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생선조림과
샐러드, 반찬류를 샀다. 시부모님이 지금 계시는
요양원이 첫번째 계셨던 곳보다 먹는 게
부실하다고 하셨던 말씀에 조금이나마
만족감을 드리기위해 매달 정기적으로
요양원에 배달되는 제철음식, 제철과일
서비스를 해드리고 있고 과자나 빵같은
간식거리는 한달에 두번씩 보내드리는데
늘 부족할 거라는 생각에 이렇게 마트에
오게 되면 사드리고 싶은 것,
드셨으면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시려던 참이여서 우린 두 분을
모시고 아버님 방으로 갔다.
먼저 반찬들과 과자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고 있으니까 두 분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많다고 좋아하셨는데
그 때 어머님이 당신이 좋아하는 과자, 사탕,
초코쿠키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셨고 그런
어머님을 아버님이 힐끔 쳐다보셨다.
깨달음이 얼른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렇게 말했다.
[ 알았어, 엄마가 좋아하는 거 몇 개 가져가고
나머지는 아버지 냉장고에 넣어둘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버지한테 달라고 그래,
어차피 아버지가 식당에 가져가잖아 ]
[ 아니, 그냥 내 것은 내가 가져가고 싶은데]
[ 알았어, 그럼. 뭐가 가져가고 싶어? ]
두 분이서 이렇게 냉냉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이다.
어머님이 고관절수술을 하게 되면서부터
각방을 쓰셨고 그 때부터 노인성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어머님을 아버님이
못마땅한 시각으로 보셨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아버님 방에서 하루를
보내셨던 어머님이 아버님 방에 오지 않았다.
수술이후로 휠체어 생활을 하며 거동이 불편하고
특히 2층(여성전용)에서 3층(남성전용)으로
이동하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혼자 지내신다고 하셨다. 두 분이 같은 시설에
계시면서도 하루중에 만나는 시간은 3번의
식사시간인 공동식당에서라고 했다.
두 분의 취향이 확연히 달라서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당신들이 좋아하는 게
행여나 먼저 가져갈까봐 신경전이 느껴졌다.
[ 이 정0장은 지난번에 엄마 드렸으니까
이번에는 아버지 드린다, 괜찮지 엄마?
[ 응,,나는 아직 많이 남았어 ]
[ 필요한 거, 먹고 싶은 거, 내가 얼마든지
사올거니까 일단 이렇게 넣어놓고 드셔,
다투지 말고 ]
다투지 말라는 깨달음 말에 아버님이 다투거나
그러진 않는데 어머니가 자기 고집대로 하려고
하니까 마음에 안 든다고 또 한마디 하셨다.
화제를 바꾸려고 깨달음이 방 안의 온도가
너무 춥게 설정 되었다며 에어콘 작동법을
알려드렸다.
[ 그 숫자 그런 뜻이였구나,나는 반대로 했네]
[ 그래서 방 안이 너무 춥잖아 ]
아버님이 리모콘 버튼을 누르시면서 나를 보고
춥지 않냐고 물으셨다.
괜찮다고 하자 갑자기 자신들이 안 죽고
이렇게 오래 살아서 민폐끼친다며
볼 낯이 없다고 하신다.
[ 아니에요, 두분이서 이렇게 깨달음을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사장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돈 걱정도 마시고 더 오래 사세요 ]
실은, 우린 시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안 드리고 있다. 이 요양시설비도
두 분께서 받으시는 연금으로 지불하고 계시고
그동안 모아두신 저금으로 생활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어떤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있는데도 아버님은 늘 돈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신다.
그 때, 어머님이 당신 방에 있는 라디오가 나오지
않는다며 깨달음에게 내려가서 봐 달라고 하시자
아버님이 내가 그렇게 만지지 말라고
주파수 맞춰 놨으니까 그대로 두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만져서 또 안 나오는 거라며
자신의 방에 있는 라디오는 멀쩡한데
꼭 만져서 일을 만든다며 면박을 주셨다.
