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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삶과 죽음이 별 게 아니다

by 일본의 케이 201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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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말없이 신칸센 티켓을 예약하더니만

갑자기 일어나 옷장에서 상복을 꺼내었다.

[ 나도 가야겠지...]

[ 아니.당신은 안 가도 돼.원래 가족들만 하기로 한 건데

 난,,그동안 고마워서 가는 거야..]

[ 진짜 나 안 가도 될까....]

[ 괜찮아..내일 첫차로 갔다가 장례식만 보고

바로 사무실로 돌아와야 돼... 미팅도 있고,,..]

내 쪽으로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턱을 괸 상태로 티켓예약에만 몰두했다. 

속상해서 술을 많이 마신거냐고 물을 뻔 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난 깨달음 방을 나왔다. 

 

다카시 형님이 돌아가셨다.

거래처 부장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단다.

 깨달음보다 8살 위인 삼촌의 아들인 다카시형님이

 어제 새벽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내게 카톡을 보낸 시간이 저녁 9시 25분이였고

 집에 들어온 게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였다.

 

이 날 새벽, 깨달음은 첫 신칸센을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시댁에 도착해서

 아버님, 어머님을 먼저 뵙고 미리 도착해 있던

도련님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단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한 깨달음은

마치 중계를 하듯이 한 컷, 한 컷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형님이 자기 부모님 가까이 살면서 자식처럼

해왔던 그 고마움이 절절히 느껴져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고 했다.


 

어머님이 향을 피우며 약간 눈물을 보이셨단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화장을 하기 마지막까지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여준다.

깨달음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형님 얼굴에 대고

[고마웠다고,,아주 많이 고마웠다고... ] 말하는데

울컥 목이 메이더란다.


 

돌아가시기 3주전, 어머님이 형님 얼굴이 노랗다고

황달끼가 있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단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우린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은 그 때 이미 간암 말기였다고 한다.

암의 크기가 6센치가 넘어가고 있었고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였기에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고

 자식들에게만 알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들 외에 어느 누구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했던 지난 2월,

응급실에 같이 가 준 것도 다카시 형님이였고

매일 아침이면 아버님이 좋아하는 스포츠신문을

병원으로 가져가 안부인사를 건냈던 것도

 다카시 형님이였고,,,

어머님 무릎 재활치료를 다니실 때도 다카시 형님이

잊지 않고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 모든 게 너무 감사해서 저녁 식사를 사드렸을 때

당신도 제 2의 인생을 살 거라고 호탕하게 웃으셨는데...

작년까지만해도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인 아내를

혼자서 병간호하다 떠나보내셨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깨달음이 차에게

살짝 봉투를 건냈을 때 어색한 얼굴로 안 받겠다고

실랑이를 벌리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흰 백발이 참 잘 어울리셨는데 이렇게 또 조용히

작별을 하고 말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깨달음과 도련님은

어머님, 아버지께 너무 낙심하지 마시라고 

마음 추수리시고 우리들이 더 자주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도련님을 교토로, 깨달음은 동경으로,,,,,

모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서

깨달음은 인생무상을 진하게 느꼈단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깝게 있다는 것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것도, 너무도 허탈하다며....

사는 것도,,죽는 것도,,그러고 보면 참 별 게 아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지금에 내 삶을

충실히 사는 게 조금이나마 무상함을 채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그것마저도 허망해지는 게

삶이고,, 죽음이 아닐까 싶다.

부디 평안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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