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신랑(깨달음)

35년전 일본의 우편물에 담긴 사연

by 일본의 케이 2015. 6. 4.
728x90
728x170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린 서로 각자 방에 들어가 짐 정리를 했다.

난 내 방에서 옷들을 정리하고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책상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거실에 틀어 놓은 오디오 볼륨을 약간 높여 놓고

각 자 방문을 열어 놓은채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짐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시간을 보냈던가,,,

CD를 바꾸고 싶어 거실로 나가면서 깨달음 방을

힐끔 쳐다봤더니 뭔가를 열중해서 읽고 있었다.

궁금해서 방에 들어갔더니 코를 훌쩍 거렸다.

[ ................... ]

 

손에 들린 편지를 읽고 있는 듯해서

울었냐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장학금 학회에서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다는

엽서도 있고,,, 그 당시 부잣집 아들이였던 친구가

미국여행 중에 보낸 엽서들도 있고,,,

남동생이 보낸 편지들, 고향의 여자 동창생이 보낸 편지,,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이

보내 주신 편지와 전보,, 그런 것들을 읽어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단다.

728x90

 

하나씩 나도 훑어 보다가 내 눈에 들어온 건 전보였다.

 아버님이 보내신 전보.

전보라는 걸 처음 봐서인지 생소하기도 하고

드라마에서나 봐 왔던 것이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 당시 급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항상 전보를 치셨단다.

옛날에는 참 불편했겠다고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

바로 연락하니까 편하다고 했더니 요즘에도

전보를 친다면서 한국은 전보 없냐고 물었다.

[ ..................... ]

반응형

옛날에는 40년? 50년 전에는 [전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축전]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일본에서는 결혼식이나 생일, 입학, 졸업 등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장례식이나 세미나 등에 참석을

못할 경우는 죄송하다는 내용을 담아 보내기도 한단다. 

그냥 전화하면 되지 꼭 [전보]로 전해야 하는 게

좀 귀찮은 것 같다고 그랬더니

축하든, 사과든 서면으로 보내는 게

의미가 있어 일부러 [전보]를 보내기도 하고

더불어 꽃이나 인형들도 함께 보낸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일]에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란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깨달음 편지 속에 첫번째로 발견한 전보에는

 [ 코타츠(전기난방 테이블) 사지마, 보낸다

[コタツ買うな、送る] 라고 적혀 있었다.

겨울에 사용하기 위해 코타츠를 사겠다고

용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전보를 받고

아버님이 보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단다.

한글자 한글자마다 돈이 드니까 최대한 짧게 

 보내시느라 간단명료한 단어선택의 센스가 있어야했단다. 

300x250

다음 전보는 [ 조부 사망, 돌아와, 아빠 ]라고 적혀 있다.

( 祖父、死す、帰れ、父)

대학 3년, 학기가 막 시작되던 달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학교에서 수업중인데 방송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길래

부랴부랴 학회실에 가서 전보를 받았고

열어 봤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였단다.

그 길로 바로 시골에 내려갔다고,,

래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단다.

나하고는 살아온 세대가 달라서인지

이 누렇게 바랜 전보지를 보며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깨달음을 눈물 나게 했던 건 남동생에게 온 편지였다.

형에게 잘 있냐고, 자긴 이번 시험 점수가

 별로 좋게 나오지 않았다는 내용과

 물리 62점, 영어 76점, 역학 60점, 수학 90점,,,,

 받은 점수도 적혀 있었다.

깨달음이 대학에 합격하고 동경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고

3살차이나는 동생은 고등학생 이였기에

 주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거리를

편지로 많이 얘기하곤 했단다.

특히, 형처럼 자기도 건축학과를 갈까 말까하는

갈등과 불안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남동생이 보낸 편지를 읽어 보고 있으니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동생이 훨씬 자길

의지하고 좋아했다는 게

느껴졌다면서 지난달 시댁에서 동생 만났을 때

밥값 받은 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고

이제까지 솔직히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는데

이젠 자주 연락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깨달음은 옛 편지들을 꺼내보며 타임머신을 탄 듯,

그 당시 가족애, 형제애, 우정을 새삼 느꼈고

[전보]에 담긴 사연들로 깨달음 가정사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35년전,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빛바랜 [전보]에 삶이 묻어 있어 눈이 자꾸만 간다. 

 

 

'일본인 신랑(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을 춤추게 하는 것  (47) 2015.06.19
한국식 아침상도 은근 힘들다.  (39) 2015.06.10
맛집을 구별하는 남편만의 방법  (25) 2015.05.28
일 못하는 남자  (29) 2015.05.18
여자보다 살림 잘하는 남자  (23) 2015.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