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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이혼에 관한 일본 아줌마의 명쾌한 조언

by 일본의 케이 2019.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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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긴 황금연휴가 시작된 이곳은

왠지모를 설레임이 술렁거리고 있다.

깨달음은 회사, 난 모임이 있었다.

 연휴 첫날부터 중년 아줌마 4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말대로

 여자들끼리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였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 

임상미술사라는 공통점에서 공유할 게 많았다. 

 사는 곳도 제각각이고 시간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오늘은 장소와 시간도 만장일치였다.

다들 50대, 60대이여서 자녀가 결혼을 한 분도

계시고 내가 제일 어려서인지 날 

항상 젊은 세대라고 부른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모두 맥주로 건배를 하고

모두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허기진 배를 채워갔다.


뒤늦게 임상미술을 배워 새로운 길을 열어보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서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하루나 상.

결혼한 딸이 손주를 낳았는데 자기에게

아이를 맡길까봐 노심초사라는 에비스 상.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매일 병원 쫒아 다니느라

 삶이 하나도 재미가 없다는 나카노 상.

나도 아파서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는데

 호르몬 이상, 갱년기라는 말만 들어서

 답답하자고 하자 나카노 상이 모든 병은

스트레스 오는 거라면서 자긴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황혼이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툭 털어놓아서 다들 잠시 젓가락을 멈추고

나카노 상을 응시했다.

[ 왜 갑자기? 뭔 일 있었어요? ]

[ 예전부터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

더 깊이 물어봐도 될지 몰라 서로가 그냥 

눈만 마주치다가 거기서 말이 잠시 끊어지고

 식사를 다시 하는 분위기로 들어갔다.

[ 케이 상은 한국에 언제 가? ]

[ 아마 가을쯤에나 갈 것 같아요, 1년에 두번씩 

부모님께 얼굴 보여주기로 약속했거든요 ]

[ 올 해 결혼 몇 년째지? ]

[ 저는..이제 8년째 입니다,,]

[ 아,,그렇지,,늦게 결혼했지...]

세 명이 동시에 입을 맞춘 것처럼 같은 말을 했다.

자기네들은 30년가까이 살아서인지 남편과 

약속을 언제 했는지, 약속을 해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데 깨달음이 좋은 남편이라고

갑자기 깨달음 칭찬을 하고 있는데

나카노 상이 또  자신의 남편얘기를 꺼냈다.


 자기 허물은 보지 않고 남의 허물만 보고

 그것을 뜯어 고치려 하고 뭘 해도 남의 탓하기

일수이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열등의식과 자존심이 없어서 자신의 

잘못은 숨기고 상대의 문제만을 

 크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내가 좋은 아내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반성하고 그러는데 남편은 전혀 그게 아니라고

나카노 상은 작정한 듯 속내를 들어냈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그냥 눈치를 살폈고

나머지 2명이 아주 냉정하고 냉철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 부부간 갈등의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는 

생각을 좀 아닌 것 같애,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찾는 것도 좀 그래,

원인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돼 ]

 [ 맞아, 인생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해,

그 순간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삶이 좋은 방향으로 열려. 불평하고 

원망하는 순간 본인은 바로 희생자로 살게 되고 

삶이 점점 더 어두워지니까 자기를 돌아보고

 용기 있게 행동하고 책임지면 되는 거야 ]

나카노 상에게 하는 얘기인지, 

그 남편분에게 하는 얘기인지

약간 헷갈렸지만 30년 가까이 부부생활을 

한 선배님들의 얘기를 난 가만히 경청했다. 

전직 문화센터 강사였던 하루나 상이 말하는

 이혼에 관한 조언은 조리있고 아주 명쾌했다.

 요약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였다.


이혼은 계획적이어야한다. 이혼 후 생활을

감당 못한다면 성공적인 이혼이 아니다.

이혼 결심이 섰다면 이혼 후 어떻게 살아갈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밀하게 정리를 하고 이혼 요구를 하는 게 낫다.

하지만, 이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나에게 나쁜 배우자였지만

자식들에게 좋은 아빠였으면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핵심은 이혼 과정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혼 과정에서 배우자와 감정싸움이나 자존심 

싸움같은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 마음을 먹었다면

 모든 걸 대폭 양보하는 마음으로 이혼에 

임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남편이 제시한 위자료가

자신이 목표한 금액과 별로 차이가 없거나, 

남편이 돈에 질척거리지 않으면 

빨리 정리하고 바로 새로운 건강상태를 

 만드는 게 낫다.


특히 중년이혼, 황혼이혼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덜컥 이혼을 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스스로가

 위축되고 그러다보면 사회적으로 자꾸만 

고립되면서 자존감도 떨어진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립할 의지도 약해지고

경제적 어려움의 악순환이 이어지므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을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이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죽을 때까지 혼자 처리해낼 수 있는

노력과 의지 또한 강하게 키워 두어야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이혼을

 한다해도 남은 삶이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이혼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부터 다져라고 했다.


난 그녀들의 얘기를 들으며 이혼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계획적이며, 빈틈없이 철저히 

준비하라는 자세가 일본인답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쉴새없이 마치 강연을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왠지 멋지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말씀이 간단명료해서 알기 쉽다고 그랬더니

나보고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을 박듯이 이성을 보는 눈이

 바꾸지 않는 한 재혼을 해도 결코 행복하기

 힘들다는 것도 명심하라고 했다.


하루나 상의 얘기가 끝나자 나카노 상 얼굴이

아까와는 다르게 많이 어두워있었다.

홧김에, 답답함에  황혼이혼이란 말이 

나오진 않았겠지만 막상 현실화 했을 때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것 같았다.

그냥 오랜만에 식사를 하자는 만남이였는데

짧은 이혼학개론을 들은 것처럼 인생 선배들의

 연륜이 묻는 삶의 지혜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혼 강의?가 마무리되고 자연스럽게 

노후대책에 관한 얘기들을 나눴다. 

2시간을 훌쩍 넘기고 계산서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인생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였다고

  웃으면서 말을 했더니 오랜만에 강연한 것

 같아서 자기도 기분이 상쾌하다면서 

 결혼이란 게 30년을 살든, 50년을 살든  

사람이 부딪히는 일상의 반복이기 때문에

끝없이 타협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나카노 상이 정말 이혼을 하실 건지

알 순 없지만 결혼과 이혼, 모두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분명하다.

어떤 선택을 하던 결과는 본인의 몫이기에

 현명한 판단을 하실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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