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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병상일기- 2 이젠 괜찮아

by 일본의 케이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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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끝자락에 있는 이곳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택시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다가

굵은 빗소리와 후덥지근함에 새벽녘에 눈을 떴던

홍콩의 어느 호텔방이 떠올랐다.

17층까지 흙냄새가 올라오고 습한 공기들이

방 안 가득했던 어느 여름날,,

핸드폰 액정에 온도 24도,

습도는 83%라 떠 있다.

 

정각 9시,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또 30분을 기다렸다.

이른 시간에도 환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대기자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오늘은 골절부분이 뒤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엑스레이를 찍었다.

지난 일주일간 다리에 무리해 힘을 줬거나

잘못 움직여 부러진 뼈의 위치가

바뀔 수 있는데 그것들을 다시

확인해야 해서 찍는 거라 한다.

 별 문제가 없으면 지난주에 발 모양의 본을 뜬

고정깔판을 사용하게 된다.

엑스레이 결과, 다행히 부러진 뼈는

엇갈리지 않은 채 얌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고정기라기보다는 두꺼운 깔판같은 게

완성되었고 그 깔판을 신발에 넣으면

부러진 곳에 자극이 가지 않고 조금은 보행하기

편할 거라고 했다.

내 발은 복합골절중이다.

새끼발가락 윗 관절이 골절되고 복숭아뼈에 금이

 한 줄인 줄 알았는데 실금까지 합해서

5줄이나 나 있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여기 보시면 아직 뼈가 떨어져 있죠?

아물려면 멀었어요. 6주에서 8주 걸리신다고

보시면 되고 붙어도 관리하셔야 합니다 ]

[ 꽤 오래 걸리네요...]

[ 원래 팔은 금방 붙고 빨리 낫는 편인데

다리는 특히 발가락은 시간이

걸리는 부위입니다. 그래도 착실히

쉬고 계셨는지 뼈가 그대로 잘 있네요..

 약은?  진통제 좀 드릴까요? ]

[ 아니요, 괜찮아요 ]

[ 잘 참으시네.. 아프실 텐데..]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대상포진으로 진통제를 먹고 있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내 진찰 차트를 보면 다 아실테니..  

담당의가 지금 칭찬하는 거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길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해 드렸다.

처음엔 왜 깁스를 안 하는지 궁금했는데

 큰 골절 외에는 깁스를 하지 않는다고

유럽에서는 이 정도 골절은 병원에도

안 온다며 웃으셨다.

[ 고정 깔판을 깔면 조금 걸을 수 있게 돼서 많이

움직이게 되는데 그러면 뼈 금방 안 붙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이 걷지 마시고

 한 발로 콩콩 뛰면서 다니지도 마시고요 ]

[ 네...]

환자들의 행동 패턴을 다 꿰뚫고 계셨다.

나도 한 발로 강시처럼 뛰어다녔으니까...

발가락 고정 깔판 이외에 발목보호대를

채워주시고 깔판에 맞는 신발을 하나

구입하시는 게 좋을 거라고 하시면서

진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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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를 나와 다음은 피부과 앞에서 15분

기다렸다가 치료를 받았다.

[ 딱지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연고는

이제 안 바르셔도 될 거 같네요 ]

[ 선생님. 근데 제가 아직도 허리가 너무 아파요 ]

[ 음,, 손상된 신경을 회복시키려면 약을 좀

꾸준히 드셔야 될 겁니다 ]

[ 네...]

 수포가 상당히 많았고 범위가 좀 커서

좀 오랜 시간 약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빗줄기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갑자기 무지개가 보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83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 오~많은 일이 있었네요.응급실을 두 번이나,, 불행이 계속되네..별 일 아니어서 다행인데 다리는 왜 또?  뭔 일이래요? 힘드시겠다~~] 젊은 의사는 나를 자기 친구 대하듯 즐거운 표정을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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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가족들에게 중간보고? 와 함께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했다.

골절과 대상포진이 한꺼번에 오면서 내 멘탈이

흔들릴 때 엄마는 지금이라도 당장 일본에 가서

사골국을 끓여주고 싶은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다고 눈물을 보이셨고 자매들은

괜찮을 거라고 더 큰 병도 이겨냈으니까

넌 이겨낼 거라고 다독여주며

타국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을 피붙이가

안쓰러워 눈물을 훔쳤다.

https://keijapan.tistory.com/1406

 

결코 부러운 삶이 아닙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난 병원을 찾았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데 오른쪽 팔뒤꿈치가 좀 가려운 것 같아서 만져봤더니 말랑말랑 뭔가가 만져졌다. 예약전화를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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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eijapan.tistory.com/1375

 

가족이기에 더 감사해야할 게 많다

출장을 가기 위해 깨달음이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속옷, 반팔과 긴팔 와이셔츠를 한장씩 넣으며 삿포로는 도쿄와 다르게 기온차가 심해서 감기 조심해야한다고 했다. 난 알코소독제와 티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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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하는 병상생활도 이젠 완전히 익숙해졌고

비록 꽤나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긴 했지만

골절도 이 정도여서 그래도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다.

큰 사이즈 신발에 깔판을 깔고 왼발에

힘을 주고 내딛는 순간 내 입에서

[ 섰다. 설 수 있어 ]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걸 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살아서인지 서고 걷는 일상이 

아주 많이 기뻤다.

이렇게 난 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들을 

직접 체험하고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젠 속상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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