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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21

나이를 먹어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주 월요일, 퇴근하고 5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티브이가 먹통이 되었다.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화면은 나오지 않고 소리만 들려서 여길 만져보고 저길 두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 시간 후,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이 좀 맞아야 말을 들을지 모른다며 손바닥으로 툭툭 때려보았지만 여전히 무반응. 라디오라고 생각하고 일단 전원을 켜 둔 상태로 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연식이 오래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리를 맡겨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결혼하고 샀으니 10년이 넘었고, 그것은 이미 수명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새것을 사야 될 것 같아서 신형 모델을 검색하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정말 티브이 수명이 10년 정도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마른걸레로 앞.. 2023. 3. 11.
일본의 장례식, 관 속에 넣은 것들. 주말 아침, 장례식장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노야마 상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다. 깨달음 회사의 세무 관련 업무를 봐주었던 노야마 상. 난치병을 앓고 있긴 했지만 50대 중반이라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자들도 많이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장엔 노야마가 아닌 한국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저기 사이(崔)라는 성이 한국어로 뭐야? ] [ 최야, 최, 성이 최 씨였네 ] 노야마상이 재일동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국 이름은 처음 보는 거라며 깨달음이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간다며 귓속말을 했다. 누님들이 와 계셔서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바로 스님이 오시고 식이 시작됐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시부모님을 보내드린 날을 떠올리며 스님이 읊는 불경 소리를 들었다. .. 2022. 11. 22.
어제와는 너무도 다른 오늘이 있다 노트북 위에 노란 봉투가 놓여있었다. 늘 같은 봉투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분 뿐이기에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깨달음 회사 담당 세무사(税理士)인 노야마(野山)상이 보내온 것이다. 깨달음이 회사를 창립하고부터 지금까지 세무 일을 맡아주시고 우리 부부의 자산관리까지 해주셨기 때문에 어찌 보면 속속들이 속사정을 잘 알고 계신 분이다. [ 깨달음, 노야마 상, 이번에도 아무 연락 없이 잠수 탔었어? ] [ 응, 늘 그러니까.. 또 입원을 한 건지.. 근데 이렇게 사과편지 보낸 거 보면 아직까진 괜찮다는 소리겠지 ] [ 난치병이라고 그랬지? ] [ 응,,] 나와도 몇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던 노야마 상. 지병이 악화되기 시작되던 3년 전부터 일처리가 미뤄질 때마다 사과하는 마음에서 편지와 상품권을 보내셨다. .. 2022. 11. 16.
산 사람은 또 그렇게 산다 성큼 다가온 가을바람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주말엔 침대커버를 바꾸고 여름옷들을 정리했다. 버린다고 버리는데도 2년 넘게 안 입은 채로 그대로인 옷들이 꽤나 있어 한 보따리 싸놓고 책들도 내놓았다. 내 방을 빼꼼히 엿보던 깨달음이 맛있는 거 먹으러 오다하라(小田原)에 가자고 했다. 신칸센을 타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묻지 않고 따라나섰다. 신칸센 안에서 깨달음이 자기는 이와시(イワシ 정어리) 사시미를 먹을 거니까 내게는 튀김을 먹어보라고 했다. 와인으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사시미를 한 점 먹어보고는 입에서 녹는다면서 정말 맛있단다. 등 푸른 생선인 고등어, 정어리, 정갱이를 번갈아 먹으며 와인보다는 역시 니혼슈(日本酒)가 더 잘 맞을 거라며 늘.. 2022. 8. 30.
지금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8월 15일, 이곳은 추석이었지만 우린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실은 11일부터 연휴였고 언제나처럼 공휴일에 연연하지 않고 우린 자신의 시간에 충실했다.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보다 질식할 것 같은 폭염에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게 컸었다. 몸에 수분을 모두 말려버릴 듯 내려쬐는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집에서 보양식을 먹으며 나름의 피서를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 한켠엔 언제 요양원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대기조처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으로 놀 기분이 아니였음이 더 솔직할 것이다. 매일처럼 전화를 하시고 곧 죽는다, 곧 죽는다 하시던 아버님이 급하게 입원을 하셨다. 퇴원하시고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연휴 시작되던 날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어젯밤, .. 2022. 8. 17.
