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맛집투어

한국의 촛불집회를 직접 본 일본인의 마음

by 일본의 케이 2016. 11. 10.
728x90
728x170

호텔에 캐리어를 던져놓고 세종문화회관까지

 단숨에 달려 도착한 시각이 7시 30분이였다.

 밀려오는 허기를 달래야하는데

마땅히 먹거리를 찾지 못한 채

서서 커피와 도넛으로 저녁을 대신하는데

깨달음은 뒤쪽 아줌마가 먹고 있는

김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탭의 안내에 따라 우리 좌석에 앉자마자 

 문화시설의 첨단화에 놀랐다며 

연신 감탄을 하면서 

여기저기 꼼꼼하게 사진을 찍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맨발로 등장한 이 은미씨의 

첫곡은 녹턴이였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박수를 치는 깨달음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귀엽다면서

점점 더 좋아진다고 

입이 귀까지 걸린 채로 기쁨을 주체못했다.

박수와 함성으로 휴식없는 2시간 15분의 

열성적인 라이브가 끝나고

앞 줄에 앉아 있던 우리들 곁으로 

마지막 곡인 [애인 있어요]를 부르며

다가오는 이 은미씨를 그저 마냥

천진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깨달음.

[ 손 내밀면 악수 해 줬을 건데....]

[ 하지마..]

728x90

깨달음은 목이 쉬도록 앵콜, 앵콜을 외치며

마지막 곡을 기다렸다.

10시 25분, 공연이 끝나고 로비로 나와

사인회 판넬에 사진을 한 장 찍고 

콘서트장을 나왔다.

우리가 급하게 빠져나온데는 이유가 있었다.

 

실은 깨달음 대학선배가 마침 시간이 맞아

우리와 같이 서울에 오게 되었고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내 블로그에도 여러번 등장했던 선배로 한국의

건축문화부터 음식,전통문화까지모두 깨달음에게

소개해주신 분이다.한글을 쓰고, 읽고, 구사할 줄도 알고 있어

깨달음보다는 훨씬 더 한국을 잘 알고 계신다.

그렇게 시작한 늦은 저녁겸 술자리가

빈대떡 집에서 이루워졌다.

일단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6년만에 온 서울의 변화된 모습들을 얘기했었다.

[ 오늘, 콘서트에서 이 은미씨가 울었어..

언젠가부터 한국이 모든 걸 

돈, 돈, 돈으로 평가하고

돈에 지배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시국이 이런데 콘서트 와 줘서 고맙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노래뿐이라고 울었어..]

깨달음이 이 말을 꺼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상황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광화문이다보니 

바로 앞에서 데모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오기 전부터 [최 순실]사건을 

 알고 있어서인지 둘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번 사건들의 전말을 분석하고 해석했다.


막걸리가 3병을 비워갈 무렵 선배가 한숨을 크게 

쉬더니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 한국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 세뇌 당한 거나 마찬가지지..]

[ 삼성이 개입 됐다고 하니까 

문제가 아주 심각하던데... ]

[ 젊은이들의 실망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젊은 애들은 얼마나 슬프겠어, 

자기 나라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희망이 안 보인다고

 생각할 거야..]

반응형

[ 절망감이 제일 클 거야..]

 최 순실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이 애리한 눈빛으로

우리 테이블을 노려봤다.

 [ 몇 년전에 일본어 번역판

 아프니까 청춘이란 책을 내가 읽었거든, 

서울대 교수가 쓴 거....

근데, 지금 이 상황이 아픔을 넘어

앞이 보이지 않은 막막함이 

고통으로 느껴질 거야..

그래서 대학생들이 저렇게 모여서

데모를 하고 그러겠지..]

[ 젊은이들이 가장 아플 거야,,]

 

 

둘이서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다가

깨달음이 한국말로

[ 한국이 아파요..많이 많이]라고 했고 선배는

아픔을 이겨내야하는데 제발 IMF처럼 잘 견뎠으면 한다고 했다.

[ 맞아,,나라를 위해 금을 모우는 국민은 대한민국밖에 없지..

그리고 남자들은군대에도 가잖아, 나라를 위해...]

[ 이겨낼 거라 믿어,,한국사람들 곤조(근성)가

보통이 아니잖아,,절대로 다시 일어날 거야 ]

[ 맞아, 한강의 기적이 그냥 일어나게 아니지 ]

[ 6년전 모습하고도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랬어

 참 대단해...한국사람들..]

얘기가 끝이 나질 않았지만 

가게가 문을 닫아야해서

우리는 2차로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참이슬을 주문해서 마시고 

다들 술이 취해서 해롱해롱한데도

치킨을 먹어가며 또 같은 얘기들을 반복했다.

300x250

소주 2병을 비우고 더 마시려했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 깨달음, 저 차들 달리는 것 좀 봐, 고속도로처럼 

스피드를 내고 있어, 도쿄는 도로가 

좁아 달릴 수가 없잖아.

멋지다, 멋져..위험하긴 한데...]

[ 선배, 나는 이렇게 날이 선 한국날씨가 

참 맘에 들어... ] 

[ 날씨도 꼭 한국사람과 닮았지, 

처음엔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묻어있는 이 겨울바람..

일본 바람하고 틀리지? ]

[ 나도 그래서 한국의 겨울이 좋아 ]

[ 뺨 맞은 것처럼 정신이 바짝 차려지지?]

 [ 그게 매력이잖아,,하하하 ]

 

광화문 한 복판에서 술취한 아저씨 둘은

역시 서울이 좋네, 일본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면서 술이 안 취했으면

자기네도 함께 데모에 참가를 했어야한다며

둘이 서로 입을 맞춘 것처럼 한 목소리로

[ 한국 화이팅~~][ 한국 화이팅~~]이라며

두 손을 올리고 외쳤다.

 

 

다음날 아침 우린 광주로 떠났고 그날 저녁,

호텔앞에서 데모를 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저녁은 호텔에서 먹는다는 내용과 함께

호텔 방에서 찍은 영상을 보내왔다.

깨달음이 걱정이 됐는지 전화를 했더니

데모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며

 지금은 힘들지만 꼭 다시 활기 넘기는 

서울이 될 거니까 그 때 다시 서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전화를 끊은 깨달음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절망이 이런 것일까...

누군가는 내 나라를 잃은 슬픔보다 

더하다고 털어놓았다.

너무도 절박한 한국을 보았다.

너무도 처절한 한국을 보았다.

내 눈에도, 일본인 눈에도지금의 한국이 시리도록

아프게만 보였다.선배의

[절대로 다시 일어날 거다]라는 

그 한마디에 자꾸만 기대고 싶어지는 날이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