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1454

용서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용서하는 게 이기는 것이고 용서를 해야 상처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기에 불가능하다. 먼저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상대를 용서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그렇다면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 용서하지 못한채로 칼날을 품고 살다보면 슬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자해 하듯 나를 베고 또 베고 있다.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상처는 깊어만 간다. 어느 날 꿈에 어린 그날의 나를 봤다. 떨고 있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려는데 형체도 없이 부서져버렸다.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울고 나서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잘 살다가도 어떤 순간에, 찰나처럼 스치는 그 상처들이 튀어나올 때면 어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일어서려하면 자꾸만 늪으로 빠져들어가 듯 아픈 기억들이 날 짓누른다. 억울해서 .. 2022. 1. 25.
시부모님..그리고 난 며느리 우체국 아저씨가 오전에 가져다 주신 과일박스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깨달음에게 과일이 택배로 왔다는 말만 전했고 깨달음의 부탁은 들었지만 내 손이, 내 마음이 미동치 않아 그냥 무시하고 내 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왜 기분이 밝지 않은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짜증이 난 건 분명했다. 깨달음을 생각하면 짜증을 내선 안 되고 짜증을 낸다는 자체가 실례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머릿속은 불편한 생각들이 가득 차고 있었다. 깨달음 부탁은 이거였다. 과일과 함께 내게 우메보시( 梅干し매실절임)를 아버님께 보내달라는 거였다. 월요일에 깨달음이 보낸 우메보시의 염분이 10%여서 좀 짰다며 8%를 드시고 싶다고 하셨단다. 오늘은 시간이 안 되니 내일 보내드리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기다리실 테니 오늘 보내드렸으.. 2022. 1. 20.
삼재는 미리 피해야 하는 것. 연식으로 따지면 12년이 지난 내 자전거가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부품 교체 및 대수술?을 한번 했는데 올 해도 삐그덕 거리고 있다. 오늘은 앞 바퀴에 문제가 있어 교환을 부탁하고 나오려다 새 자전거를 둘러보고 그냥 돌아섰다. 자전거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깨달음은 전동식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난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과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전동식이 꼭 필요하지만 자전거가 가지고 있는 묘미를 느끼고 싶은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였다. 번호표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다 전철을 탔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2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느긋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 화방을 찾았다. 미술용품 외에도 작고 귀여운 문구용품을 함께 파는 세카이도(世界堂)는 미대생 뿐만 아니라 쇼핑.. 2022. 1. 17.
가끔은 남사친이 더 편할 때가 있다 류(劉)상을 만나러 요코하마(横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작년부터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었는데 코로나로 몇 번 미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뤘다간 두 번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런치타임에 잠깐 시간을 냈다. 요코하마가 삶의 터전인 류가 도쿄까지 나오는 것보다 내가 이동하는 게 빠를 것 같아 움직였는데 류가 역 앞에 나와 있었다. 적당히 배가 나온 40대 후반이 된 류는 도수 높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머쓱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더니 류가 쑥스러운 듯이 악수를 했다. 얼굴이 변했네, 늙었네, 살이 쪘네, 중년 아줌마네 등등 서로 약간씩 디스를 해가며 예약해 둔 식당으로 걸었다. 대학원 동기인 류는 중국인으로 졸업하고 바로 이곳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디자인 사무.. 2022. 1. 13.
남편은 코리아타운을 그래서 갔다. 이곳은 내일, 월요일까지 연휴이지만 잠잠했던 코로나 감염자가 폭증하기 시작하면서 우린 또 스테이 홈을 실행 중이다. 오늘 아침, 신정연휴 때 3단 찬합에 만들어 둔 오세치(おせち명절 음식)를 깨달음이 점점 질려했고 먹을 때마다 정말 내년에는 오세치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듯 몇 번이고 되뇌이며 매년, 오세치 만들지 말자고 했던 내 말을 들었어야했다며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 나,, 오늘은 정말 다른 거 먹고 싶다. 입맛을 바꿔줄 만한 거 ] [ 뭐 먹고 싶어? ] [ 신라면, 매운맛으로 죽어가는 입맛을 찾아야 될 것 같아 ] 그렇게 질려하는 깨달음을 위해 냉동실에 얼려둔 새우와 전복, 문어로 해물라면과 떡갈비를 구웠다. 라면을 정신없이 먹다가 남은 오세치가 생각났는지 내일까지 먹어치워.. 2022. 1. 10.
