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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일본인 남편도 주말은 이렇게 보낸다

by 일본의 케이 2019. 4. 15.

아침을 간단히 먹고 우린 산책겸 운동을 나갔다.

내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산책로 끝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도통 깨달음이 보이질 않았다.

한국은 벚꽃이 한창인 것 같던데 이곳은

2주전에 만개를 했고 지금은 야들야들한

선홍빛 잎들이 모두 져버리고 푸른

 이파리들이 보이고 있는데 이 산책길엔

아직도 반 이상 벚꽃이 머물러 있었다.

일본인답게 벚꽃을 너무 좋아하는 깨달음에게

 보여주려고 이름을 몇 번 불러도 조용하다. 


지난주까지 없던 수상보트가 눈에 띄는 걸 보니

여름이 꽤 가까이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깨달음은 어딨는지 카톡을 해봤더니

 집으로 돌아갔단다. 배탈이 난 것 같다고,

내 운동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서 만나잔다. 알겠다고 답을 하고

혼자서 쉬엄쉬엄 산책을 하면서 주말이 주는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전화기가 부르르 부르르 거칠게 떤다.

[ 왜? ]

[ 나 나갈 준비 다 했어. 당신도 운동 그만하고

어서 거기로 와 ]

[ 아직 30분정도 더 할 생각인데 ]

[ 그럼, 나 먼저 가서 차 마시고 있을게 ] 

[ 그래 ]

벤치에서 멍하게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는데

더 있으면 깨달음이 또 전화를 할 것 같아

투벅투벅 레스토랑으로 향하며 내 옷차림이

이대로 가도 좋을지 집에 들러

 갈아입어야하는지 갈등하다보니 

이미 레스토랑 입구에 다 와 있었다. 

나를 보고 얼른 손을 드는 깨달음.

[ 당신, 맥주 마실거야? ]

[ 아니 ]

[ 그럼 그 야채샐러드 먹을 거야? ]

[ 응, 근데 당신 배탈은 괜찮아? ]


배탈이 왜 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조금

아프다가 지금은 멀쩡해졌단다.

운동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 아니냐고 했더니

솔직히 말해서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약간 꾀를 부렸다고 실토를 한다.

[ 그건 그렇고 당신 왜 쉐터 입었어? 

안 더워? 봄 자켓 있잖아,, ]

[ 당신이 없으니까 뭐 입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입고 나왔어 ] 

결혼을 하고 항상 의문스러운 게 깨달음만 

그러는 건지 다른 남자들도 그러는 건지

여름, 가을, 겨울 옷 구별을 잘 못하는 것이였다.

여름을 뻬놓고 다른 3계절에 뭘 입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와이셔츠와 양복은 4계절 구별해서 잘 입을 수

 있는데 평상복은 그냥 대충 입어 버릇을 

한 탓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여자인 나는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이였다.

[ 날씨를 보면 알잖아, 더운지 추운지...]

[ 체감온도는 다르잖아,, 그니까 항상

좀 따뜻하게 감기 안 걸리게 입는 거야 ]


[ ............................. ]

[ 그리고 당신이 맨날 골라줘서인지 이젠

혼자서 입으려면 더 모르겠어 ]

[ 내가 코디 안 해줘도 당신이 좀 센스입게

입으면 얼마나 좋아? ]

[ 귀찮아, 당신이 코디한 옷 입고 나가면

다들 멋지다고 하니까 계속 당신이 해 줘 ]

[ ............................ ]

너무도 태연하게 말을 하면서 바게트에

 드라이카레를 듬뿍 올려 입 안 가득 집어놓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깨달음. 

운동하라고 했더니 배 아프다고 꾀병 부리고

계절감각 뒤떨어지는 옷 입고 와서는

 내 몫까지 저렇게 맛나게 먹고 있으니 

다이어트는 잊어버렸는지..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웬수다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우리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가 결혼하고 나서 모처럼 

가족들과 외출을 하려면 남편, 큰아들,

 작은 아들이 속옷만 입고 줄줄이 

거실로 나와 서서는 한 목소리로 

[ 나 뭐 입어? ]라고 묻는다고 남편들이

초딩만큼 손이 많이 간다고 했었다.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주방에서 난

밑반찬거리를 몇 가지 하고 있는데 자긴 

 도면체크를 마쳐서 팩스를 보내야 한다고

 했던 깨달음이 너무 조용해서 가봤더니 

내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열자, 얼음이 되어서 마치 자신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존재감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  깨달음. 지금 뭐해? ]

아무런 대답도 없고 눈도 안 마주친다. 


NHK에서 방영중인 옥중화를 보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하는 이 프로를 

아침형 인간은 밤10시 30분이면 눈이 감겨서

 볼 수가 없어 늘 녹화를 해두었다가 월요일날 

퇴근하고 보는게 일과인데 오늘은 왜 다시 

보고 있는 건지....

[ 이거 지난주 거 아니야? 왜 또 보고 있어?

 팩스는 보냈어? ]

내가 무슨말을 해도 꼼짝도 않고 정말

자기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무표정한

 표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옆으로 다가가 크로즈업으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깨달음, 당신 연기를 너무 잘한다.

이 병헌보다 더 잘하네,,한국에 있는 연예 

기획사에 이력서 한 번 내 봐야겠어]라고

 했더니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리며

웃음을 꾹 참는다.

왜 재방을 다시 보느냐, 언제까지 볼 것이냐,

이 귀한 주말저녁을 이렇게 보내 버릴 것이냐 등등

할 말은 많았지만 그냥 문을 닫고 나왔다.

주말이니 깨달음도 쉬고 싶었겠지,,

운동도 하기 싫을만큼 피곤했겠지..

멋부리는 것보다 감기 안 걸리려고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나왔겠지..

아내의 메뉴가 더 맛있어 보여 반 이상을

뺏어 먹었겠지....

집에 들어와보니 일도 하기 싫고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드라마가 실컷 보고 싶었겠지,,

깨달음 입장에서, 남편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좀 억지스럽지만 납득을 했다. 

그렇지않으면 내 호르몬이 이상분비를

일으킬 것 같아서 스스로를 컨트롤 했다.

세상 모든 남편들(외국인 남편 포함)이 죄다

이런식으로 주말을 보내지 않겠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보낼 거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는 주말 저녁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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