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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오늘까지만 아파하자

by 일본의 케이 2019. 11. 10.

새벽에 나간지도 모르게 깨달음은 조용히

출장을 떠났고 오전 일을 마친 난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으로 향했다.

6월에 해야하는 정기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예약을 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좋은 생각만 하자고 다짐하며 다독여도

좀처럼 기분은 개운해지지 않았다.

정기검진을 받는 게 그냥 싫었다. 

뭐가 싫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 이유를 끄집어 낼 수 없지만 그냥

검진을 하러 가기가 싫었다.


왜 이제서야 왔냐고 캐물어볼 간호사에게

적당히 둘러댈만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고

초음파를 하기 위해 온 몸에 발라대는

투명하고 미지근한 젤리액도 싫고,

체혈을 몇 봉이나 해야한다는 것도 싫었고

환자들 가득한 대기실 속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잡지를 뒤적이며 내 이름이 불리워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싫고,

행여나 수치가 좋지 않게 나와서 

뭔가 치료를 다시해야할지 모른다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되서 싫고,,그냥 다 싫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뤘다.

모든 이유같지 않는 이유들을 내세우며

병원 가는 걸 멀리했다. 하지만 와야했기에,

 아니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렸다.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하필 오늘은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온 사람들로

 대기실에 앉을 자리가 없었고 

예약은 했지만 1시간이 넘도록 내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자 간호사가 두어번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갔다.

드디어 내 차례,,채혈을 하고, 초음파를 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나왔다.

그 일주일간 난 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신경을 바짝 세우며 지낼 것이다.

솔직히 이 초조한 기다림이 싫어서 

미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무언가 몰두하고 싶을 때마다 펼치는 책을 들고

몇 페이지 읽다가 벌떡 일어나 주방에 나가

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죄다 꺼냈다. 

다음주를 위해 몇가지 만들어 두어야할 

반찬거리가 갑자기 생각났던 것이다.

그 때, 마침 깨달음에게서 저녁 스케쥴을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카톡이 왔다.


[ 병원에서 뭐래? ]

[ 다음주에 결과 나온다고 그랬어 ]

[ 그럼 지금 뭐하고 있어? ]

[ 응,,반찬 좀 하려고, 다음주에 시간이 없어서 ]

[ 안 피곤해? ]

[ 괜찮아 ]

[ 저녁에 맛있는 거 먹을까? ]

[ 뭐 먹을 건데? ]

[ 피를 뺐으니까 보충해야지, 고기 먹자 ]

[ 알았어 ]

신칸센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깨달음이 

양 손에 들고 나온 쇼핑백을 내게 주고는 

배고프다며 빨리 먹으러 가자고 서두른다.


출장지에서 직원들과 있었던 작은 트러블을

내게 고자질 하듯 풀어내는 깨달음의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 다음주에 결과 나오는 거야? ]

[ 응 ]

[ 늘 하던 건데 왜 이번에는 검진을 

안 하려고 했어? ]

[ 그냥,,]

내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다시 묻는다.

[ 안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싫었어? ]

[ 그냥,, ] 


[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로 했잖아 ]

[ 알아, 나 안 아파 ]

[ 근데 왜 병원 가기 싫은 거야? ]

[ 몰라,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도 싫고,

그래서 계속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도

 그냥 짜증났어, 안 가도 될 것 같고,,]

[ 안 가면 안 되잖아 ]

[ 알아,,알고 있어.그래서 오늘 갔잖아 ]

[ 아프면 당신만 힘들어..,내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

[ 알아,,안 아플거야,괜찮아 ]

깨달음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평양식 냉면이라고

나온 냉면을 후루룩 몇 번 먹다가 전혀 평양맛이

아니라며 나한테 맛을 보라고 냉면 그릇을 밀고

 내 삼계탕을 자기쪽으로 가져갔다.

[ 먹어 봐, 한국식도 아니고 일본식이지? ]

[ 응,,,일본인 입맛에 맞춘 맛이네..]

[ 역시, 냉면은 농x 둥지냉면이 최고야 ]

[ ....................... ]


집에 돌아와 깨달음은 피곤하다며 일찍 잠이 들었다.

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정리를 하고

내일 필요한 것들도 가방에 넣은 뒤 

일기장을 꺼냈다. 블로그에 차마 

적지 못했던 내 병원일지를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항암 부작용으로 전혀 음식을 먹을 수 없었을 때

썼던 내용들은 지금 읽어봐도

 너무 처절해서 몸서리가 쳐진다.

그렇게 버티며 이겨냈으니 이제는 관리만

 잘 하면 되는데 자꾸만 답답함에 화가

 치미는 건 무엇때문일까..


언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끌어 안고 사는 불안함이 

지겨워진 것일까..,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피골이 상접해져가는

나를 보면서 먹을 수만 있다면, 

단 하루라도 잠을 편히 잘 수만 있다면,

아프지만 않는다면, 아니 낫기만 한다면 뭐든지

 할 거라고 다짐하고 다짐 했건만 요즘에 난

 자꾸만 방전된 인형처럼 축축쳐져 가고 있다.

이렇게 정신상태가 혼란스러운 건 

갱년기의 끝자락인 것도 하나의 요인일 거라

나름 분석해 보지만, 분명한 건

100%완치라는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서인 것 같다.

그 말을 듣기 위해서 난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며 얼마나 더 기다림 속에 있어야할까..

오늘까지만 지치고 아파하자..

나 보다 더 힘든 상황에 계시는 분들,

여전히 치료중이신 분들이 

훨씬 많으니 지금의 나를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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