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커플들 이야기

가족간에도 공과 사가 철저한 일본인

일본의 케이 2017. 1. 14. 00:02
728x90
728x170

아버지가 엄마 건망증이 심해진 것 같다고 

걱정하시던데 괜찮아? ]

 [ 늙어서 어쩔 수 없지..기억력도 떨어지고,,

지난주에도 우체국을 세 번이나 갔어..

틀린 도장을 가져갔다가 다시 오고,

 인출한 돈을 거기에 두고 오는 통에 다시 가고,,

좀 그랬어...]

[ 지난번에 슈퍼에서 쇼핑한 것을 카운터에

놓고 와서 전화 왔다며?]

[ 아,,,그런 일도 있었지...]


[ 요즘 했던 일들이 잘 기억이 안 나? 

왜 깜빡깜빡한다고 생각해?]

[ 나이 먹어서 그러겠지...]

[ 엄마는 안 힘들어?]

[ 힘들다기 보다는,그냥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니]

[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필요한 만큼만

돈을 들고 다닌는 건 어때?

 목에 걸고 다니는 거 있잖아.]

[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그렇게 해 보마 ]

[ 아버지 식사 챙기느라 엄마가 고생이 많네..]

[ 아니다,,도우미가 오니까 많이 도움이 돼.

걱정 안 해도 돼..둘이서 잘 버티고 있으니까..

근데 이번에도 돈을 많이 쓰게 해서 어쩌냐,,.]

[ 그런 소리 하지마~비싸지도 않았어 ] 

신정날 저녁, 내가 아버님과 함께 4명의

 토정비결을 맞춰 보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부엌에서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오늘 저녁에 시어머니가 보내신 소포가 도착했다.

전표에 음식이라 적힌 걸 보고 얼른 뜯던 

깨달음이 잎녹차를 보고 당신 마시라고 

보낸 듯 하다며 또다른 포장을 뜯어보고서는

 아무말 없이 바로

내 쪽으로 내용물을 쭈욱 밀었다.

[ 왜? ]

[ 당신 좋아하는 거잖아,난 또 내 것인줄 알았네.]


히노나쯔게(日野菜漬)라는 깨달음 고향의

특산물인 절임야채이다.

생김새는 우리의 열무와 비슷해도 색깔과 크기가

좀 다르고 먹으면 갓김치 같은 쌉쌀한 맛이 나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절임음식이다. 

[ 왜 나 좋아하는 것만 보내셨지?]

[ 몰라,,]

[ 어머님께 전화드려야겠다~]

[ 당신이 해~]

[ ................................ ]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사진)


[ 어머님, 저에요, 왜 이렇게 보내셨어요,

움직이기도 힘드신데...]

[ 지난번에 케이짱이 돈 많이 썼잖아. 

음식도 냉장고에 가득 사다 놓고, 

고타츠(전기테이블)도 사 주고 그랬잖아,,]

[ 아니에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고타츠는 따뜻한가요? ]

[ 응,,요 며칠 추웠는데 너희들이 새 걸로

바꿔 준 덕분에 아주 따뜻하고 좋아,,

너무 고맙구나,,]

[ 깨달음이 자기 것 아니라고 삐졌어요 ]

[ 그래? 깨달음은 어릴 적에 많이 먹어서

안 먹어도 되니까 그냥 케이짱 혼자 먹어~

케이짱,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이번에도 너무 신경을 많이 써줘서 미안하고 ]


지난 신정날, 우리가 고타츠를 사가지고

갔을 때 물건 값을 주겠다고 깨달음이랑

실랑이를 벌렸다. 

그냥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현금을 내미셨고

우리가 강하게 거부하자 반값이라도 내야한다고 

깨달음에게 줬다가 나한테 줬다가 몇 번을 하셨다.

모처럼 외식을 할 때도 그렇고

집에서 초밥을 시켜 먹을 때도

당신네 몫을 따로 내려고 하시는 바람에 

작년에는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그러면 

저희 마음이 불편하다고 식사값만이라도 

우리가 지불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식사대금은 그냥 넘어가셨는데

이번 테이블은 절대로 안 된다고 완강하셨지만

우리가 안 받고 도쿄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셔서 이렇게

소포를 보내신 게 분명하다.

자식간에도 공과 사를, 특히 돈에 관해서는

아주 철저하게 구별하는 모습은

배워야 할 부분이지만 

자꾸만 허리가 굽혀져서 거동이 불편하신

 시부모님을 볼 때마다 난 솔직히 

안 그러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가 한다고 해도 고작 그런 것밖에

 해드릴 수 없는데 그것조차도 돌려주시려고 하니,

아직 결혼생활 6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있을때면 여기가 일본임을,

시부모님이 일본인임을 재확인하곤 한다.

몇 백만원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아들이 산 것인데도

며느리에게 감사를 표하는 그 넓은 아량과

성품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자꾸만 기억이 가물거려 잃어버린 물건이 

많아져서 걱정인 우리 시어머니가

이런 건 잊지 않으시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챙기는

그 마음에 참 가슴이 짠하다. 

장남이였던 깨달음을 무척이나 

챙기셨다는 우리 시부모님.

그래서인지 서방님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는

허전함을 갖게 할 만큼 큰 아들 깨달음에게

 모든 걸 다 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깨달음도 늦였지만 효도라기 보다는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릴려고 하는데

시부모님이 이렇게 확실히 구별을 하시니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것에 명쾌하게 선을

긋는 게 참 일본인스럽기도 하다.

가족이기에 더더욱 돈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하시려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 정도는 받아주셨으면 좋으련만,....  

 앞으로도 우리 시부모님께 

더 잘드려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