신정연휴에 일본인들이 꼭 가는 곳 신정연휴 마지막 날, 깨달음은 하쯔모데(初詣)를 가고 싶다고 했다. 하쯔모데는 새해 처음으로 절이나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으로 신정이면 종교와 상관없이 일본인 모두가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례행사와 같다. [ 올 해는 무슨 소원을 빌 거야? ] [ 올 한해도 지금처럼 별 탈없이 사업도 잘 되고 건강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하지 ] 난 물론 참배를 하지 않지만 깨달음의 믿음?을 존중해 같이 따라가기로 했다. 하쯔모데를 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섣달 그믐날 밤부터 신사에서 보낸 후 설날에 집으로 오거나 그믐날 밤에 참배하고 일단 집에 왔다가 날을 새고 다시 참배하러 가는 경우, 마지막은 설날에 가는데 대부분은 설날 당일에 가까운 신사를 찾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쯔모데 기간은 1월 1.. 2022. 1. 6.
귀찮아도 먹는 건 즐겁다 2021 마지막 날,, 우린 쯔끼지(築地) 시장에 다녀왔다. 싱싱한 야채, 생선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연말분위기를 느끼려 심심해서 나왔는데 직접 와 보니 생각보다 물건들이 좋은 게 많아 먹고 싶은 것들을 사기로 하고 골목골목을 다니는데 예상대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내가 좋아하는 조림전문집에서 다시마조림을 살까했는데 신정에 필요한 조림반찬들만 즐비할 뿐, 평소 때 팔던 조림들은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점심시간까지 겹쳐 어딜 가나 기다리는 줄 서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깨달음은 그 틈을 비집고 내 뒤를 졸졸졸 잘 따라왔다. 사람들이 많아 물건들을 제대로 보기 힘든 정도였지만 깨달음은 행여나 꼬막을 못 보고 놓칠까봐 생선가게 앞에서 목을 길게 빼고 유심히 관찰했다. 돌고 돌아 마지막에 들른 생선가.. 2022. 1. 3.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깨달음은 기어코 소수의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종무식을 강행했다. 난 예고한대로 참석하지 않았고 3시가 넘어서 약속장소인 아사쿠사(浅草)로 향했다. 어제부터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은 도쿄를 빠져나갔고 신정연휴를 맞아 도쿄로 관광을 온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센소지엔 언제나처럼 기모노를 차려입은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올 해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은 각자가 믿는 신들에게 한 해의 마감을 고하기도 하고 새해의 소망을 빌기도 하면서 센소지 浅草寺본당 앞에 상향로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오는 선향의 연기를 자신들의 몸 쪽으로 끼얹었다. 400년 전, 중국에서 전해지는 향로는 참배객의 신체를 정화하기 위해 사용된 불사에 쓰는 도구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향로의 연기를 아픈 부위에 끼얹으면 상태가 좋아지거.. 2021. 12. 30.
깨서방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 오머니, 선물 좋아요? ] [ 응, 마음에 들고 말고, 크리스마스에 딱 받아서 더 기분이 좋네 ] [ 한국은 추워요? ] [ 응, 징하게 춥네. 일본은 덜 춥제? ] [ 일본은 안 추워요 ] 항상 하는 말들은 내 통역이 없어서 얼추 맞춰가면서 답을 하는 깨달음이 신통했다. [ 오머니. 내년에 만나요 ] [ 긍께..내년에 만나믄 좋것는디..이놈의 코로나가 어찌댈랑가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우리 깨서방 보고 싶어 죽것네 ] [ 네, 많이 많이 보고싶어요 ] 크리스마스에 받아보시게 서둘러 보냈던 소포가 잘 도착했고 엄마는 많이 흡족해하셨다. [ 근디..뭔 금반지가 들었다냐? ] [ 아,,그거,,금반지가 아니고 스카프에 끼우는 링이야,,엄마,,] [ 아,,그래...나는 뭔 금반지를 보냈다냐했네, 스카프가.. 2021. 12. 27.
