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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내 인생에 특별한 친구가 있다

by 일본의 케이 2018. 8. 29.

뭐가 좋을지 한참을 돌아다녔다.

친구에 딸이 결혼을 한단다.

중학교 동창인 미현은 일찍 결혼한 덕분에

이쁜 딸이 벌써 20대 후반이다.

내 친구중에 처음으로 자녀가 결혼을 한다는 게

기쁘면서 어색해 어떻게 축하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깨달음이

뭔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물건을 하는게

좋다며 주방용품 전문점으로 이끌었다.  

 벌써 결혼을 한단다.

이제 우리 나이 50를 막 넘겼는데 자식이

결혼을 한단다. 난 자식이 없어 실감 할 수도 없고

어떤 심경일지 그저 막연하게 상상만 해 본다.

친구는 딸이 결혼 하겠다고 선포를 한 후로

3개월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얄밉고,

너무 속상하고,

너무 애닳고,

너무 허무해서..

딸 얼굴도 보기 싫고, 하나부터 열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길래 

뭐가 그렇게 꼴보기 싫더냐고 물었더니

사위를 얻을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것도 그렇고,

어릴적부터 워킹맘으로 살아서

 딸과 함께 할 시간이 많이 없어 항상

아쉬워서 조금씩 같이 지낼 시간들을 만들고

있는데 덜컥 결혼을 한다고 하니 

미운 마음이 들었단다.

[ 사위 될 사람은 괜찮았어? ]

[ 응,,성실하고 그냥 평범해. 내 딸이 

평범한데 얼마나 조건 좋은 남자 만나겠어.

사위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어,,

내가 조금 더 여유있을 때 멋지게 결혼을

시키고 싶었는데 왜 지금 하려는 건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많이 없는데..

그냥,, 우리 딸이 엄마인 내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어 ]

속상해 하는 엄마를 보며 딸도 많이 아파했고

정말 잘 살 것이니 혼수도 필요없고, 둘이 열심히

성실히 살 것을 약속하겠다고 다짐하는

딸에게 할머니는 빨리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이는 천천히 가졌으면 한다고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깨달음도 잘 알고 있는 친구이기에 선물을

고르는데 아주 신중했다.

[ 그릇이 좋을 거야, 둘만 살아도

기본적인 그릇이 있어야 하잖아,

밥그릇이랑 국그릇 같은 거,,,,..]

깨달음은 혼자 들떠서 이것저것 그릇을 

살피고 다니면서 신혼에 맞는 색이 뭔지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식기류가 무엇인지

꼼꼼히 둘러봤다.

 한국은 나물을 많이 먹으니까 좀 넓은 접시가

유용할 것이며, 부모님이나 친척이 오면

접시가 많이 필요할 거니까 셋트가 좋겠다는둥

자기가 고른 것을 쇼핑 바구니에 넣었다.

[ 젓가락은 어때? 부부 젓가락? ]

[ 있겠지...]

[ 그럼, 손님용 젓가락도 좋지 않을까? ]

[ 응,,괜찮을 거 같애. 근데,,한국에도

젓가락 좋은 거 많아,,,]

[ 알아,그래도 가벼운 나무 젓가락이 있으면

편하게 쓸 수 있잖아 ] 

우린 큰 접시와 작은 접시로 구성된 기본 세트와

부부젓가락을 사서 우체국에 들러

바로 친구에게 소포를 보냈다.


그리고 친구와 통화를 했다.

멀리서 신경 쓰이게 했다고 미안해했고

지금은 딸과 신혼살림 사러 

가끔 쇼핑을 한다고 했다.

[ 깨서방도 같이 갈거야 ]

[ 멀리서 오는데 워낙 작은 결혼식이여서..]

[ 여기 일본도 거의 작은 웨딩을 많이 해 ]

[ 그래? ]

[ 가족단위로만 하고 하객들도 초대장 없으면

못 들어와, 한국하고 좀 달라,,]

[ 그렇구나.. 우리 딸도 거의 그렇게 간략하게

할거야, 둘이서  이미 다 준비했더라구..]

[ 역시 , 너 닮아서 똑부러지네..]


친구는 일본의 약식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게 상세히 물어봤다.

[ 일본도 간단화 추세구나,,결혼식은 뭐

심플하게 끝낸다해도 아직 20대들이

 언제 돈 벌어서 집 사고, 그럴지 걱정이 

앞서기는한데 그래도 둘이서 잘 살겠다고 

앞으로 계획도 꽤 현실성 있게 짜 놨더라구,

아무튼,,둘이 알아서 하겠지..부모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 ]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깨달음이 

[ 교론, 추카하니다~~(결혼 축하합이다]라고

내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고, 친구는 

깨달음이 까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깔깔깔 웃었다. 

[ 폐백 하는걸 보고 싶다고 아주 신났어  ]

[ 그래..꼭 보시라고 해야겠다]  

[ 뭐 필요한 거 있음 사양말고 얘기하란다.

메이디인 재팬으로 사가지고 간다고

깨달음이 뭐든지 말하래~]

[ 아니야, 없어~선물 도착하면 우리 딸한테

감사인사 전하라고 할게 ]

[ 그래~]


전화를 끊고 깨달음은 제일 친한 친구니까

축의금도 좀 두둑히 넣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맞다,,그렇게 할 것이다.

내게 있어 미현이는 아주 특별한 친구이다. 

18년전,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오고 이 친구가

서울에서 직장을 옮기고, 핸드폰 분실로

내 전화번호를 잃어버린 후로 서로 

연락이 끊어졌던 기간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우리집(광주 엄마집)을 찾기 위해

어렴풋이 기억하는 201동과 202동, 두 동을

 돌아다니며 한집, 한집, 초인종을 눌러 확인을 하며

나를 찾으려 했고 마침 집에 계셨던 우리 엄마를

만나 그 자리에서 바로 내게 전화를 했던

의지와 의리가 강한 친구였다.



그 더운 여름날, 친구를 찾겠다고 100가구가 

넘는 집을 계단을 오르락 거리며 일일이 

찾아헤맸다는 내 친구,,

 작년 4월에는 갑자기 일본에 와서 날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가족을 포함, 주변사람들에게 내 투병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우리 부부의 책이

출간되면서 모든 걸 알게 되었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에

내게 직접 사과를 하고 싶다며 당장 일본에 와

 내 얼굴을 봐야겠다고 안절부절했었다.

아니라고, 이젠 괜찮다고, 건강해졌다며

겨우 겨우 달랬던 기억도 있다.

 난 항상 그녀에게 날 좋아해줘서 고맙고,

 날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소통하고 만날 수

 있음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서 친구가

친구임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친구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해

미안해 했던 미현에게, 이번에는 내가

딸을 보내는 친구의 허전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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