돈을 

잽싸게 넣어 조카들에게 주려고 했더니

 

 조카들이 특별히 일본 이모부를 위해

 새해 메시지를 준비했다며

 

스마트폰을 보며 한 명 한 명이 한 대목씩 일본어로

 우리부부를 향해 읽기 시작했다.

 

급하게 어디서 번역을 했는지,,,직역이여서

문맥상 좀 이상한 대목이 많았지만

 

듣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 고마워서....

 

세배타임이 끝나고 바로 추모예배가 시작되고,,,

 

벌써 3주기였다... 빠르다면 빠른 3년,,,

 

예배가 시작되기 전 난 작은 방에 걸려 있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힐끗 쳐다봤었다.

 

사진속 아빠의 얼굴을 지긋히 쳐다보지

 못한채 어설프게 시선을 피했다.

 

어디에도 없는 우리 아빠.... 예배를 드리는 

시간내내 언제쯤이면 아빠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식사를 마치고 형부들과 깨달음은 일본에서

 가져온 정종을 3병째 마시며

 

한국물가, 주식투자, 세월호,, 그런 얘기들을 나눴다.

 

여자들은 설거지및 뒷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나도 주방쪽에 있느라 깨달음에게 통역을 

해 줄 수 없었지만 주방에서 바라본 깨달음의 모습은

 

 마치 말귀를 다 알아 먹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형부 얘기에 심각한

 표정까지 지으며 듣고 했었다. 

 

 안 방에서는 큰집 조카들까지 모여

 윷놀이를 하느라 시끌벅쩍 했고

아빠 장례식이래 보지 못했던 조카들은

 반가워서 악을 쓰기도 하고 입대한 

조카에게 군생활을 묻기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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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설거지를 하며 피부 맛사지, 

성형수술, 성지순례 등등 내년에는 엄마가

 팔순이니 파티를 해야한다는 얘기들도 나왔고

 

그간에 있었던 얘기들을 나눴다. 

 

그렇게 저녁이 깊어갔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할 

팀들은 짐을 다시 챙기며 정체구간, 

소요시간들을 체크했었다.

 

오랜만에 만나 헤어지기 아쉬운 큰 집네 

오빠들과도 내년을 약속하며 뜨거운 악수를 했고

 

모든 가족들이 취침시간에 들어간 시각은

 새벽 1시 30분이 훌쩍 넘어서였다.

 

침대에 누워 깨달음에게 

피곤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멀뚱멀뚱한 눈을 하고서는 아까 

[박0스]마셔서 안 피곤하고 재밌단다.

 

[ ............................ ]

 

그러고 보니 거실 청소할 때 남자분들 

피곤하다고 [박0스]를 권했더니

카페인이 많이 들어서 자기 전에 마시는 거 아니라해서

형부들은 안 마시던데 깨달음은 낼름 받아 마셨었다.

 

아빠기일이긴 하지만 온 가족이 다 모여서

 세배하는 것도 재밌고,

 

처음으로 한국의 대명절을 엿볼 수 있어 좋았고

 

역시 한국은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고

 

오늘 자기가 느꼈던 것들을 계속해서 얘기했다.

(조카들이 우리 부부에게 보내준 메시지)

 

 

특히 조카들이 자기를 위해 일어로 

한 마디씩 준비해 준 것이 너무 감동적이였다며

 

일본인인 자기를 위해 일본어로 준비를

 하려고 했던 그 마음과 정성이 

 

너무 예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자기 조카들은 한국인 외숙모를 위해

 

한국어를 준비하려는 생각조차도 못했을 거라고 

사람을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은

 

역시 한국사람이 남다르다고 가슴이 뭉클했단다.

 

자기가 가족들에게 사랑 받고 있음을 팍팍 느꼈다고 

너무 고마웠다며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케이씨, 감사합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 ............................ ]

 

그리고, 조카들 한 명 한 명에게 제대로 

된 덕담을 했어야 하는데 한국어를 못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밖에 말을 

못한게 반성할 점이라고

 

한국어 공부 안 했던 걸 좀 후회한단다.

 

난 깨달음 얘기를 들으며 눈꺼플이 자꾸 잠겼지만

 

깨달음은 [박0스]덕분인지 전혀 

피곤해 하지 않은 기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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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돈을 나이별로 줘야했었네,,, 

어머님은 왜 우셨는지,, 형제끼리 세배할 때는

 

세배돈을 주고 받지 않는지,, 여자들 세배는 좀 다르더라,,

 

근데 왜 한국은 세배돈을 봉투에 넣지 않고 그냥 건네는지,,,

 

복주머니를 차고 있던지 복주머니에 넣어야 정석이네.. 

 

추모관에서 오는 길에 연놀이를

 하던데 너무 오랜만에 봤네...

 

조카들이 하는 윷놀이는 일본하고 방식이 똑같더라..

 

명절 때는 막걸리를 마시면 안 되는지,,,,

 

멋지게 한국말을 했어야 했네...

홍어찜이 진짜 맛있었네...

 

다음엔 자기도 한복 입고 세배를 해야겠네..

 

질문, 반성, 회고, 음미, 후회를 되풀이 해가며

 혼자서 얘길 계속하다가 거실을 한 번 

빼꼼히 내다 보기도 하고, 주방에서 

물도 한 컵 떠다 마시기도 했다.

 한국의 구정을 처음으로 지켜봐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깨달음을 보며

난 거의 반수면상태에서 생각했다.

역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박0스]를 

먹이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구정과 아빠의 3주기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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