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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남편이 한국 가서 먹겠다고 써내려간 리스트

by 일본의 케이 2018.11.08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한 요즘 난 되도록이면

빨리 잠자리에 들려고 하고 있다.

가을인 듯, 가을이 아닌,,묘한 날씨에는

감기에 특히 유념 해야할 것 같아서이다.

오늘도 9시가 되자 내 방으로 들어왔고

읽어야할 책들과 해야할 것들을 꺼내놓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노크소리와 함께 깨달음이 책을

 들고와서는 얼른 내 침대로 올라왔다.

11시 30분이 막 넘어가고 있었고 이 시간이면 

깨달음이 벌써 취침에 들어가고도 남았을데 

 갑자기 책을 들고 내 방에 온 걸 보면

나름 중대한? 일이라 짐작했다.

[ 뭔 일이야? 안 잤어? ]

[ 한국관련 가이드 북을 보다가 당신이랑

얘기하려고 들어왔지 ] 

서울을 특집으로 다룬 잡지와 여행 가이드북까지

세 권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펼쳐놓았다.

[ 이거 오래 된 거 아니야? ]

[ 응, 옛날 거랑 작년 것까지 가져왔어,

내가 행여 놓치고 못 본 것이나 음식이 있는지

  차분히 다시 읽어보는 중이야 ]


이번은 친구 딸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

 한국행이기에 그 외에 특별히 여정이 

잡혀 있는 건 아니였다.

그래서 깨달음에서 가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미리 알아두라고

 언질을 했는데 이렇게 늦은 밤까지 

탐색을 할 거라 생각지 못했다.

[ 정했어? 가고 싶은 곳? ]

[ 음,,,서울은 웬만한데는 다 가봐서...

마땅히 갈 만한 곳을 아직 못 찾았어.서울을

 벗어나면 많은데 시간이 안 맞을 것 같고,,] 


그렇게 깨달음은 3권의 책을 뒤적뒤적 거리며

이태원. 신촌, 강남, 이대, 인사동, 청담동, 

명동,수산시장, 북촌마을 등 자신이갔던 곳, 

먹었던 가게 를 상기시키며 12시가 넘도록 

얘기를 했고, 먹고 싶은 것도 이번에는

 신중히 고르고 골라서 정말 후회없는

 3박 4일을 지내고 올 거라며 들떠 있었다.

다음날도 퇴근을 하고 와서는 그 책중에서

뽑아낸 페이지를 스크랩으로 만들어와서

내게 한 장씩 확인시키듯 보여줬다.

[ 다 못 보고 다 못 먹더라도 일단 뽑아 봤어 ]

[그래,,잘했어. 근데 그날 후배 만나서

한정식 먹을 거야 ] 

[ 나,,한정식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른 먹을 거 생각해 뒀는데...]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후배가 한정식집을 예약했다고 하는데 

깨달음은 한정식이 아닌 느닷없는

 게를 먹고 싶다고 했다.

꽃게도 아닌, 킹크랩도 아닌 영덕대게, 

한국 홍게를 한번도 안 먹어봐서 먹고 싶단다.

[ 서울에서..그것도 지금 제철이 아닐 건데...

어디서 어떻게 먹는다는 거야? ]

[ 후배가 찾아주지 않을까? ]

[ 당신은 그 후배를 자기 직원 부리듯 하냐? 

아니, 자기 회사 직원한테는 그렇게 이것저것

못 시키면서 왜 우리 후배한테 막 주문을 

하고 그러냐? 미안하게.. ]

나와 유학생활을 같이 했던 후배이기에

깨달음도 물론 잘 알고 있고 남편분과도

친한 건 사실인데 매번 깨달음이 너무

많은? 과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한마디 하고 말았다.

[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말한 거야,,]

[ 그니까 그냥 한정식 먹어 ]

[ 싫어,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우리 동창 지난달에 죽은 거

 알잖아 당신도...그리고 한국까지 가는데

 왜 못 먹게 하는 거야 ? ]

왜 그 대목에서 동창의 죽음을 꺼내는지 참

유치한 편법을 쓰는 깨달음이 우스웠다.

그리고 과메기도 먹을 거라면서

잊어버리지 않게 메모를 해둔다며 종이를 

꺼내와서는 복사본을 봐 가며 적어내려갔다.

http://keijapan.tistory.com/1177

(남편의 청춘시절, 그리고 첫사랑)


[ 닭 한마리도 먹을거야]

[ 그건 내가 집에서 해줄게 ]

[ 닭죽 말고 닭 한마리 말하는 거야 ]

[ 차라리 삼계탕을 먹겠다 ]

[ 싫어. 닭 한마리 먹을거야 ]

예전부터 한 번 먹어보고 싶어했지만

내가 강력하게 말렸던 메뉴이다.

일본인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아 매스컴에서도

많이 다뤘던 음식인데 난 솔직히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깨달음에게도 권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기어코 먹을 거란다.

[ 그 양념이 정말 맛있다고 그랬어,심플하면서도

 아주 담백하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스프에 

만두랑 칼국수를 넣어서 먹을 수 있다는데  

왜 먹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

[ .................................. ]

만두와 칼국수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

 깨달음에게 더 이상의 반대의견을 

내세울 수 없었다.



다음으로 적어 놓은 건 치즈 핫도그였다.

영게와 과메기, 닭한마리는 안 먹어 본 거니까

꼭 먹어본다고 하더라도 왠 치즈 핫도그냐고

 물었더니 학생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줄을 서서 먹는 핫도그가 무슨 맛인지

 항상 궁금했는데 어제 신주쿠에 나갔더니

남학생들도 모여서 쭈~욱 늘어지는

치즈를 먹더라며 그 모습을 보면서 꼭 한 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그럼, 그냥 줄 서서 먹지 그랬어 ]

[ 젊은 사람이 많아서 챙피하잖아. 그리고 

분명 일본보다 한국에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거야, 오리지널이니까 ]

하긴, 일본에서 호떡 붐이 일었을 때도

일본에서 안 먹고 한국에서 먹었던 사람이다.

일본에서 만든 한국음식은 뭔가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깨달음에게 치즈 핫도그 역시도 한국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 외에도 평양냉면, 칼국수, 막걸리다이닝,

 치즈 순두부가 적혀있었다. 평양냉면은 

북한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갈거라며 가게도 이미 알아뒀다고 한다. 

[ 알았어..당신 하고 싶은대로 해..]

[ 서울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게 해 줘...]

우리 부부는 매년 두번씩 한국에 가는데

2월달은 아빠 기일이 있어 고향 광주를 꼭 

내려가야하고 나머지 한번도 되도록이면 엄마가 

혼자 계시는 광주에 내려가려고 하거나

서울 언니네집에서 만나기도 했었다.

그곳에서도 깨달음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위주로 식당을 가거나 음식을 준비하지만 역시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조금은 사양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행은 결혼식 참가를 위해 가는

 것이여서 깨달음은 자기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했다. 

알았다고 난 당신 통역으로 같이 있을테니까

당신이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에

가자고 했더니 얼굴색이 환해지며 고맙단다.

저렇게 적어 둔 음식들을 다 먹을 수는 없겠지만

 깨달음 나름대로 서울을 만끽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줘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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