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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5

돈 앞에선 일본인도 다 똑같다 -2 우린 결혼 초부터 서로의 스케줄을 공유하는 편이어서 대략 그 사람의 행동반경을 유추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도쿄를 벗어난 미팅이나 출장은 물론 웬만한 약속들도 대충 알고 있다. 굳이 알아야한다고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상대의 스케줄을 얘기하다 보면 조율하기가 편한 게 사실이다. 이곳은 오늘까지 연휴였는데 난 긴자(銀座) 쪽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 어느 정도 대충 마감을 하고 집에 가려는데 깨달음에게 근처에 와 있다면서 초밥집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깨달음 덕분에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가 우린 니혼슈(日本酒)로 주문했다. 기분 좋게 한 잔씩 마시는데 서방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엊그제도 서방님 때문에 말다툼이 있었는데 분명 그것 때문일 것이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산 정리를.. 2022. 9. 20.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마지막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식들이 모이고 손녀와 증손자가 응원한 덕분에 일주일을 더 견디셨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발신자가 서방님 이름이 뜬 핸드폰 화면을 내게 내밀며 전화를 받던 깨달음이 메모지에 8시 41분이라고 적었다. 서방님은 교토에서 요양원으로 향하는 길이라며 사망신고서를 받는 것부터 앞으로 해야 할 절차에 관한 얘기가 오가는 동안 나는 신칸센을 예약했다. 2시간 동안 달리는 신칸센 안에서도 또 두 시간을 더 타고 간 버스 안에서도 깨달음은 잠을 자지 않았다.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울진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무거운 침묵이 깨달음을 감싸고 있었다. 회관이라 불리는 곳에 안치되어 있던 어머님은 다다미방에 누워계셨다. 서방님과 깨달음이 번갈.. 2022. 4. 19.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 금요일, 7시 50분 신칸센을 타고 시댁으로 향한 깨달음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일 때문에 도저히 함께 갈 수 없으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주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오후 1시가 넘어서 코로나 항원검사기와 함께 요양원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요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서방님은 목요일부터 밤샘을 하셨고 깨달음은 이 날에서야 출발을 했다. 들릴 듯 말 듯 여린 숨소리를 내쉬며 몸을 비틀고 계신다는 어머님.. 서방님이 아버님을 모시러 간 동안 깨달음과 잠깐 통화를 했다. [ 의사 말이 오늘이 고비라네..] [ 그럼,, 나도 일 끝내고 바로 갈게 ] [ 아니...돌아가시면 그때 와도 괜찮아..] [ 뭔 소리야, 바로 가야지 ] [ 아니야,,, 내가 연락할게..] 생각보다 많이 .. 2022. 4. 11.
남편의 고마운 생각을 듣다 어젯밤, 우린 서로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지난 태풍 때, 각 방안에 설치된 환풍기에서강풍과 빗방울들이 먼지와 섞여 뿜어 나오는 바람에새벽에 둘이서 자다가 놀라 번갈아 각자의 방에 들어가 먼지가 섞인 검은 빗물을 닦느라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환풍기를 막으면 되는데 바람이 세기가 너무 강해서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둘이서 졸린 눈으로 벽과 침대까지 튀어버린 검은 빗물을 닦고 시트를 바꾸느라 아침까지 왔다갔다하느라 분주했다.그 일이 있고 난후 오늘은 아침일찍 새로운 환풍기로 교환하는 작업이 있었다. 우리가 깨끗히 지우지 못한 주변의 검은 빗자국은자기네들이 어떻게 해 드릴 수 없다는 말을하시길래 알았다고 깨달음이 일하시는아저씨를 안심시켜드리고 작업하기 편하게 커튼도 떼어드렸다. 아저씨가 옛 환풍기를 뜯고.. 2019. 10. 29.
일본 시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감사 지난 주말, 우리 시댁에 다녀왔다.서방님도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와 주셨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아버님이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두 분이 필요한 것들 적어놓은 메모지를 받아우린 마트로 향했다. 쇼핑한 물건들을 가지고 시댁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들은 이젠 쓸 일이 없는 모든 살림살이들을 버리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시댁에 올 때마다 버리고 있지만 묵은 살림들이 많다보니 치워도 표가 좀처럼 나질 않는다. 깨달음은 안방을 난 옷장에 넣어진 옷가지를 모두 재활용 봉투에 넣었다.2층에 올라가봤더니 쥐들이 다녀간 흔적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빈집,,, 빈집이 되어가는 과정이리얼해서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묵묵히 물건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깨달음이 상기 된 목소리를 날 부른다.[.. 2017.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