[ 엄마, 그냥 TV를 한 대 사줄게 ]
깨달음은 이번에 라디오가 아닌 TV를
사 드리겠다고 하는데도 어머님은 싫다신다.
[ 아니,나는 라디오가 좋아,테레비 안 좋아해 ]
[ 그래? TV가 더 편하지 않아? ]
[ 아니야, 라디오가 좋아,,]
[ 그럼, 내가 내려가서 한 번 봐볼게 ]
2층 어머니 방에 내려가 깨달음이 라디오를
만져봤는데 문제는 전파가 안 좋아서 체널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1층 안내실에 내려가 사정을 물어봤더니
이 건물 자체가 전파가 약해서 라디오를 듣기에는
조금 불편하실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 엄마, 그냥 TV 사야 될 것 같애 ]
[ 아니다,,사지 말거라,,]
[ 전파가 약해서 체널이 잘 안 잡힌 거래 ]
[ 아니야,,,잘 나 올 때도 있어,,그니까
체널만 잘 맞춰주면 돼..]
[ 왜 TV가 편한데 싫다는 거야 ]
침대에 차분히 앉으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 비싼 TV를
사서 뭐할 거냐며, 아버지 방에도 한대 있는데
자기까지 사게 되면 나중에 처리할 때 헐값으로
팔아야되고 괜한 헛돈만 쓰게 된다는 거였다.
[ TV 작은 것은 안 비싸 ]
[ 비싸고 안 비싸고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다,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고 싶어서 그래..
물건들도 필요 없고 죽을 때까지 되도록이면
한푼이라도 안 쓰고 싶단다 ]
[ 진짜 사지 마? ]
[ 응,,절대로 사지 말거라 ]
깨달음은 조금 걱정스럽게 다정한 눈빛으로
어머님 얘기를 들었고 알겠다고 그럼 라디오를
다시 사던지 고쳐보겠다고 대답했다.
[ 케이짱, 아까 아버지 방에서 추웠지..나는
아버지 방에 가면 한기가 많이 들더구나,
케이짱도 춥게 보이던데... ]
[ 아,,어머니..괜찮았어요 ]
실은 나도 좀 춥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님은
바로 눈치 채셨던 모양이다.
[ 아버지가 요즘 내 말은 전혀 들어주지 않아,
어느 누구말도 안 들으니까 난 그냥
아무말도 안 하고 산단다 ]
[ 왜? 아버지가 뭐라고 해서? ]
[ 그냥, 다투는 것보다 참는 게 더 편해서 ]
[ 그래도 싫은 건 싫다고 얘기 해야지,그래야
아버지가 엄마 말을 잘 듣지, 안 그래?]
깨달음이 타이르듯 말을 했지만 어머님은
고개를 저으며 엷은 미소만 보이셨다.
이렇게 속내를 보이시는 어머님은 지난번
왔을 때 뵈었던 어머님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여서 많이 놀라웠다.
예전처럼 총기도 가득하시고, 전혀
치매초기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분명 오락가락 하신 게 있었지만
당신 나름대로 생각하고 참고 아버님 앞에서는
그냥 입을 열지 않으셨던 것 같다.
[ 깨달음,그리고 케이짱, 와 줘서 너무 고맙고,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신경 안 쓰이게 하도록 하마 ]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신 어머님 말씀이
아프게 가슴에 박혀왔다.
자신을 치매노인 취급을 하는 아버님에게
주눅이 들었던 건 아닌가 싶어
괜시리 짠한 생각마저 들었다.
부부라는 게 뭔지,,60평생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도 이렇게 서로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모라는 입장에 서면 한결같이
자식들 걱정만큼은 한마음을 하고 사신다.
어머님이 지금처럼 맑은 정신이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투는 것보다 참는 게 더 편하다는 어머님
말씀이 아프게만 들려온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깨달음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어릴적부터 다녔던 진자(신사)에
인사를 드리는데 그 뒷모습에서
난 왠지 어머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었다.
제발 어머님이 오늘처럼만 건강하시길
그리고 조금만 참으셨으면 하는
응원의 기도를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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