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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남편이 체험한 80년대 한국문화

by 일본의 케이 201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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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한 코스 떨어진 곳에

 줄 서서 먹어야 한다는 고깃집을 찾았다.

인기가 있는 만큼 예약 잡기가 힘들었는데

깨달음이 어떻게 운 좋게 예약을 했고

우린 카운터석에 앉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분이 네 분이나 계셨고

서로 당담요리가 다른듯 각자 바쁘게 움직이셨다.


 

먼저, 상추 샐러드와 김치 3종세트,

깨달음이 너무 좋아하는 천엽도 주문을 했다.

천엽을 먹을 때마다 깨달음은

한국은 서비스로 나오는데 일본은 사서 먹어야 한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먹는다.

 

이 가게는 각 부위별로 나오는 6종류가 추천메뉴라고 해서

그걸 주문하고 열심히 구어서 먹는데

깨달음이 또 이성을 잃은 듯 초스피드로

먹길래 천천히 먹으라고 했더니

내 쪽을 향해 눈을 히번덕하게 뜨더니

요즘 고기를 많이 못 먹어서 체력고갈이라고

집에서 고기메뉴를 좀 늘려 주란다.

[ ............................... ]

 

지금 각 부위별로 두 조각씩 나왔는데

당신이 거의 다 먹지 않았냐고

그래놓고도 눈에 흰 창을 들여내보이냐고 했더니

영양이 부족한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자기도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배가 불러 왔는데도 깨달음은 또 고기를 주문하고,,

굽기가 바쁘게 먹고 또 먹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난 냉면, 깨달음은 늘 주문하는

육개장 스프를 시켜, 국물을 떠먹으면서

냉면 먹고 있는 날 자꾸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척하고 먹었더니 다시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 ............................. ]

그래서 반 먹고 그냥 냉면 그릇을 밀어 줬더니

육개장스프에 찍어먹기도 하고

남은 고기를 면에 올려 먹기도 하고,,,,

 

국물까지 비우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는 깨달음.. 

계산서를 보고 약간 놀라긴했지만

맛있게 잘 먹었으니까 기분좋게 계산을 하고

배부르니까 집까지 걸아가자며 걷기 시작했다.

여름이고 땀을 내서인지 금방 지친다면서

여름철 보양식이 필요한 것 같단다.

일본은 장어구이로 여름을 나니까

도요노우시노히 (土用の丑の日-한국의 복날 개념의 날)에

먹으면 되겠다고 했더니 장어도 먹고 삼계탕도 먹고 싶다면서

한국은 복날에 삼계탕 이외에 뭘 먹냐고 물었다.

[ ....................... ]

얼른 검색을 해서 보신탕, 오리탕, 추어탕,

장어 순으로 먹는 것 같다고

대충 알려줬더니 보신탕은 자기도 먹어 봤다고

90년대 초, 한국에 갔을 때

심하게 감기가 걸려 호텔에 누워있는데 

선배가 나베( 탕, 찌개 )먹으로 가자고 해서

 따라가 먹었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게

스프를 먹는내내 기름기가 많아서 입술이 끈적거릴 정도였다고,,,

다 먹고 나니까 보신탕이라 알려 주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거북스럽지 않았고

감기도 나았단다.

[ ....................... ]

 

내가 실눈으로 한 번 쳐다봤더니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먹었다면서

그 당시는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에

뭐든지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단다.

동대문 뒷편의 포장마차에서  굴구이를 먹고

배탈나서 죽다 살아났던 일,,,

군밤이랑 오징어를 매일 먹었던 일,,,

호텔방의 이불이 빨간색, 핑크색으로 태극마크 같은

모양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고 온돌방에서 잤을 때는

등짝은 뜨거운데 공기가 건조해 코가 막혀서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잤던 일,,,,

고속버스를 타면 꼭 오징어, 벨트, 신문, 팔목시계 등등을

들고 아저씨들이 버스에 올라와서

열심히 파는 모습을 매번 봤던 일,,,

커피숍에 갔더니 달디단 커피에 계란 노른자가 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다는 일,,,

지금도 좀 후회되는 것은 한정식을 먹으면서

창도 듣고, 치마저고리 입은 언니들에게 대접 받으며

 양반체험을 해 보고 싶었는데

 그 당시 선배들이 비싸다고 그 누구도 자길

데리고 가 주질 않았다며 진짜 한 번 가보고 싶었단다. 

[ ...................... ]

내가 눈에  힘을 주고 째려봤더니

뭔가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말을 멈췄다.

 아무튼, 90년대 초, 한국에 엄청 관심을 갖고

한국의 건축문화를 공부했던 그 시절,

깨달음은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 안동, 경주, 대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있는 90년대의 모습과 남편이 체험하고 느낀

한국의 90년대는 닮은 듯 다른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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