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선배를 만났다.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이 선배는
깨달음에게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해주신 분이시다.
올 초에 한국에서 딸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고
그 날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신이 느꼈던
분위기들을 얘기해 주셨다.
신부대기실에 선배,후배, 동료들이 와서
울다가 웃다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고
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누가 누군지 몰라
인사는 받았지만 거의 기억을 못한다고 했다.
예식비가 얼마 들었는지, 축의금이 얼마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모두 신혼부부에게 맡긴 채
자신은 다음날 일 때문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야했다고 한다.
아빠 역할을 제대로 못했는데 잘 커 준 딸에게
제일 감사했고 아직 젊은 둘다 20대이니까
걱정할 것은 없다며 잘 살고, 못 살고는
이제부터 그들의 몫이라했다.
[ 역시,,한국사람들에 파워는 대단해..
뭐랄까,,축하를 온 몸으로 한다고 할까,,
마음과 정성을 가득 담아서 하는 것 같애,
그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부분이
한국인의 매력이고 장점이 아니가 싶어 ]
그게 장정이라고 생각하냐고 내가 물었다.
[ 케이짱도 알겠지만 일본은 혼내(본마음)
다테마에(겉마음)가 있잖아, 그래서 좀처럼
혼내로 얘기하기가 힘들지,친한 사이여도
그렇고 회사 동료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더더욱,,그렇게 사람들을 사귀니까 결혼식에
초대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그렇지..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이상한 배려지..그런데 한국 결혼식에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껏 자신과
함께 했던 친구들, 동료들 모두가 오잖아,
그것만 봐도 확연히 다르지..일본은 아주 가까운
친척, 친구들도 정말 선별하고 선별해서
초대장을 보내는데..]
[ 한국은 초대장 시스템이 아니여서
많이 올 수도 있고 그래요.. ]
[ 알아,,그래서 인간미가 넘친다는 거지.
결혼식도 그렇고, 장례식도,,
행복한 결혼에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장례식은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오는 거잖아,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지.
나는 그런 감성적인 면, 어찌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리는 작은 행복같은
인간적인 면을 함께 편하게 나누는 모습,
그런 문화가 너무 좋게 느껴진다는 거야 ]
[ 한국도 이젠 간소화 돼서 결혼식도
스몰웨딩이많아진 것 같더라구요 ]
[ 그래도 일본처럼 딱딱한 축하분위기는 아니지 ]
하긴 내 결혼식에 참가했던 가족, 친구들도
결혼식이 너무 엄숙해서 생소했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옆에서 깨달음도 한마디 덧붙혔다.
[ 일본은 축하받고 싶을 때나 슬픔을 나누고 싶을 때도
먼저 사양하고 배려하느라 진짜
내 기분과 감정을 많이 죽이면서
살아간다고 봐야지..]
그러고보니 이 선배, 자신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깨달음에게조차 연락을
안 했던 사람이다.
장례식이 시골일뿐더러 알리면 장례식에
참석 못하는 깨달음이 신경 쓸까봐서
아예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말했던 분이고 조의금도 강하게 거부하셨다.
우린 중화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늙음에 대한
서글픔을 공감하기도 하고 혼내(본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선배는 언제가 힘드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힘들다기보다는 이제 그냥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신다.
딸도 결혼을 하고 곧 있으면 할아버지가
될 지 모르니 건강에 신경쓰며 인간답게
혼내대로 살아보려고 한다고 했다.
누구 앞에서든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혼내(본마음)그대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고 싶은데 그 요령을 모르겠다고 했다.
다테마에로 살아오는 게 몸에 배여서인지
좀처럼 자신을 내 보이는 게 서툴다는 선배.
일본에는 혼내(본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라는
문화가 있다. 두 가지의 마음으로 살아가며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원만한 관계를
서로 유지하기 위해 혼내( 본마음)이 아닌
거짓으로, 예의상,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마음과 상관없는 웃음을 지으며 살아간다.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애교로 보거나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100% 사람을 잘 믿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고 혼란을 주기도 한다.
지금껏 두 개의 마음을 잘 이용하며 살아왔지만
본심을 감추며 사는 게 피곤할 때가 많다는 선배.
하지만 그게 또 일본 문화의 하나이고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혔다.
[ 케이짱, 한국은 그게 장점이고
아주 좋은 문화야, 사람이 솔직하게 사는 게
제일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어렵지..특히 일본인들은,,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잖아,,그게 난 항상 좋아보여..]
[ 솔직한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
[ 그러긴 한데 인간과 인간은 속내를
서로 보여가면서 살아야지 기대기도 하고
의지도 하며 서로를 신뢰하게 되잖아,
사람이 가장 기쁠 때도 함께 하고
슬픔때는 진심으로 슬픔을 덜어주는
그런 게 바로 삶의 참 모습이야,
그래서 유대관계가 아주 돈독하잖아,
서로가 거짓없이 만나니까. 정말 부러워 ]
부럽다는 선배의 한마디가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우리 테이블을 감돌았다.
이 선배 역시 누구보다 순진하고 맑으며
솔직한 분이다. 특히, 우리 세명이 만나면
속내가 자기도 모르게 술술 나온다며
스트레스가 쌓이고 울적할 땐
우릴 만나고 싶어했다. 자신은 일본에 태어나
일본 스타일로 살 수밖에 없지만
다시 태어나면 깨달음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풍류를 즐기며 인간미 넘치는
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선배..
나는 선배의 빈 잔에 술을 채워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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