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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당신의 딸이였기에 전 행복했습니다.

by 일본의 케이 201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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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 집으로 들어 가면 꽁꽁 언 내 손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 따뜻한 입김을 불어 주시던 우리 아빠.

추운 겨울날 등교하는 자식들을 위해 연탄불 부뚜막에 5명의 신발을 가지런히 올려

따끈하게 데워 주셨던 우리 아빠.

모처럼 끓인 동태국에 몸통은 자식들 그릇에 덜어 주고

당신은 대가리만 빨아 드셨던 우리 아빠.

지각하는 날 위해 자전거로 학교까지 바려다 주시고

내가 교실에 들어 갈 때까지 계속 지켜 봐 주시던 우리 아빠.

소풍가는 날이면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과자랑 알사탕을 사와

엄마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 들으면서도 방긋 웃어 주셨던 우리 아빠.

 

중,고등학교 때 납부금을 못내 칠판에 내 이름이 적힐 때마다

능력없는 부모 만나 이런 쪽팔림을 당한다고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고 최 진실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제비를 많이 먹고 자랐다는 얘기 하던데,

우리 가족들도 지긋지긋하게 수제비를 먹었다.

그 땐, 왜 그리도 빈곤했을까....

그래도 여느 아빠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차고 넘칠만큼 풍부하셨다.

자식들도 다 크고, 그렇게 바랬던 아들도 의사가 되고

빚도 청산하고 이제부터 자식들에게 효도 받고, 노후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됐을텐데 치매가 왔다.

진행속도도 빨라 치매 4년이 지나면서 자식들 얼굴을 못 알아 보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요양세월을 10년 가까이 보내시다 떠나셨다.


  

바나나를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좀 사드릴 것을.....

짜장면도 좋아하셨는데 곱빼기로 실컷 사드릴 것을....

앙꼬빵이랑 쿨피스도 좋아하셨는데....

용돈도 좀 많이 드릴 것을.....이렇게도 한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도 더더욱 내가 우리 시부모님, 그리고 혼자 계신 우리 엄마에게도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누구를 미워할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 죽으면 다 소용없으니.....

 

잠에서 깨서도 한참을 울었다.

돌아가신 아빠를 꿈에서 봤다고 치매가 걸리기 전의 건강한 모습이였고,

지금에 아파트가 아닌 양옥집에 살 때 모습 그대로였다고,,,,

 깨달음이 등을 쓰다듬어 주며 시댁에 가서 시아버지를 만나고 나니까 친아빠가 보고 싶었나보다고

울고 싶으면 울어란다. 

있을 때 잘할 것인데...있을 때 잘할 것인데....

오늘따라 미치게 아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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