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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한국에는 못가고, 마음을 비운다.

by 일본의 케이 201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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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하다

CT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나 이외의 환자는 한 명도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지하라는 특성상 왠지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얇은 환자복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에어콘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



아침 일찍 출근했던 깨달음이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 병원에서 뭐래? 결과는 언제 나온대?]

[ 자세한 건 다음주에 나오는데 

일단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인다고 했어 ] 

[ 그래? 다행이네 ]

우린 노트북 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예약해 둔 한국행 티켓을 취소했다. 

그리고 대청소를 하기 위해 

각자 위치로 자릴 옮겼다.

 오늘의 대청소는 차가워진 

가을 준비를 위함도 있고 

심난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어서였다.

그래서인지 깨달음도 솔선해서

 청소기를 먼저 꺼내들었다.


내 생일에 맞춰 한국행 티켓을 예약했는데

깨달음 회사 직원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새롭게 오픈 해야할 호텔에 문제가 발생,

책임자인 깨달음이 처리를 해야해서

일본을 떠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취소하고 일이 진정되면 

다시 날을 잡아보자는 약속을 했고

우린 그냥 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어수선할 땐, 깔끔하게 청소하는 게

정신수양에 좋다라는 걸 

우리 서로 잘 알고 있었기에

두 말 하지 않고 각자 청소에 들어갔다.


가을옷, 겨울옷 모두 꺼내더니 버릴 옷들을

넣을 비닐을 달라고 했다.

[ 이 티셔츠 당신 아끼던 거였잖아..]

[ 그냥,,버릴 거야,,]

[ 왜? ]

[ 그냥,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아서..]

[ 한국 못 가서 그래? ]

[ 아니,,]

[ 회사 일이 심난해서? ]

[ 아니,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야,,

오픈에 맞춰 쳐리할 수 있어..]

[ 근데,,왜 힘이 없네...,,]

[ 그냥, 당신 생일에 가려고 했는데 

못가게 되서 미안해]

[ 아니야,,난 진짜 괜찮아, 

한국이야 언제든지 갈려면 갈 수 있잖아,

그니까 나는 신경 쓰지마 ]

청소를 마치자 깨달음이 외식을 하자고 제의했다.

 간단히 먹을 생각이였는데 와인을 주문한다.

[ 진짜 괜찮지? ] 

[ 괜찮다니깐, 일 처리되면 

또 날 잡아서 가면 되잖아 ]

와인을 마셔도 썩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오늘 청소하고 나니까 기분이 개운하지? ]

[ 응,, 청소가 좋아,,마음 청소를 하고 싶었는데 

많이 개운해졌어, 옛 물건들도 버리고 나니까

 홀가분해 진 것 같애,

흐트러졌던 머릿속도 정리가 된 것 같고,,]

[ 한 박자 쉬어 간다고 생각해..

요즘 당신 너무 잘 나갔잖아. 

그래서 잠시 점검하라는 

그런 시간이 주어진 거라 생각해,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어내야 하는 것들이

많듯이 오래된 고민들도 덜어내고

 버리는 게 나을 거야 ]

[ 오,,케이가 오늘은 날 위로해 주네..]

[ ........................ ]

[ 위로가 아니라 그냥 당신이

 힘이 없는 것 같아서..] 

[ 한국 꼭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도 기다리셨을 것이고,,

먹고 올 음식들도 다 목록으로 적어놨는데...]

[ 한국은 아무때나 가면 돼..

당신 마음이 편한 게 제일 우선이지..]

[ 오늘, 케이가 이상하게 나보다 더 어른스럽네..

완전 긍정마인드 되었는데? 이상하네....

당신, 역시 갱년기인가봐,,사람이 변했어..

혹, 병원에서 뭐라고 그랬어? ]

[ ........................ ] 

진지하다가도 장난끼를 발동시키는 깨달음 때문에

더 이상 얘길 할 수 없었다.

[ 맞아,,살다가 잠시 넘어지면 한 박자 쉰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인 것 같아,,

알았어, 일 처리되면 바로 다시 예약해서

뒤늦은 생일파티를 근사하게 하자구~

케이씨, 그 때까지 조금만 참아 주세요~]

[ .......................... ]

이렇게 끝을 맺은 깨달음은

예전의 미소로 활짝 웃으며 와인잔을 부딪힌다.

매년, 직원들의 크고작은 실수로 배상을

 해야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작년에는 아주 기본적인

 설계미스를 하는 바람에

건축법 위반에 걸리게 되서 어렵게 어렵게

다시 재공사를 해서 겨우 통과를 했던 일도 있었다.

이번에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금전적인 배상이 오갔던 게 느껴졌다.

이래저래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였다.

내 생일파티와 함께 깨달음도 힐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도 한국행을 택한 것 같은데

무사히 일이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함께 와인잔을 기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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