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를 넘어 회사에 도착했을 때 깨달음은
기공전문 맛사지 아저씨에게 몸을 맡긴
상태로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여직원과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처음으로 맛사지를 받았던 여직원 한명은
허리가 너무 아파 앉는 게 불편했는데
거짓말처럼 편해졌다고 나에게도 오십견이
금새 나을 거라고 기대감을 실어줬다.
또 다른 여직원 역시도 허리와 다리가 아파
오래 걷질 못했는데 몸이 아주 가벼워졌다며
내게 올라가지 않았던 발이 배꼽 위까지
올라갔다며 몇번이고 보여줬다.
[ 저 선생님, 구마모토에서 아주 유명하대요]
[ 네..깨달음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출장으로
불렀다면서요 ]
[ 인기가 많아서 도쿄에도 한달에 한번씩
출장 나오시는데 예약이 항상 많다네요]
[ 나도 효과를 보고 싶은데..]
우리 여자 3명은 여러가지 여성질환에 관한 얘기,
30대 후반을 접어선 두 여직원들이
하소연을 하는 것처럼 자기 몸이 점점
젊지 않음을 느낀다며 토로했다.
막바지에 접어든 깨달음은 잠자다가
쥐가 자주 난다는 얘기를 했고, 해소방법을
선생님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드디어 내 순서가 오고,,,
약간 휘어진 골반부터 잡아주셨고
발가락부터 맛사지 하듯이 근육들을
만지시는 것 같더니 바로 물었다.
[ 운동 하세요? ]
[ 운동이라기 보다는 지무에서 한시간씩은
빠른 걸음을 걷고 있어요 ]
[ 그래서 근육 풀어지는게 아주 빠르네요 ]
[ 좋다는 소리인가요? ]
[ 네..아주 좋다는 소리에요 ]
참 다행이다는 생각도 잠시, 선생님이 지긋이
어딘가를 누르는 것같더니 또 물었다.
[ 큰 병 앓은 신 적 없었나요? ]
[ 네....]
[ 간도 별로 안 좋으시네...]
[ .................................. ]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팠는지 무슨 병이였는지도
묻지 않고 아프게 누르는 느낌도 없이
여기저기 가볍게 만지는 것 같았는데 마치
내 삶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부끄러웠다.
지압이라고 해야할까,그렇게 힘을 주는 것 같지
않은데 어디가 안좋은지 딱 꼬집어 내는게
신기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리고 제일 문제인 왼쪽 어깨를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조심히 만지며 움직이기를 10분,
[ 오늘 안 될 거 같은데요. 지금,사모님 상태가
심해서 관절막이 줄어들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니까 먼저
관절운동을 계속하셔야 될 것 같네요,
오늘, 내일, 풀릴 것 같지 않는데요.. ]
[ .......................... ]
저쪽에 있던 깨달음이 얼른 달려와서
뒤둥그레한 눈으로 나랑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팔은 못 고쳤냐고 물었고
선생님이 차분히 설명을 했다.
우린 직원들과 함께 인간의 근육원리? 지압의
기초상식을 듣고 따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 당신을 위해서 부탁드렸는데,,제일 힘든
당신은 못 고치고 직원들만 좋아졌네..]
[ 직원들이 좋아졌으면 됐지..]
기대를 조금 했던 건 사실이지만
역시 오십견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보내준 소포가 도착해 있었고
깨달음이 바로 접시를 가져와서는 곱창김
하나를 열어 푹푹 찢더니 뜯어 먹었다.
[ 참,,대단한 아저씨야~당신은,,,]
[ 왜? 이 김은 생으로 먹는 게 맛있잖아..]
[ 그래,,많이 먹어..]
[ 나를 위한 선물이 없네,아무리 과자를 끊었다고
하지만,,,,그래서 이거라도 먹는 거야,,,]
[ 과자는 내가 모두에게 보내지 말라고 했어 ]
속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
[ 당신, 진짜 초딩같애..내가 이걸 부탁한 거야,
그래서 보낸김에 돌김도 같이 보내준 것이고.
지난번엔 제주도에서 천혜향 보내왔고,
매일 하나씩 잘 먹고 있잖아,, ]
[ 아,,그랬지....]
난 어깨 찜질팩이 절실히 필요했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우리 시어머니를 드렸고 일본에서 사려고
했더니 원하는 사이즈가 없어 급하게
동생에게 하나를 더 부탁했던 것이다.
[ 알았어..미안해~몰랐어..]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듯한 뉘양스로 한마디
하고는 주방에 가더니 뭔가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후, 쥐포 2개를 구어서 온 깨달음이
야금야금 맛있게 먹었다.
난 찜질팩으로 어깨 맛사지를 하면서
다음주에 제출할 레포트를 정리하느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2시간쯤 지났을 때 너무 조용해서
깨달음 방에 가봤더니 없고 내 방에서
옆드린채 곱게 자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걸 보고 찍지 말라며
두눈을 찔끔 감았다.
[ 왜 내 방에 잠 자는 거야? ]
[ 그냥 당신 방에서 자고 싶어서,,]
[ 왜 그래? ]
[ 그냥... ]
[ 말을 해, 피곤해?]
[그냥 좀 외로워서,,아까 그 기공 아저씨가
나보고 살 빼라고 했어, 근데,,당신도 구박하고,,
갑자기 서글펐어..]
[ ........................... ]
서글프다는 말에 풋 웃음이 터질뻔 했다.
[ 나도 회사 잠시 쉬고 당신이 휴양갈 때
같이 떠날까?]
[ 당신하고 싶은대로 해 ]
[ 말이 그렇지..같이 못 가, 바빠서,
당신 없으면 나 혼자 어떻게 살지? ]
[ 나 없이도 밥도 잘 해먹었으면서..]
[ 잠시 없는 것과 휴양 간 것과는 많이 틀리지 ]
[ 아직 멀었어,, 걱정 마,,]
우린 꽤 늦게까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세워둔 노후계획이 조금씩
앞당겨 질 것도 같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아서 조금 불안한 게 사실이다.
우리에게 남은 소중하고도 소중한 남은 시간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자며 만약에
주말 부부나 한달부부가 되더라도 서로
노력하자고 했다.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함께 할
시간을 많이 늘어야 한다며 둘만의 여행지를
만들어서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난
노후를 즐기자는 의견도 나왔다.
내 귀에 대고 깨달음이 속삭인다
[ 나,,살 뺄게..조금만 기다려 줘~]
[ 그래, 꼭 빼 줘~]
깨달음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난 오늘을
정리하며 일기를 써내려가다 아내의 인내는
남편을 살리고 남편의 인내는 아내를
명예롭게 한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문득 떠올랐다.
부부는 가위와 같아서 두 개의 날이
똑같이 움직여야 가위질이 잘 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요즘엔 많은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부부의 사랑이란 꽤 오래 뜸을 들인 후에야
성숙해지는 듯 싶다. 우리부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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