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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남편이 말하는 한국인 아내의 고향

by 일본의 케이 201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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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에 깨달음이 없었다.

  조심히 거실로 나가봤더니 도면체크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각 6시 10분,,,,

다가가 춥냐고 물으니까 추울까봐 파카 입고 나왔는데

안 춥다면서 다시 들어가 자란다.

원래 아침형 인간이여서 늘 이렇게 아침 일찍

도면치거나 디자인 구상을 하곤 했었다. 

특히나 요즘은 일이 많아서 바쁜건 알고 있었지만

 처갓집에 와서도 저렇게 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먹은 우린 일본에 보낼 소포를 챙기고

다음날 서울에 가져가야할 물건들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가고 싶어했던 곳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증심사 중턱에서 내린 우린 산책로를 타고 걸었다.

무등산을 뒤로 하고 물소리, 바람소리,

낙엽소리, 새소리가 기분 좋은 오후를 열어주었다.

이 곳에 온 이유는 깨달음이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던

채식부페집이 있기 때문이였다. 


 

시간도 넉넉히 있어서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깨달음은 골고루 4접시를 갖다 먹었다.

막된장에 봄동을 싸먹으면서

원래 된장이 이렇게 맛있냐고 엄마에게 연신 질문을 하고

자기에게 이 외에 소개 안 해준 가게 있으면

감추지 말고 꼭 다 말씀해달라고 당부를 하니까

엄마가 짜잔한 곳은 미안해서 소개할 수는 없다고 하자

자기는 격식있고, 폼 잡는 가게보다는

한국인들이 평소에 가볍게, 편히 외식하는 곳,

그런 가게가 훨씬 좋다고 주일에 교회 집사님들과

다니시는 곳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 ......................... ]

그렇게 즐겁게 점심을 마치고.

엄마는 집에가시겠다고 하셔서 우린 그 길로 충장로로 향했다.

충장로행을 택한 것도 깨달음이였다.

광주에 왔으니 아내가 자랐던 곳을 탐색해 보고

아내가 어디서 놀았는지?도 보고싶어서란다.

 

충장로 뒷골목를 돌아보고

거리에 있는 노점들도 체험해보고..

내가 친구들과 자주 다니던 가게나 상점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해서 둘러보았지만

예전의 모습들은 거의 없어지고 식당 몇 군데는 남아 있었다.

기타를 배우러 다녔던 음악사도 옷가게로 바뀌고,

떡만두국이 맛있었던 스넥코너도 없어지고

건물자체도 완전히 바뀐 곳이 많았다.

 

내가 미팅을 자주 했다고 자백한 빵집,

[궁전제과]에 가서 그 당시부터 먹었던 빵이 뭐냐고 묻길래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아직까지 장사를 하는 곳이 어딘지 찾다가

1960년부터 영업을 했던 [창원모밀]집에서 

포장만두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국수를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깨달음도 국수 하나만 시켜 보고 싶다고 그래서 시켜줬더니

생각지도 않았는데 너무 너무 맛있다고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뷔페에서 조금만 먹을 걸 그랬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배가 터질 것 같아 못 걸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깨달음은

구 도청 자리를 가야한다고 했다.

몇 년전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본 뒤로는 실제로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룩한 주검이

있었던 그 장소를 광주에 올 때마다 가보고 싶어했다.

1980년 이후에도 도청 앞 분수대 앞에선 

매해 5월이면 변함없이 

학생들의 데모가 시작 되었고 최루탄 때문에 

눈물,콧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퍼 온 이미지)

 

이 날도 대학생과 일반인들이 모여  

 복면금지법에 항의하는 내용들을 토크쇼처럼 진행하고 있었다.

깨달음이 가면을 쓰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지난주 일본 신문에서 복면금지법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며

그것 때문에 모인 것 아니냐고 알아 듣지도 못하는 한국어를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듣고 서 있었다.

그러더니 불쑥 나한테 당신도 [광주인]으로써

한마디 하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 ....................... ]

 

그렇게 20분정도 토론을 듣고

우린 다시 [광주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을 20년 넘게 다녔던 깨달음은

제주도부터 판문점까지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지만,

 전라도는 오지 않았단다. 

중요문화유산이나 국보가 있는 경기도, 부산, 대구를

 주로 다녔고 광주는 나와 결혼하고 처음이라고 했다.

매번 올 때마다 목포, 여수, 순천 등등 전라도 탐방을

하고 다니는데 자기가 지금까지 느낀 전라도는

 특히 광주는 민주화를 일으킨 곳이여서인지

다른 지역 사람보다 피가 뜨거운 것같고

거칠지만 정이 많고, 뭐든지

감정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스타일인것 같다면서

그래서 민주화 운동도 결행할수 있지 않았겠냐고

고집이 세고, 약간의 무대포정신이

큰 장점이며 매력이라고 했다.

[ ....................... ]

약간 욕처럼 들린다고 했더니 칭찬이라며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것도 광주가 예술의 도시인 것도

이 지역 사람들이 여러면에 재능이 많다는 소리가 아니겠냐고

다음에 오면 보성, 완도, 진도, 해남 쪽을 가보고 싶단다.

[창][ 판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면서

바닷가 사람들의 삶도 좀 엿보고 싶단다.

충장로를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깨달음의 [전라도]분석은 계속되었다.

오리지널 라이브 [판소리]를 한 번 들려줘야 할텐데...

깨달음이 [전라도]를 더 많이 탐색하고 만끽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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