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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코로나 속, 우리 부부의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by 일본의 케이 2020.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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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긴급사태선언 이후,

날마다 일요일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 너무도 화창하고 맑은 날씨에

뭔가를 해야할 것 같아 그동안 미뤄왔던

 수조 청소겸 열대어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아쿠아센터에 지금 있는 열대어들을 모두

드리고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로 했다.

새주인에게 가는 동안 열대어들이 힘들지 않도록

최단시간을 계산해 재빠르게 옮겨

아쿠아센터에 가져다 드렸다.

원래는 입양을 받지않는다고 하셨는데 

우리집에 온 열대어는 웬일인지 번식을 너무 잘해

 치어들이 자꾸 늘어 감당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특별히 받아주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여러 종류의 열대어를 키울수 있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열대어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와

 우린 청소를 바로 시작했다.

특히, 이번에는 이름모를 조개류들의 번식도

심해서 모래알도 전부 청소및 소독을 해야했고

조개번식을 막는 법을 배워왔다.

 깨달음이 욕실에서 열심히 씻고 또 씻기를

반복했고 나는 새로 사온 수초를 정리했다.


그렇게 말끔히 씻긴 모래알들을 배란다로 가지고나간

 깨달음은 비닐시트를 깔고 그곳에 얇게 펴 가며

햇살에 말리는 작업을 해주었다.

[ 깨달음, 오늘 중에 마를까? ]

[ 음,,날씨가 좋으니까 마르겠지 ]

날씨가 좋으니 나도 무언가 말리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김치 냉장고에 넣어둔

매운고추를 꺼냈다.


어릴적 외할머니집에 가면꼭 내주셨던

 말린고추튀김이나 무침이 참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먼저 매운고추를 반으로 잘라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섞어 버무렸다.

거실로 들어온 깨달음이 의아한 눈초리로

가까이와서는 물었다.

[  이거 뭐야? 고추로 뭐 하는 거야? ]

[ 이걸 쪄서 말린다음에 반찬을 하려고 ]

[ 이런 반찬이 있었어? ]

[ 응, 당신도 먹어본적 있어, 지난번

동대문 청국장집에서 튀김 먹었잖아 ]

무슨 맛이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길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도 잘 모르겠다며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또 묻는다.

[ 빨리 먹고 싶으면 당신이 이것 좀 해줘 ]


한번 찐 매운고추를 말리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펼치는 일을 도와주던 깨달음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줄 몰랐다며 갑자기 여기가

한국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 깨달음, 힘들면 그냥 내가 할게 ]

[ 아니,,힘들지는 않는데,,,정말 한국반찬은

시간, 노력,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애 ]

[ 그렇지.김치 담그는 것도 재료 준비부터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잖아.]

[ 맞아,,그래서 맛있는 건가,,,]

단순노동을 하는 게 힘들다면서도

일단 나란히 펼쳐 어느정도 말린 고추를 

바구니에 옮겨 2시간에 한번씩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뒤집어 주는 깨달음, 

그리고 주저앉아 모래알 속에

 불순물들을 차분히 걸러내고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노부부들이 시골에서

이런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잡채와 김밥을 준비해 먹으며 

와인을 한잔 하겠다고 했다.

[ 깨달음, 아까 당신이 모래알에 앉아 있을 때

시골 할아버지가 씨앗고르기 하는 것 같이 보였어 ]

[ 그래? 난 씨앗고르기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 알아, 근데 그렇게 고즈넉하게 보였다고나할까,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였어 ]

[ 나도 왠지 여기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뭔가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어]

고추를 하나씩 말리기 위해 펼치면서

갑자기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우리가 매일 이런 걸 하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깨달음, 나 농사 같은 거 못해 ]

[ 나도 못해, 안 해봐서..그냥 우리 

놀기로 했잖아 .근데 시간이 많으면 조금씩 

재미삼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애]

[ 응, 가끔씩하면 재미겠지 ]

김밥에 잡채를 둘둘 말아 먹으면서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맛이 좋다며

다음주면 한달이 되어가는 긴급비상사태가

이젠 몸에 배여서 출근하지 않고 하루 24시간

어떻게 보낼까 답답했었는데 

적응이 된 것 같다고 했다. 


[ 근데,,깨달음,,한달정도 더 긴급사태가 

유지 될 것같잖아,,그럼 정말 

또 한달을 어떻게 보내지? ]

[ 그냥 자신에게 쉬는 시간이 주어진 거라 생각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야,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이 하루하루가 지옥같을 거야 ]

[ 맞아,,]

깨달음이 화제를 바꿔 내일은 에어후라이기나

건조기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다.

[ 왜, 갑자기 사고 싶어? ]

아까 고추말리면서 여러가지 나물들을

말리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이번기회에 한국요리를 좀 배우고

싶으니까 자기에게 쉬운 것부터 

하나씩 조리법을 알려달란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고 재밌는 일을 하며 

휴식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깨달음.

전혀 계획에 없었던 강제휴식의 시간들이

매일 찾아오고 있다. 앞으로 한달은 더 이런

시간들을 보내야 되는데 다른 부부들은

 이 갑작스런 휴식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을까...

어둑어둑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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