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인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다

by 일본의 케이 2017. 8. 16.
728x90
728x170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듯 보였지만

발음하기가 어려웠는지 좀 쉬운

문장으로 고르고 골라 큰소리로 읽어보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했다.

[ 오머니, 깨서방입니다 ]

[ 오머니, 한국은 아직도 많이 더워요? ]

[ 오머니, 편찮은 데는 없으시죠?  

[ 감기 조심하시고, 여행 잘 다녀오세요]

[ 항상 건강하시고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이 대목에서 깨달음이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자기가 뱉은 한국어 발음이 자꾸 꼬여서

엄마가 못 알아들으니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나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그렇게 열심히 적어 발음 연습을 했는데도

억양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엄마가 알아듣기엔 역부족이였다. 

 

 [ 엄마~나야, 깨서방이 감기 조심하시고

크루즈 여행 잘 다녀오시래~]

[ 오메,,,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디 벌써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네, 오랜만에 깨서방 

목소리 들응께 좋다야, 너도 건강하지? 

[ 네,,엄마도 별 일 없으시죠?]

[ 응, 나야 뭔 별일이 있것냐..]

[ 엄마, 나 한국행 티켓 예약했으니까 엄마도

출발 전날 서울로 올라오셔야 할 거에요]

[ 아직, 한달이나 남았응께 괜찮해, 그 때 가서

알아서 갈랑께 걱정하지 말아라,

글고 너는 건강이 최고잉께 절대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해라,,거기도 인자 안 덥냐? ]

[ 응,,여기는 가을에 들어 온 것 같애 

많이 선선해졌어~엄마]

[ 그래,다행이다,,글고 내가 니 책 다 읽었다 ]

[ 뭐하러 읽으셔,,,안 읽어도 된다니까,,]

[ 내가 밤새 울었다..어찌나 속상해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한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허고,,그래서 밤새 울었다]

[ ......................... ]

728x90

[ 글고, 00가 그 책이 상을 받았다고 글드만? ]

[ 아,,상이 아니라 권장도서로 뽑힌거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아무튼,,엄마, 걱정 안하셔도 돼,,]

[ 내가 잠을 못 잤시야,그렇게 밥도 못 먹고

지냈음시롱,,어째 말도 안 하고,,]

[ 엄마,,이제 다 나았어, 난 괜찮으니까 

엄마도 여행 갈 때까지 감기 조심하시고.. ]

[ 나 같은 것이 그렇게 고귀한 여행을 가도

 될랑가 모르것다,,너한테 신경쓰이게 하고,,

돈도 많이 들 것인디...]

[ 아니야, 가이드가 다 해 줘, 그리고

깨서방이 보내드린 거니까 편하게 생각하셔~]

엄마가 계속해서 책에 관한 내용들,

내가 아팠던 그 시간들을 말하려고 하셔서

대충 마무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 깨달음, 엄마가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마음이 무거우시대...]

[ 이젠 그런 말씀 하시게 해서는 안 돼,

어머니가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시면 즐거운 여행이 안 되잖아,  ]

 [ 아니,,엄마가 내 책을 읽으시고,,

괜히 그런 말을 꺼내신 거야,,]

이젠 그런말 하지 않기로 했잖아,,

서로 아픈 시간들을 굳이 떠올릴필요가 없어,

,반성을 하셨으면 된 것이고 지금은 잘하고 계시고,

당신도 지금 잘하잖아 그니까

이젠 절대로 그런 소리 못하시게 해 ]

[ 알았어,,,] 

 

한국 장모님을 반성하게 만드는 남편

[ 오머니, 깨서방입니다, 식사하셨어요?] [ 아이고, 깨서방이네, 식사 했어요. 깨서방도 일찍 들어와서 식사했어요? ] [ 네, 오모니, 내일 김장해요? ] [ 오메,일본까지 소문이 나불었는갑네 쬐금

keijapan.tistory.com

 

반응형

엄마는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오고 공부에 

전념할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다.

독한년이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날 독하게 키운 건 

바로 엄마라고 쏘아부치고 싶었지만

단 한번도 내뱉지 못했다.

자식 중에 제일 아픈 손가락이 아니였음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는대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고,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

아니였다는 시린 기억들이 재확인 될 때마다

 상처의 골은 깊어만갔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은 넘기면서 부터

그냥, 그 서러움에 뚜껑을 덮는 연습을 시작했다.

 

자식중에 왜 나였냐고?

그럴거면 왜 날 낳았냐고?

꼭 그렇게 표 나게 했어야 했냐고?

아팠던 시간들이 트라우마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난 항상 어두운 가슴을 부여잡고 살았다. 

어떤 위로도 어떤 사과도 그 상처를 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그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연습을 했다. 후배가 가르쳐준대로..

[ 엄마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

[ 엄마도 무척 힘들었겠지..]

[ 엄마도 인간이니까 감정이 앞섰겠지..]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미움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기 때문이였다.

300x250

아빠의 주검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엄마에게 받은 상처 속에서 미움을 

키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바른 치유연고로 인해

상처의 두껑은 두꺼워졌고

지금은 한 해, 한 해 견고해져가는 두껑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은 묻혀가고 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진정한 용서의 

시작은 감사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감사할 게 뭐가 있을까, 

미움과 애증, 서러움과 울분들로 똘똘 뭉친 감정 

속에서 감사함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용서의 시작은 감사에서 비롯됨을

 꽤 오랜시간 머리와 가슴 속에

 세뇌시켰고 그렇게 하나씩 엄마에게

 감사함을 찾기 시작했다.

실은, 부모를 미워하는 것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기본 

본능에서 나타나는 감정들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의무가 있고 자식 또한

부모를 사랑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모를 어른이 되어 

아픔으로 응징하는 게 아닌 감사함을 표현하고

갚아드리려고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자식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본능적 애정 결핍을 스스로 채우는데는

 시간과 인내, 이해가 필요했지만 되도록 

빨리 텅빈 가슴을 채우는 길 밖에 없었다.

 

그래야 내가 살아가니까...불교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을 

 은혜를 갚는 인연, 원한을 갚는 인연,

빚을 갚는 인연, 빚을 되찾는 인연으로

나눠졌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않았지만, 부모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감정적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난 홀로 남으신 엄마에게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낳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지금껏 못했던 부모님께 드려야할 사랑의 의무를 

온 마음을 다해 전해드릴 생각이다.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