모두가 그렇게 산다 뜬금없이 이곳에 온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걷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곳에 와 있다. 집에 있는 수조 앞에서도 멍하니 30분 이상은 거뜬히 앉아있는 버릇이 있어서인지 살아 숨 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생물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차분해지곤 한다. 꼭 이곳이여야했던 것도 없이 단지 수족관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관내는 생각보다 훨씬 낙후? 된 느낌이지만 여러 생물들만 볼 수 있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돌고래쇼 앞에는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박수를 치고 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정작 돌고래는 뒷전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사색하기 딱 좋은 날,, 불어오는 바람결에 실구름들이 유유히 움직이고 있다. 쥐치처럼 생기기도 하고 복어를 닮은 녀석이 주둥이를 .. 2022. 5. 16.
시어머님이 구급차에 실려가시다. 아직 완전히 코로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곳은여전히 재택근무가 많다.하지만 깨달음은 출근시간을 한시간 늦추고퇴근시간은 한시가 앞당겼다.되도록이면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선택한 시간대이다. 퇴근을 한다며 사무실을 나왔다는 카톡과 함께 시어머니가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음을 알려왔다. 아버님이 깨달음에게 전화하기 전에 서방님에게먼저 전했고, 자세한 사항을 알고싶어 서방님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노령이여서 회복이 어려울지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구급요원....어머님이 퇴원할 때까지 면회는 할 수 없다는 말도덧붙혔다고 한다. 나도 퇴근을 하는 중이여서 많은 건묻지 못했고 일단 집에서 얘기하자고 했는데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집근처 이자카야에 들어가 적당히 주문을 하고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설명해주라고 했더니걱정말.. 2020. 6. 16.
신정연휴 마지막날, 우리 부부의 바램 신년연휴 마지막날 우린 영화관을 찾았다.깨달음은 이제 영화를 볼 때 카라멜팝콘과 콜라가 필수품이 되었다.이 날은 아이멕스로 3D안경을 쓰고2시간넘게 보면서 한 손은 열심히 팝콘을 먹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스페인 레스토랑에 갔다.[ 오늘 영화는 생각보다 별로였지?팝콘은맛있었는데.. ][ 응,, ][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 언제하는 거야?][ 1월 10일 ] [ 빨리 보고 싶다,,무슨 내용이야? ][ 미리 말하면 재미 없잖아 ] 배우 송강호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 깨달음은영화 [기생충] 개봉까지 설레인다면서송강호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시사회나 사인회가 일본에서 혹시열리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그렇게 영화 얘길 하다가 깨달음이 핸드폰메일을 잠시 확인하다가 시부모님 얘기를 꺼냈다. [ 당신이.. 2020. 1. 6.
시부모님, 그리고 난 역시 며느리 나고야에 도착한 우린 바로 헤어졌다.깨달음은 현장에 가야했고 난 그 미팅이 끝날 때까지 시부모님께 드릴선물을 사야한다. 깨달음은 연말을 앞 두고, 미리 점검해야할 현장이 많아져이동, 출장이 잦아졌다.대략 몇시에 끝날지 예상은 하고 있지만상황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서로 따로따로움직이자고 미리 말을 해둔 터였다.나고야역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에는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쌓인 사람들로북적거렸고 나도 그들처럼 연말 기분을 사진 속에 담았다. 지하매장에 들러 좋아하시는 간식거리를 몇 가지 사고 소고기 덮밥도 사고,,깨달음에게 연락이 없어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정작 본인은 혼밥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가끔 지나는 사람들이 날 힐끔 거렸다.쇼핑과 식사를 끝내고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고커피숍에 앉아 따끈한 코코아를 마시며.. 2019. 11. 18.
일본 시아버지의 부탁을 들으며 지난 화요일, 시아버님이 폐렴과 심부전으로 응급실에 가셨다는 서방님의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담냥염 치료도 함께 했는데 바로 안정을 찾았다고 괜찮다는 메일을 주셨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시골에 내려갈 준비를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진짜 안 내려와도 된다는 연락을 또 주셨다. 퇴근한 깨달음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특별한 것 없다며 위독한 게 아니니까 올 필요없다는 서방님의 말을 똑같이 전했다. [ 그래도 주말에 잠깐 다녀와야겠어 ] [ 응 ,, 알았어 ] [ 아니, 당신은 안 가도 돼. 일 있잖아 ] [ 그래도 가야지] [ 아니야, 나만 잠깐 얼굴만 보고 올거야 ] [ 나도 가야되지 않아? ] [ 당신이 이번에 없으면 안 되는 일이잖아.. 2019. 3. 19.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그를 바라보는 자식들 이번주 이곳은 월요일까지 3일연휴였다.연휴 마지막날 , 아침도 거르고 집을 나선깨달음에게서 후지산과 함께 샌드위치로아침을 대신했다는 카톡이 왔다.그렇게 오후까지 연락이 없다가 저녁이 되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왔다.한국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일본은연말에 송년회를 하듯이 신년에는 신년회를 한다.오늘 깨달음이 나고야까지 출장을 간 것은미팅과 신년회 참석을 겸한 이동이였다. 작년에 오픈한 호텔에서 무료숙박을 하게 되었다고 신년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라며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시어머니 병원에 가 보겠다고 했다.시간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고야까지 와서보니병원에 잠시 들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알겠다고 시골에 내려가려면 저녁에 적당히 마시라고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어머님이 지.. 2019. 1. 18.
