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금 일본은..

사랑은 나라도 민족도 필요없다.

by 일본의 케이 2015. 1. 6.
728x90
728x170

 

영화 한 편 보러 나갔다.

화가 이 중섭씨와 일본인 아내의 사랑을 그린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라는 다큐영화였다.

한국과 일본,,격동의 그 시절에 [사랑]을 키워간 부부.

 결혼사진도 올려져 있고, 남편이 떠난 후에도 두 아들을 혼자 키우며

살아 온 일본인 아내(야마모토 마사코)의 일상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나라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감동을 그대로 영화에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인터뷰 장면도 전시되어 있다.

 

1916년 9월 16일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화가 이 중섭.

고등보통학교 시절, 교사이던 화가 임용련, 백남순 부부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아

일본에 유학, 사립 분카가쿠잉(문화학원) 미술과에 다녔다.

그 당시 동급생이였던 일본 여성과 뜨거운 열애를 하고 결혼을 하지만

 한국 전쟁 기간중인 탓에 부산과 제주도를 오가며 지독히도 가난한 생활을 보낸다.

결국, 이 중섭은 아이들을 위해 일본에 부인과 두 아들을 보내고 난 후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부부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편지로 서로의 사랑과 마음을 전했다.

그 편지엔 일본어로 빽빽히 아내를 향한 사랑,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고

 편지지엔 특유의 텃치로 여백 가득히 그림을 그려 넣는 센스와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사랑과 그리움이 넘쳐난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 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 아내의 한국이름)의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 주셨소.

다만 더욱더 깊고 두텁고 열렬하게, 무한히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렬히 사랑하고,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모든 것을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이 중섭이 아내에게 보내 편지의 일부내용)

편지의 실물들은 삼성미술관 리움과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향년 41세..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으며 혼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남편에게 편지가 두절되고 난 후에도

아내는 이 중섭의 친구에게 몇 번이고 편지를 보낸다. 남편의 죽음을 알지 못한채로,,

 

영화가 끝나고,,, 참 맑은 영혼의 다큐를 한 편 본 느낌이 들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안타까운 삶과 사랑의 절절함이

 더 뭉클하게 다가왔던 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어서였다.

살아서는 궁핍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화가 이 중섭.

 깨달음은 옛 편지를 읽으며 수줍어 하는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단다.

아내와 아들을 두고 혼자 숨을 거두었을 남편의 심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단다. 

그 당시 식민지시대,,, 한일커플들이 많이 있었을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만해도 애절하고, 안타깝고, 짠한 마음이 든단다.

그 속에서도 사랑을 피운 이 중섭 부부,,,,

역시, 사랑의 파워는 나라도 문화도 인종도 차별도 초월할 수 있다며

 갑자기 나보고 [ 뽀뽀해요~케이씨]란다.

[ ...................... ]

이 중섭씨 편지에 [ 내 뽀뽀를 받으세요]라고 한글로 적어 있었다며 흉내 내 본 거란다.  

그들에게 한번 주어진 사랑은 결코 잊을 수도 사라지지도 않는 선물이였을 것이다.

내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였다.

세상의 유일한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인만큼

나도 많이 사랑하고 살아야할 것 같다.

깨달음이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난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공감을 눌러 주시는 것은 글쓴이에 대한 작은 배려이며

좀 더 좋은 글 쓰라는 격려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