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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우리에겐 너무 짧은 한국에서의 시간

by 일본의 케이 201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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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모든 식구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1부 예배를 보기 위해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우린 조금 느긋하게 아침을 

준비했다. 깨달음이 교회에 갈 것인지

 약간 고민을 했다가 안 가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냈고, 가족들의 예배시간에

 우린 남은 스케쥴을 이행 하기로 했다.

[ 깨달음, 서점도 가야되고 은행도 가야 돼]

[ 그럼 충장로 나가야겠네? ]

[ 응, 엄마랑 다 나가시면 청소하고

우리도 바로 나갈 수 있게 당신도 준비해 ]

[ 알았어 ]

이렇게 우리 나름에 스케쥴을 잡아두고 가족들이

 집을 나서자 나는 설거지와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 화장을 하면서 엄마와 시장에서 합류 

할 시간들을 계산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화장실에서 날 부른다.

[ 왜? ]

[ 이거 고장 났나 봐, 물이 안 내려 가 ]

[ ................................. ]

[ 큰 거 쌌어? ]

[ 아니..]


화장실 변기에 물내리는 레버가 끊어졌는지

느슨하게 따로 놀았다.

갑자기 머리가 띵해오고 이 일을

어찌 수습해야할지 몰라 얼른 관리실에

전화를 드렸더니 일요일이여서 손 볼 수 없다고

 해서 알려준 설비업체에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는다.

점점 속이 타 들어가고,,,누구한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할지 앞이 캄캄한 상태인데

시간은 자꾸 흐르고,,안 되겠다 싶어 관리실에 

가기 위해 나갔다가 엘리베이터에 붙은

수도누수전문이라 적힌 곳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받았고 1시간이 좀 넘어서 

오실 수 있다고 했다.

내 얼굴이 심각해진 걸 눈치 챈

깨달음이 자기가 물을 내리기 전부터 고장난 것 

같더라고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 알았어.....]

[ 언제 오신데? ]

[ 한시간이상 걸린데..]

아저씨가 올 때까지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깨달음은 쇼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드디어 아저씨가 

오셔서 고장난 부분을 보고 있는데

깨달음이 빼꼼히 내다보다가 식탁에 앉아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 거냐고 물어보란다.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자 고개를 

끄덕끄덕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부품교환이 거의 끝날 무렵,

 예배가 끝났으니 시장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언니에게서 왔다. 수리를 마친 아저씨가

 돌아가려고하자 깨달음이 몇 번이고 

물을 내리며 확인작업을 한 뒤 우린 서둘러

 시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쇼핑을 했다.


막 나온 튀김도 하나먹고 사달라는 군밤을 샀는데

따끈하게 막 튀겨서 나온 군밤이 맛있었는지

입으로 까 먹느라 자꾸만 뒤쳐져 오다가

내가 뒤돌아 보면 안 먹은척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 깨달음, 먹는 건 좋은데 여기서 길 잃으면

당신 혼자 집에 올 수 있어? ]

[ 아니..]

[ 그니까 우리랑 떨어지지 않게 잘 보고 와]

[ 응 ]


점심은 집 근처 돌솥정식집에서 나는 삼계탕을

주문하고 깨달음과 식구들은 돌솥밥을 주문했는데

깨달음이 내 삼계탕을 탐 내는 바람에 반도 

못 먹고 줬더니 너무 맛있게 먹으면서 

자기 돌솥밥을 나한테 내밀었다.

[ 오메,,깨서방 삼계탕 하나 따로 시켜줘라 ]

[ 아니야, 엄마,,원래 이 사람 내 것을 

자기 것처럼 먹는 사람이야, 저거면 됐어 ]

[ 하나 더 시켜서 너도 먹어야지? ]

[ 아니야, 반정도 먹었어 ]

엄마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금새 알아듣고는

자기는 이 삼계탕이면 된다고 시키지 말란다. 

그렇게 깨달음만? 대만족한 점심을 먹고

호수생태원에 산책로를 걸었다.


미세먼지는 심했지만 봄날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너무 좋아 깨달음은 커피숍 앞에서

갑자기 윗옷을 어깨에 걸치고 70년대

모델 포즈를 취하면서 나를 보고 실실 

웃으며 멋지게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오후시간을 보내고 우린 집으로 

돌아와 오전에 못 갔던 서점과 은행일을 

처리하고 동생네 가족과 저녁식사를 했다.

 깨달음이 처음 먹어본다는 황실이탕

(작은 조기새끼를 넣은 찌개)과

모둠생선구이를 주문했는데 깨달음이

황실이탕이 맛있다며 뚝배기에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또 혼자서 다 먹었다.


다음날 공항에 가기 전에 엄마는 

깨서방이 좋아하는 나물을 더 먹이고 싶다며 

호박을 볶고 시금치를 무치고 정신이 없는데

주방 뒤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봤더니 구운 김을 조심히 접어서 

야금야금 소리 죽여가면서 먹고 있었다.


[ 이 김 진짜 맛있어. 어제 처형이 이렇게 김에

 나물을 올려 먹는 걸 보고 나도 해봤는데

너무 맛있는 거 있지 ]

[ 응,,곱창김이라고,,일본에서도 먹었잖아

동생이 보내줘서.. ]

[ 이렇게 양념장은 안 해 줬잖아 ]

[ ................................ ]

깨달음은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며 호박나물,

숙주나물을 모두 깨끗이 비웠고 그걸 본 

엄마는 나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 저렇게 나물을 좋아해서 잘 먹응께 얼마나

이쁘냐, 일본 가서도 많이 해줘라, 한국에 

살믄 내가 맨날 해줄 것인디...]라고 했다.

그리고 뭔가 생각난 듯, 얼른 안방에 

들어가시더니 흰봉투를 꺼내 와서는 깨서방 

생일선물 사라고 주자 깨달음은 좀 

멋쩍어하면서도 냉큼 받았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우린 다시 일본에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아서

깨달음은 엄마한테 받은 돈을 자기 지갑에 

옮겨 넣으면서 다음에 한국에서 맛있는 거

 사 먹을거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3박4일은 늘 긴 듯 짧다.

가족들과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그리

 특별할 것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도 빨리 스치고 지나가버린다.

[ 나,,정말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다..]

내 말을 들었을텐데 깨달음은 못 들은 척했다.

귀국해서 뭘 할 것인지 아직까지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 이렇게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나에겐, 아니 우리 부부에게 3박4일의

한국행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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