남편의 청춘시절, 그리고 첫사랑... 아침 일찍부터 깨달음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주 친했던 대학 동창집에 가기 위해서인데 상복을 준비해서 입었다. 우리가 베트남 여행을 하던 둘째날, 동창의 부고소식을 들었고 그날 사정에 의해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했던 다른 몇 몇의 친구들과 함께 그 동창집에서 애도의 시간을 갖자고 했단다. 미망인이 된 아내분도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상심이 클텐데 친구는 가고 없지만 오랜만에 대학동기들이 모여 추모하자는 날이 바로 오늘이였다 [ 당신 울 것 같애..] [ 울지는 않을 거야,,그냥 울적해..] 그렇게 집을 나선 깨달음은 오후가 다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현관앞에서 소금을 뿌리라며 기다리고 서있는 깨달음 얼굴은 아침보다 훨씬 가볍게 보였다. [ 근데,,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 [ 응,,괜찮.. 2018. 11. 6.
한국에는 없는 일본 장례식의 독특한 절차 [ 왜 와이셔츠를 그거 입어? ] [ 장례식장에 다녀올려고] [ 지난주에도 가지 않았어? ] [ 응,,이번에는 다른 분이 돌아가셨어.. 어젯밤에...아침에 조문 갔다가 다시 옷 갈아입고 회사 출근 할 거야 ] [ 내가 아는 사람이야? ] [ 아니, 이번에도 당신은 못 봤던 사람이야,,] [ 아,,그래...] [ 매달,,,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떠나네,,] [ 그니까,,,안타깝다,,,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루 하루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야겠어...] 내 말에 깨달음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주도에서 돌아온지 벌써 2주가 지나는 동안 깨달음은 연달아 장례식에 참석을 했다. 두 분 모두 거래처 분으로 50대와 70로 한 분은 지병을 앓고 계셨던 분이였다고 했다. [ 와이프가 당신이랑 나이가 같을 걸.,,, 고인이 .. 2018. 7. 15.
죽기전에 일본인들이 꼭 하는 일 일본에서는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칭하는 슈카쯔(終活)라는 단어가 있다.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활동으로죽음이 가까운 노인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임종을 준비하는 행위이다.이들은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 미리장례절차를 정하고 장례식장 예약부터 수의 , 납골방법, 자녀들에게 남길 유산을 정리하고 개인정보 삭제 등 삶의 마지막을미리 준비한다. 가족에게 남길 엔딩노트에는 연명 치료의 여부,상속절차, 지인에게의 메시지 등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 보며 죽음을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다.2010년 독신노인을 위해 장례 절차와 유품처리 및 유언을 적어두는 엔딩노트가 등장하며 은퇴를 앞둔 단카이세대(1947-49년사이의 출생자)에게본격적으로 생전 정리 움직임이 시작했다. 언젠가 닥쳐올 .. 2018. 6. 10.
해외생활이 길어질수록 가장 그리운 것 메일을 읽은 후배와 통화를 했다.[ 언니,,그냥 내일 당장 오면 안돼요? 지금 그렇게 힘든데 왜 6월부터야? ][ 5월 28일까지 스케쥴 있어서 못 움직여..][ 가슴은 도대체 원인을 모른대요? ][ 응,,원인을 확실히 모르겠대..그냥 호르몬 불균형으로 혈관이 과다하게증가되서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고 그랬어어째든, 악성이나 그런 건 아니래서 다행이야 ][ 아이고,,힘들어서 어떡해..계속 일이 생기네..근데 먹는 것까지 힘드니... ][ 그니까,,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애.내가 입이 짧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데..한 끼 먹으려면 내 손으로 모두 준비를 해야하니.오죽하면 입원까지 생각을 했겠냐,,근데,,입원을 해도 한국음식이 나오는 것도아니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만 있을 것인데,,내가 필요로 한 건 그런 휴.. 2018.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