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맛집투어

남편의 고집, 그래서 더 감사하다

by 일본의 케이 2019. 2. 11.
728x90
728x170

이곳은 월요일까지 연휴이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면서

 뭘 할까, 어디를 갈까 둘이 몇마디 나누다

하코네를 가자는 의견일치를 봤다.

지난달에도 아니 지지난달에도 갔었던

하코네를 우리는 왜 자주 가려는건지

알 수 없지만 신주쿠에 도착하는가 동시에

깨달음은 백화점에서 모둠어묵을 사고

나는 음료와 과자를 사서 하코네행 (箱根 )

로망스카에 몸을 실었다.

[ 우리 차로 갈 걸 그랬나? ]  

깨달음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소리를 하길래

 운전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아냐고

말 나온 김에 당신은 왜 운전을 하지 않았는지

왜 면허증을 안 땄는지 물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큰 트럭에 받쳐 머리가 깨진

 뒤로는 차가 무서운 것도 있고 더 솔직히 말하면

자기는 운동신경이 좀 둔한편이여서 눈으로

 신호를 보면서 핸들조작을 하고 또 백밀러를 

틈틈히 확인하는 동시다발적인 행동이

서툴다는 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기 때문에

아예 운전면허를 따려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 그리고 이렇게 술도 자유롭게 못 마시잖아 ]

[ 그럼 우리 기사를 두자, 나도 운전하기 싫거든]

기사를 두자는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내 볼을 꼬집으면서 정신차리란다.

[ ............................. ]

[ 근데 우리 뭐하러 가는 거지? 너무 자주 

가는 것 같다, 온천을 하는 것도 아니고 ]

[ 구운계란 먹으러, 1개 먹으면 1년장수 한다고

 하니까 2개씩 먹고 내려오면 돼 ]

아주 명쾌하고 단결한 답을 내리고는 깨달음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하코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로프웨이 승강장에 도착,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바로 우리 둘만 로프웨이에 들어갔다.

승강장을 벗어나면서부터 퍼져나오는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중턱무렵쯤 올랐을 때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유황이 품어내는 연기가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 자연의 힘이 대단해..]

[ 응, 지난번보다 오늘은 더 심하네 ]


하코네 화산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전망대가 있는 오와쿠다니(大涌谷) 에 도착,

 깨달음이 한달음에 달려가 검은 계란(黑玉子)를 

사와서는 따끈할 때 먹어야 한다고 부지런히

까서 자기 입에 넣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은 이색적인 화산 체험을 할 수 있고 

휴게 시설와 선물코너, 그리고 간단한 식사로

 허기를 달래기도 좋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하코네의 뜨거운 온천수에

 삶은 계란 역시도 별미이다.

[ 같이 오래 살자며? 혼자 먹냐? ]

[ 당신도 먹어, 사진 그만찍고 ]

[ .............................. ]


내가 계란을 까 먹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혼자 선물코너에 가서는 뭔가를

 샀는지 자기 가방에 주섬주섬 집어 넣었다.

[ 뭐야? ]

[ 조금 있다가 보여줄게 ]

[ 나도 선물코너 가고 싶은데..]

[ 지난번하고 똑같아, 그냥 가자 ]

[ 왜 서둘러? ]

[ 우리가 늦게 와서 저 로프웨이가 10분뒤에

막차래, 그니까 가야 돼 ]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계란만 먹고가려니까 왠지

서운하다고 하니까 지난달에 해적선도 타고 

박물관도 갔으니까 오늘은 그만 가잖다.

하코네 역 근처에서 소바정식을 먹고 집에

 돌어왔는데 왠지 모를 피곤함이 밀려왔다. 


[ 은근 피곤하네, 깨달음, 당신은 괜찮아? ]

[ 응, 나도 좀 피곤해, 오늘은 우리가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서둘러서 그럴거야.

다음에는 좀 일찍 가는 게 좋겠어 ]

씻고 일찍 들어가 자려고 거실에 있는 

깨달음에게 잘자라고 하는데 나한테

 손짓을 한다.선물 보여준다며..

[ 뭐야? ]

[이거 탁상용 거울인데 이쁘지? ]

[ 왜 샀어? 5개나? 누구 주려고? ]

[ 이번에 한국 갈 때 처제랑 처형 주려고 샀어 ]

[ 지난번에 이런 비슷한 것 샀잖아 ]

[ 그건 작은 것이고 이건 탁상용이여서

사용하기 더  편할거야, 봐 잘 섰지? ]

깨달음은 한국행 티켓을 예약한 날부터  

선물들을 사모으는 버릇같은 게 있다.

엄마 생신선물로 스카프,  

큰언니가 좋아하는 일본과자, 커피,

 작은 언니가 좋아하는 정종,

여동생이 좋아하는 나라쯔게,

조카들이 좋아하는 젤리와 과자들..


[ 진짜 고마운데 정말 당신은 이런 게 

안 귀찮아? 챙기고 그러는 게? ]

[ 뭐가 귀찮아? 받으면 좋아하는 가족들

 얼굴이 보고 싶어, 그래서 다 주고 싶어 ]

[ 근데 우리 가족이 매번 말하잖아,,

제발 사오지 말라고, 올 때마다 사온다고 

야단 맞을 때도 있었잖아 ]

[ 알아, 야단 맞아도 살 거야, 비싼 것도 아닌데,

선물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일본 음식같은 것도

이것저것 먹어 봤으면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아까 그 검은 계란도 사 가고 싶은데 

유효기간이 짧잖아 ]

참 정성이 대단하다. 어쩌면 저렇게 꼼꼼하게

챙기는지 많이 고맙고 많이 감사할 일인데

이렇게 뭘 챙겨서 가면 기족들은 미안하게

매번 사온다고 정말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친정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선물보따리를 

푸는 깨달음을 볼 때마다 엄마는 

[ 오메,,또 샀네. 깨서방이 징허게 뭘 사길

 좋아하네., 니기 아버지도 뭐든지 사서 

새끼들 주고, 먹이고 그런 걸 좋아했는디

 영낙없이 깨서방도 그런 것을 

똑같이 하네..]라고 하신다.

그래도 깨달음의 선물사기는 멈추지 않는다.

공항에서는 조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고

카스테라, 앙코빵, 도쿄 바나나,초콜렛 등,,

안 사도 된다고 이젠 안 먹는다고 옆에서 말려도

옆집이나 친구들, 학교나 교회에 갖다 주면 

되지 않냐고 기어코 산다. 이런 외국인 

남편을 둔 걸 진심으로 감사하면서도

좀 과한 깨달음의 사랑표현법을 조금 

자제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는지 

늘 생각하고 있다.

[ 깨달음, 상대가 필요한 것을 사주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거야, 그리고 더 좋아하고,, ]

[ 아니야, 선물은 전혀 뜻하지 않는 걸 

받았을 때 더 기쁜 거야, 기억에도 오래 남고,

 그래서 이것저것 사서 여러가지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게 선물이 주는 의미야 ]

여러가지 기쁨을 맛본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와는 많이 달랐지만 전혀 자신의 

뜻을 굳힐 의사가 없는 것 같으니 깨달음만의 

착한 고집을 존중하며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난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될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