아침 밥상이 서로 다른 이유 [ 케이야,, 너 요즘 많이 바빠?] [ 아니..별로 안 바빠 ] [ 근데 왜 자꾸 입술에 물집이 생기는 거야?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야 ? 정말 잘 먹고 다니는 거야? ] [ 잘 먹고 있어...] [ 니가 청국장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내가 짠해 죽겠다.. 보내 줄 수도 없고,,] 블로그에 병원 간 얘길 올리면 어김없이 가족, 지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 뭐 좀 보내줄까? ] [ 아니야,,여기도 다 있어 ] [ 근데..뭐가 그렇게 널 힘들게 하는데... 말 좀 해 봐,,한국에 올 수도 없고,,] 친구는 끈질지게 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까지 뭘 먹고 다니는지 청국장이든 뭐든 어떻게든 보내볼 테니 뭐든지 말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난 매일 미역국을 먹는다. 산모도 아닌데 벌써 일주일째.. 2021. 12. 24.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간절히.. 저녁부터 입술이 이상하다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아침에 일어나니 물집이 생겨 있었다. [ 깨달음,,,입술이....또,,..] [ 또 생겼어? 왜 그러지? 지난주에도 생겼었잖아, 어디 봐 봐 ] 지난주 아랫입술에 났던 물집이 다 나아가자 오늘은 윗입술 정중앙이 부풀어 올랐다. 거기에 오른쪽 콧 속에도 물집이 잡혀 있었다. 구순포진, 입술 헤르페스이었다. 10명 중 3,4명이 가지고 있다는 재발성 구순포진은 흔한 질환이긴 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평생 그 사람의 몸속에 존재했다가 스트레스나 피곤함, 특히 면역력이 떨이지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돼서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지금껏 물집이 생길 때마다 좀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 콧속까지 생긴 걸 보니 올여름 생겼던 대상포진과 연관성이 있는 .. 2021. 12. 21.
새벽에 울린 카톡... 건강검진을 하러 찾은 병원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외롭게 서 있었다. 좀 더 풍성하고 좀 더 따뜻함이 묻어 나오게 장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진찰실로 향했다. 옵션으로 신청했던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10시가 넘을 거라고 했다. 시력부터 시작해 마지막 부인과까지 순조롭게 진찰을 하는데 부인과 초음파를 하는 중에 갑자기 의료진과 간호사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자궁근종 수술하셨죠? ] [ 네...] [ 근데.. 여기,, 또 뭐가 보이네요..] 좀 더 초음파로 관찰하려는 자와 저지하는 자,, 커튼 뒤에 있는 의료진의 실루엣과 말소리만 들리는 듯하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지를 입고 앉자 자궁내막이 아닌 곳에 혹 같은 게 보이는데 좀 크기 때문에 정밀검사를 따로 하셔야겠다며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한다. 혹이.. 2021. 12. 17.
도쿄에서 히로시마, 그리고 오사카까지... 아침 7시, 집을 나와 히로시마(広島)행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좌석에 앉자 바로 깨달음은 도면을 꺼냈고 난 라디오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약 4시간을 달려야 한다. 나고야(名古屋)를 가는 2시간 남짓시간도 지루했는데 3시간 49분을 가야 한다고 하니 잠을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각자 사 온 도시락이며 샌드위치를 꺼내 아침을 먹느라 분주한데 음식 냄새가 앞 뒤로 풍겨서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몇 번 뒤척이자 안 자는 거냐고 물었다. [ 쩝쩝 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 볼륨을 좀 더 높이지...] 음악소리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잡음들이 많아서 너무 예민한 내 감각기능과 신경계가 조금만 무뎌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도착하면 바로.. 2021. 12. 13.
자기 인기에 취해 사는 남편 깨달음 겨울용 양복을 맞췄다. 크리스마스 선물 겸 깨달음이 현역 생활을 하는데 마지막 양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가장 좋은 원단으로 골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깨달음이 너무 비싸다고 망설이길래 마지막까지 멋진 양복 입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라고했더니 그런 뜻이였냐면서 순순히 수치를 쟀다. 재단사분이 작년 여름에도 한 벌 맞추지 않았냐며 허리둘레가 1센티 줄였다고 하자 허리는 다이어트하느라 줄은 것이고 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여름용으로 한 벌 맞췄는데 이젠 양복 맞추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버튼과 안감까지 고르고 수납장이 배달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바로 백화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릇 욕심이 많은 것도 있고 파티용 그릇들을 세트로 사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해 새로 주.. 2021. 12. 10.
감사는 감사로 표현하는 것 2주전,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연어가 한 마리 날아왔다. 홋카이도가 고향이 아이(愛) 짱이 보내온 것이다. 나와 전공은 달랐지만 연구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친하게 되었고 그녀는 졸업을 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작가활동을 하면서 1년에 한두번은 전시회나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도쿄를 찾았다. 내가 연어구이를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가끔 이렇게 아무 소식이 없다가 한 마리씩 보내온다.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더니 마침 일이 있어 겸사겸사 도쿄에 올 일이 생겼다길래 식사 약속을 했다. [ 왜 이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그런 거야? 내가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 [ 케이 짱 집하고 가깝고 나도 이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서 여기가 제일 편할 것 같아서 ] 코로나 전에 만나고 이제 보니 벌써 횟수로 3년이 지났다며 그간.. 2021.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