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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이방인들에게 송년회가 주는 의미

by 일본의 케이 2015.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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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1월 말부터 각 기업체 뿐만 아니라

자영업 하시는 분들까지 송년회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주말에 많이 하는데 송년회 장소가 예약으로 붐비면

평일에도 함께 모여 가는 한 해를 뒤돌아보고

내년 한 해의 목표와 화이팅을 외친다.

우리도 첫번째 송년회를 가졌다.

대학원 동기, 후배들과 함께 조촐하게 [고향]이라는

조선요리집에 자리를 마련했다.

조선족 2명, 중국인 2명, 한국인 3명으로

일본인이 빠진 유학생팀들이 모였다.

그 많았던 유학생들도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은 우리들 뿐이였다.

사회 동료들과는 달리 학교 동기들을

만나면 또다른 느낌이 있다.

우리 서로 유학생, 이방인이였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냥 짠하고, 그 당시 공부할 때의 시간들이

생생히 와닿아서 난 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주문을 하려는데 조선족 친구가

먼저[채소]를 시키라고 그래서

다들 얼마나 웃었는지...

야채나 샐러드쪽을 먼저 주문하라는 소리였는데

조선족 특유의 단어들과 억양이 너무 재밌어서

서로 따라하면서 송년회가 시작되었다.


 

중국인 친구가 있어서 주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화제에 먼저 오른 것은 나였다.

[ 난, 케이씨가 교수님인 줄 알았어..]

[ 야,,케이가 우리들하고 말도 잘 안했잖아..]

[ 얼마나 차갑든지,,,얼음나라에서 온 줄 알았어..]

[ 난 일본인인줄 알았어...]

[ 근데, 친해지니까 완전 성격이 남자인거야..]

[ 콤페에서 장려상밖에 못 받았다고 

상도 안 받으러 간 사람이 바로 케이씨야....]

[ 그래도 마음 고생많이 했어....지도교수하고 안 맞아서..]

[ 야,, 근데 니네 누님들 잘 계시냐?

완전 내 스타일이였는데... 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이였지? 수여식 때 오셨잖아 ?

그리고 그날 저녁 축하파티 때도 막 울고 그러셨잖아..]

갑자기 우리 언니들 얘기로 화제가 전환되면서

여자는 공부를 많이 해봐야 소용이 없다.

얼굴만 이쁘면 된다, 케이를 봐라, 공부 많이 한 것들은

남자를 피곤하게 한다는 둥,,,,

나와 후배 빼놓고 모두 남자여서인지

자기들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쏟어냈다.

그래도 난 기분좋게 그들의 얄궅은 여성학 개론?을 

들으면서 술 잔을 기울렸다. 

 

 예술학과 유학생들 전체모임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오랜만에 그룹전을 좀 크게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누구는 어디서 사무실을 차리고,

누구는 직장에서 이지메를 당한다는 얘기..

중국 투어를 단체로 가자는 얘기...

 

중국인 친구가 평양에 가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한국과 북한에 관한 정치적인 얘기도 좀 하고,,,

평양식 냉면도 시켜 먹어봤는데

먹다가 조선족 친구가 진짜 평양식이 무슨 맛인지 몰라

맛을 평가하지 못하겠다고 북한에 잠시 넘어가서

먹어봐야겠다는 얘기로 또 다들 웃고,,,

 

이들을 만나는 횟수로 치면 기껏 1년에 한두 번이다.

하지만 매년 한 번씩 이렇게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면 만날 수록 정이 더 깊어간다.

서로가 아팠던 부분을 알고 있어서 만나면 더 반가운 것 같다.  

마지막 잔을 비우기 전에

긱자 내년의 게획들을 얘기했다.

누구는 중국에 집을 살 거라하고

누구는 중국인 상대로 마케이팅을 하겠다하고

누구는 둘째 아이를 가져볼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누구는 1억 모으는게 목표라는 소리도 하고,,,

나는 내년에도 건강하게 보내는 게 목표라고 했더니

재미 없는 소릴 한다면서 나보고 늙었다며 타박을 했다.

모두들 일본 생활이 나처럼 15년을 넘어가고 있다.

내 나라에 가더라도 웬지모를 낯설음과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우리들...

이젠 중국인도, 한국인도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닌

어정쩡한 이방인이 되어버린채

이렇게 우린 일본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내년에는 모두들 건강하고 좋은 일만 넘쳐 나길 바래며

마지막 건배로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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