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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내가 몰랐던 남편의 또 다른 얼굴

by 일본의 케이 2016.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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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생각보다 아주 넓었다.

2주전, 우린 직원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현장조사를 위한

출장이 목적이였다.

일본을 찾은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그들을 

수용할 숙박시설의 부족현상으로 인해

깨달음은 지금 전국 각지의 신호텔 건축에 정신이 없다.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자매호텔을 동경에 

만들기 위해 조사해야할 사항도 있고 

그곳 관계자와의 미팅도 필요했다.

굳이 직접 와서 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깨달음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내 눈에 비친 상하이는 홍콩과 매주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언어도 그렇고 그들의 옷차림,

도심의 공기까지도,, 


상하이 중심가를 돌며 깨달음은 사진을 찍느라 

온 힘을 다 쏟아 부었고 난 옆에서 파일을 

열어 보이거나 팜플렛들을 정리했다. 

몇 군데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찍고 또 찍고,,저녁엔 통역 가이드를 만나 식사를 나눴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나온 똥배를 가릴 여유도 없이

태블릿으로  메일확인및, 오늘 찍은 대량의 사진을

 전송하고 전화로는 스케쥴 및 작업지시를 했다. 

완전 일모드에 빠져있는 깨달음을 보며

 내가 왜 따라 왔는지 잠시 후회를 했지만

남편의 사업에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항에서 샀던 책을

읽으며 조용히 보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통역가이드를 만나 장소를 

옮겼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을 하고

 깨달음은 직원과 함께 

오늘 해야할 일들을 팜플렛을 보며 

재확인하고 있었고 난 그 때서야 호텔방에 두고 

 내 바지가 떠올랐다.

저 쪽 한편에 서 있는 가이드를 불러

 호텔로 다시 가서 바지를 가져와야 될 것 같다며 

얘길 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좀 당황을 했고

깨달음이 도끼눈을 하고 내쪽으로 다가왔다.

[ ...................... ]

우리 얘길 다 들은 듯

지금 가이드와 호텔 담당자 만나러 가야하는데

정신 안 차리고 바지를 잊어버리고 왔냐면서

매몰찬 눈으로 날 쳐다봤다. 

중국어를 못하는 우리들만 보낼 수 없다고 

보고 있던 가이드가 나와 함께 호텔로 가겠다 했고 

약간의 망설임을 보이던 깨달음이 위험하니까 

자기도 같이 간다며 일단 직원만 먼저

약속장소로 보내고 우린 세명이서 택시를 탔다.

[ ...................... ]

택시로 달리는 30분간 깨달음은 직원과 또 통화를 했고,,

택시 안 분위기가 썰렁해서 내가 먼저 말을 했다.

[ 호텔 이름 아니까 그냥 가이드랑 가도 되는데....

아니,,나 혼자도 갈 수 있었는데..

그리고 당신이 짐 챙긴다고 나 한테 먼저 체크아웃 하랬잖아,,

그래서 나는 당신이 챙긴 줄 알았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깨달음이 되받아 쳤다.

[ 혼자 갔다가 뭔 일 나면 누가 책임을 지는데? 

아침에 짐 챙길 때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둔 거였어? ]

[ 오른쪽 옷장 안에 넣어 두었지...]

[ 왜 바지만 거기다 뒀어? 자켓이랑 같이 두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왜 안 하던 짓을 해? 

정신 똑바로 안 차리고 있을꺼야? ]

[ ......................... ] 

말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물었다.

앞에 앉은 가이드가 우리 둘을 번갈아 뒤돌아 

보면서 있을 거라고 걱정말라고 했다. 


호텔에 갔더니 분실물 코너에 내 바지가 있었고

그 걸 받아 들고 온 깨달음이 또 작은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았다.

그 따가운 눈길을 외면하고싶어 밖을 내다보며

중국까지 따라오는 게 아니였다는 생각을 또 했다. 


그렇게 나 때문에 1시간이상 늦은 깨달음을 위해

가이드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스케쥴 조절을 

다시 해 주었고 난 가이드에게 여러의미를 

포함해서 팁을 듬뿍 줘야만 했다. 

 깨달음은 미팅장소에 다시 합류를 했고 난 

  주변산책을  좀 하다가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혼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주변에 마작하는

 손님들을 기웃거리다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달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른채 책을 읽고 있는 내 앞에 덮석 앉으며 

삐졌냐고 물었다.

[ 아니,,,삐지진 않았어.,, ]

그 때 웨이터가 와서 영문 메뉴판을 내밀었고 

깨달음도 나와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 오늘, 바지사건 때문에 아침 약속 뿐만 아니라

하루 스케쥴이 몇 시간씩 미뤄진 거 알지? ]

[ 알아,,,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해..]

[ 여긴 외국이야, 특히 외국인들과 같이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빈틈을 보이거나 꼬투리 잡힐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 돼.당신도 알잖아,그래서 아까 화를 낸 거야

[ 알아,,,그래서 많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당신 눈빛이 결혼하고 처음 보는

 눈빛이여서 낯설었을 뿐이야..

무섭다기 보다는 너무 냉철해서 좀 그랬어... ]

  [ 당신이 좀 이해해 줘, 몇 십억이 오가는 일이야,,

그래서 더 민감한 것도 있었어..여기 상하이에서 잘 풀려야

다음 도시로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단 말이야.. ]

[ 알았어...미안했어...]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깨달음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 내 눈이 그렇게 이상했어? ] 

이번에는 넉살좋게 웃으면서 묻는다.

[ 이상한게 아니라 눈으로 얘기한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눈으로 너무 많은 걸 얘기하더라구,,

아무튼 좀 놀랬건 사실이였어...내가 이제까지 알고 지냈던

 남자의 눈빛이 아닌 다른 사람 눈빛이였거든,,..]

[ 내가 그랬어? 난 당신 눈이 더 무서운데?  ]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히히 거리며 

장난을 시작하는 깨달음이였다.


상하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도 아침부터 깨달음은 바빴고

중국인 담당자와 직원들에게 

끝없는 주문과 추가사항들을 체크하고 확인했다.

결혼 전에도 난 깨달음과 자주 일을 했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디자인에 관한 극히 

 일부분이였을 뿐이였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사업에 임하는 깨달음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였다.

시간 긴장 속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함과 

냉철함, 치고 빠지는 순발력, 

밀고 당기는 테크닉

교차하는 찰라같은 순간들을 몇 번 보았다.

그래서 직원들도 깨달음을 무서워하는지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일할 때의 남자는 

완전 다른 모습을 갖고 있음을 실감했다.

처음보는 남편의 눈빛, 처음보는 남편의 자세들이

낯설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에 빠진 남자는 눈빛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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