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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말이 주는 상처는 깊고도 깊다

by 일본의 케이 201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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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낸 저녁시간, 초인종이 울렸다.

내 이름으로 배달된 소포였다.

발송자가 우리 지도교수 성과 같았고 이름은 여자분이였다.

갑자기 찬기운이 맴돌았던 건

교수님 아내분의 이름 때문이였다.

소포를 뜯기 전에 후배에게 혹 무슨 일 있는 거냐고

 카톡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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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담긴 편지...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편지를 꺼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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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돌아가셨단다, 작년 12월 7일날,,,

3년간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던 모양이였다.

교수님 부고안내를 이사하기 전집으로 하셨다는데

다시 되돌아왔다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신년선물을 보냈던 것이다.

후배도 몰랐단다. 연구실을 그만 둬서,,,

 눈물이 났다.

무슨 이유의 눈물인지 알다가도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참,,나를 힘들게 하셨던 우리 지도교수님,,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견뎌야만 했고,

참아야만 했던 3년이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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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교수님 때문에 사마(様)라는

극존칭을 아주 싫어하게 됐다.

당신보다 내 논문이 앞서가면 역시 한국인은 머리가 좋다면서

 일부러 내 성에 사마를 붙혀, 정사마, 정사마 하시며 비꼬셨고

정사마는 내가 안 가르쳐줘도 다 아시죠?라고

 비아냥거리셨다.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사마라는 호칭을 쓴다는 자체가

웃기는 얘기라는 걸 본인도 알고 계셔서

장소를 가려서 나를 정신적으로 아프게 하셨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다른 교수들 앞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둘만이 있는 연구실에선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셨던 거였다.

[굴욕]을 철저하게 맛보게 하셨던 분,,,,

그래서 그 분을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사람을 용서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침 일찍 우체부 아저씨가 건네 주신 소포를 받고 싸인을 하면서 얼핏 보낸이의 이름을 봤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내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기 시작했고 한순간 온 몸의 피가 목덜미를 향해  

keijapan.tistory.com

 

 생각없이 뱉은 말에도 상처를 받는데

일부러 상처를 주기 위해 하는 말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들고 찌르고 때려서 받는 상처보다

[독이 선 말] [인격을 모독하는 말]들은 

오랜시간 아물지 않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도 매해 신년 인사선물을

연하장과 함께 보내드렸다.

미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계셨기에

내가 졸업을 했다는 감사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일까....

작년에 느닷없이 나에게 초코렛을 보내셨을 때

무슨 뜻인지, 무슨 의도인지 알지 못한 채

미움과 의혹만 가득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반성의 의미로 보내셨는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냥 살아계실 때 내 마음에서 교수님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내려놓았으면

이렇게 가슴 한켠이 무겁지 않을텐데라는

후회아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사람을 용서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 말로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좀처럼 그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

인간은 부모, 형제, 부부, 연인, 친구처럼

자기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과 관계에서 받은 

[말의 상처]를 더더욱 아파한다고 한다. 

아마도 난 교수님을 나와 가까운 관계라 생각 했기에

상처의 골이 더 깊었던 것 같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어쩌면 가까운 사람들이 던져내는 말들에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말은 삶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제 교수님은 저 세상 사람이 되셨지만

그 분을 통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와

  때를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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