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신랑(깨달음)

남편이 반해버린 바로 이 맛

일본의 케이 2019. 4.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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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맨션이 대대적인 외장공사를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외벽 정비및 보수를 겸한다고 했다.

 물론 작년부터 거주자들에게 몇 차례의 

설문조사가 있었고 깨달음은 건축가 입장에서

 봤을 때 몇 년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자신의 의견을 정중하게 제시하긴 했지만

관철되지 않았고 다수의 의견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베란다에 물건들을 놔 둘 수 없어

잠시 철거를 하거나 별도로 지정한 장소에 

이동을 시켜달라는 안내를 받고 여러가지로 

미리미리 정리해야할 게 생겼다.  


그래서 깨달음과 베란다에 놔 둔 물건들을

거실의 다용도실에 넣어두는 작업을 하다가

지난 2월,엄마가 주신 상추와 깻잎씨가

떠올라 깨달음에게 얘길 했더니

얼른 가져오란다.

[ 왜 지금 말해? 좀 더 일찍 심었어야 하지

않아? 배양토는 샀어?  ]

[ 응, 지난주에 샀다놨는데 내가 깜빡했어]

[ 진작 심었으면 벌써 먹을 수 있었을텐데..]

깻잎을 너무도 사랑하는 깨달음이 빨리

 심을 생각에 손놀림이 두배로 빨리졌다.  

[ 깨달음, 너무 많이 넣는 거 아니야? ]

[ 입빠이 넣어서 빨리 자라게 할 거야 ]

2종류의 배양토를 잘 섞어서 고랑을 만들다가

불쑥 내게 묻는다.

[ 언제쯤 싹이 나지? ]

[ 몰라,,아마 3주쯤? ]

[ 그런가,,한달쯤 걸리나? 왜 우린 이쪽으론

  상식이 없을까..몰라도 너무 몰라. ]


그렇게 우린 바보 같은 대화를 나누다가

깨달음이 곱게 파놓은 고랑에 씨를 뿌렸다.

몇 톨씩 넣는 건지, 아니면 한꼬집을 집어

 넣은건지 몰라서 또 둘이서 답도 없는 얘길 

하다가 일단 많이 심고 보다는 깨달음 말에 

따라 한꼬집씩 집어 넣었다.

[ 근데 너무 많으면 잘 자라지 못하지 않아? ]

[ 솎아내면 되는 거 아냐? ]

[ 아,,그러면 되네..]

깻잎씨는 깨달음이 정성껏 고랑에 손가락으로

홈을 파서 몇 톨씩 집어 넣으며

전원생활이 하고 싶어도 우리 부부는 절대로 

관리도 못하고 이런 소일거리 텃밭 가꾸는 것

조차도 뭐가 뭔지 몰라 무리라면서 농산물을

 키워주신 분들과 마트에 감사해야한다고

 둘이 격하게 공감을 하며 숙제 같았던 

상추씨 뿌리기를 마쳤다.  


그리고 저녁으로는 지난번 한국에서 사온

만두와 비빔면을 준비했다.

[ 이건 무슨 메뉴야? ]

[ 만두랑 비빔면이잖아 ]

[ 근데 왜 한 접시에 담았어? ]

[ 비벼 먹으라고.]

[ 만두랑 어떻게 비벼 먹어? ]

여름이면 몇 번 해 줬던 비빔면은 늘 따로

먹었고, 쫄면은 각종 야채와 비벼 먹었던 기억을

 하고 있는 깨달음은 한 접시에 같이 올린

 만두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였다.


그래서 잠깐 설명을 해주고 쫄면처럼 만두도

비빔면에 감싸서 먹으면 맛있다고 했더니

만두와 함께 먹은 적이 없어서인지

의심스럽다며 그냥 따로 따로

 먹을 거라고 먼저 비빔면을 먹었다.

[ 오늘 비빔면은 더 맛있는데 뭐 넣었어? ]

[ 응, 묵은지 잘게 썰어서 넣었어, 근데

조금 있다 후회하지 말고 내 말대로 먹어 봐

그럼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릴테니까 ]

 

못 이기는척 만두을 반으로 잘라 면을 휘감아서

 한 입 먹어보더니 작은 눈을 번쩍 뜨고는

엄지척을 한다.

[ 맛있지? ]

[ 안죤 마시쏘(완전 맛있어) 내가 왜 몰랐을까.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데..진짜 진짜 맛있어]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입이 터지게

가득 넣어서 빵빵해진 입을 겨우 다물고

처진 눈을 감으면서 행복해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나오는 엉덩이

 꿀렁꿀렁도 한 번 하고 고개도 까닥거렸다.

[ 당신은 먹을 때가 좋아? ]

[ 응, 이렇게 새로운 맛을 발견하니까

얼마나 좋아, 이 맛에 반했어. 너무 행복해 ,

아, 그 프로 틀어 줘, 보면서 먹을래 ]

올 해 들어 깨달음은 생활의 달인보다

생생정보를 더 즐겨보고 있다.

특히, 택시드라이브가 소개하는 맛집이

나오면 잊지 않고 메모를 하곤 한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가격도 저렴하고, 푸짐하면서 메뉴들도 

다양해서 좋고 왠지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느꼈던 정같은 게 넘치는 프로라는 깨달음.

메인요리 하나 시키면 보쌈도 주고, 

냉채도 주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멋진 사장님들 보는 것도 재밌고

어렵게 고생해가면서도 음식값을 올리지

않는 착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도 좋단다. 

한국 가면 꼭 먹을 거라고 자기 수첩에 

빼곡히 메모 해 둔 것들을 모두 먹기 위해서는 

아마 서울에서 한달 살기는 해야할 것이다.

접시를 깨끗히 비우고는 내게 부탁이 있다며

오늘 심어둔 깻잎이 자라면 다시 한번 깻잎이랑

상추를 듬뿍 넣어 비빔면을 만들어 달란다.

먹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깨달음은 먹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새로운 맛을 하나씩 알게 되면

내게 이것저것 까다로운 주문이 늘어가지만

그래도 잘 먹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