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커플들 이야기

한국의 광복절날, 남편과 나눈 대화

일본의 케이 2018. 8.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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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곳 일본은 추석날이다.

지난 11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우린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밀린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휴식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휴일에 하는 청소를 위해 각자 

맡은 곳에서 쓸고 닦고를 하는데 갑자기 

청소기 소리가 이상해서 나와보니

거실에 청소로봇을 틀어놓고 로봇이 

잘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왜 갑자기 청소로봇이야? ]

[ 응,,청소하다가 귀찮아서..]

[ 근데 그 폼은 뭐야? ]

[ 응, 더워서,쉬면서 지금 로봇 감시 중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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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청소기는 충전기에 꼽아 놓고 머리는

타월을 감고서는 의자에 앉아 눈을 희번떡 

하게 뜨고 날 쳐다본다.

[ 왜? 찍지 말라고 쳐다보는 거야? ]

[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거 아니야? 

런닝차림인데..]

[ 너무 섹시해서 찍는 거야, 웃겨서 ]

자기 뱃살을 꼬집으면서 돼지짱, 

돼지짱이라며 내가 뭐라 말하기 전에

미리 자신의 뱃살을 가지고 자학을 했다. 

[ 지금 열심히 살 빼고 있으니까,

날씬해져서 내가 케이한테 받은 

설움과 괄시를 다 폭로할거야 ]

  [ 듣기 싫으면 빼면 돼, 지금이라도 알았지? ]

퉁명스럽게 내뱉은 내 말에 다시 눈을 흘겼다.

[ 그건 그렇고 왜 청소를 로봇에 맡겨?

흡입이 약해서 다시 하곤 했잖아 ]

[ 알아,,귀찮아서,,그냥 로봇 시킬거야,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청소 잘 할꺼야 ]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다시  청소로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청소를 끝낸 우리는 또 각자 자신의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질 무렵,

  산책겸 운동을 나갔다.

[ 오늘은 사람들이 없네..]

[ 응, 추석날 우리들이나 이렇게 뛰지

다른 사람들은 다들 고향에 갔을 거야... ]

[ 깨달음~적당히 하고 갑시다 ]

[ 나는 오늘 두배로 뛸 거니까 당신은

먼저 들어가도 돼 ]

[ 그럼 저녁은 뭐 먹고 싶어? ]

[ 땀을 많이 뺄거니까 보양식 먹어야 될 것 같애 ]

[ 알았어 ]

깨달음을 두고 난 마트에 들러 저녁을 준비했다.

내가 들어오고 1시간이 훌쩍 넘어서 깨달음은

물먹은 솜처럼 축쳐진 상태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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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당신이 좋아하는 백숙이야, 녹두 넣은 거

내일이 말복이니까 미리 먹어두는 거야 ]

[ 역시, 내 마음을 잘 읽었네..고마워.

근데..왜 국물이 적어? ]

[ 음,,물 조절을 제대로 했는데 올려놓고

책 좀 읽다보니까 국물이 쫄아버렸어..]

[ 그리고 왜 녹두색이 왜 이래? ]

[ 응, 깐녹두여서 먹기 편할거야, ]

[ 난,,,껍질까지 있는 녹두죽이 좋은데...

원래 껍질에 영양이 들어있잖아,,

국물이랑 같이 떠 먹으면 죽도 더 맛있는데 ]

[ 오늘은 그냥 드십시요~~]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줄 알고

가만히 닭다리를 뜯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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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이 어때? ]

[ 맛은 진짜 좋아, 근데,,국물이 적어서,,

죽이 좀 밥같애, ,,아니, 근데 맛있어. 

 이 묵은김치 올려 먹으니까 완전 끝내 줘~]

내 표정을 보고 바로 말의 수위를 바꾼 줄 알지만

조절에 실패한 것을 인정하기

깨달음의 불만을 가볍게 들어 줬다. 

 더워서인지 옷을 또 벗고 본격적으로

닭다리를 잡아 뜯는 깨달음.

[ 완전 부들부들 해~~~진짜 맛있어 ]

[ 응, 많이 먹어..] 

국물이 적네, 깐녹두는 향이 적네..뭐라고

말이 많았지만 깨달음은 아주 맛있게

닭 반마리를 거의 다 먹었다.

[ 역시 땀 빼고 먹으니까 잘 들어가네,

근데, 한국 추석은 언제지? ]

[ 9월 24일 ]

[ 그 때는 정말 한국처럼 추석상 멋지게 차려서

한국친구들 불러 같이 먹을까? 아님, 그냥 그날

파티해 버릴까? 추석파티? ]

[ 알았어, 생각해 볼게 ]

[ 아, 오늘 한국은 광복절이지? ]

[ 응 ]

[ 만세 안 불러? ]

[ 웬 만세? ]

[ 광복절이니까 만세해야 되는 거 아니야? ]

[ 속으로 했어 ]

왜 속으로 했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난 만세를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 일본은 패배를 인정하고 한국은 독립을 맞이하고

두 나라에게 의미가 전혀 다른 날이네,,]

[ 응,,]

[ 두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겠지,,,]

[ 응... ] 

[ 뜻깊은 날, 이렇게 맛있는 음식 먹게 해줘서

고마워, 국물은 좀 부족했지만 아주 맛있었어 ]

깨달음은 내 음식에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자기 취향대로 만들어주길 바랬다.

[ 근데 진짜 만세 안 불러? ]

[ 서울에서는 만세 부르는 체험? 같은 걸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여기서 만세를

부른다는 게 좀 웃기지 않아? ]

[ 아니지, 광복절을 기념해서 목청껏

만세를 불러야지,속으로 하지 말고, 일본에서

 만세를 부르면 더 의미 있는 거 아니야? ]

듣고 보니 깨달음 말처럼 일본에서

광복절날 만세를 부르면 눈물이 날 것이다.

벅차고, 벅차서,,하지만, 처음부터 만세를

불러야한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던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바보처럼 그날의 그 뜨거운 

열의과 함성을 상기시켜 본다.

난, 언제까지 이곳에서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