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사랑하는 게 아니다.
[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
[ 네.음식도 괜찮고, 또 얘기 나누기도 편해서..
술 한잔 하실래요? ]
[ 아니요,,저 술 잘 못마시는 것도 있고
역에 자전거를 두고 와서..]
[ 아,,그러세요..]
많이 어색해서 술을 한 잔 하면 더 나아질까
했던 내 생각이 짧았다.
서로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대화가
블로그다보니 네이버블로그와
티스토리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네이버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동시에
전혀 다른 테마로 운영하고 있었다.
[ 만나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 아니에요, 저도 언젠가 한 번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
블로그를 한지 벌써 10년이 지나가지만
만나는 이웃님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낯을 가리는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작용한 것은 무엇보다
이웃님들은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난 그분들에 대한 신상 및 정보가 거의 없다보니
만남으로까지 이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마음의 각오 같은 게 필요로 했다.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요라는 말을
남기지만 정작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 케이님, 나는 엄마가 내 목을 졸랐던 적이
있어요. 중학교 1학년 겨울에.. 죽어라고,,
초등학교 때는 반장을 해서 오면
혁대로 두들겨 맞았어요.
학교 갈 일 만든다고 해서,, 안 믿어지죠?
제가 메일로 보내드렸던 내용은 아주
작은 것들뿐이었지만 들으시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일들이 많은데.. 그걸 전부 글로
표현하는 게 답답한 것도 있었어요 ]
나는 정신과 다녔던 내 상황과 심리치료에
관한 경험들에 대해 얘길 나눴다.
대학원 때 교수님과의 갈등과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까지 ,, 그리고
미술치료 얘길 했더니 어릴 적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엄마는 쓸데없는 짓한다며 도화지를
찢고 못 그리게 했다는 말을 했다.
[ 케이님은 정말 용서하셨어요? 솔직히? ]
솔직히라고 확인하듯 묻는 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의심이 묻어 있었다.
[ 누가 그러더라고요,가족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족을 사랑하면 공황장애 생긴다고,,
그래서 나는 가족이 아닌 먼 친척이나
이웃집 사람처럼 생각하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감정들이 엷어졌다고나 할까,,
감정을 죽였다고나 할까..]
내가 말하는 동안,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 엄마가, 아빠가, 언니가, 누나가, 오빠가,
동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미움도 서운함도 분노의 감정도 두 배 세배로
커져서 걷잡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 편하고 싶어서 가족으로 부모로 형제로
연결된 끈들을 끊었다고 해야 할까..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
[ 그게 돼요? 끊어진다고 해서 끊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
[ 맞아요, 끊었다는 건 내 감정의 끈이에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관심을 끊었다고 해야 되나 ]
그는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이해를 도울만한 표현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흐트러진 머릿속의 생각들을 모았다.
샤부샤부가 먹기 좋게 끓어올라 그에게
한 그릇 떠주고 난 차가운 맥주를 한 병 주문했다.
[ 케이님, 나는 빙하기에 녹지 않고 있는
미라처럼 내 가슴 속 깊은 밑바닥에
어린 내가 있어요 밖은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무더운 여름이 와도
땅 속 깊은 곳은 여전히 슬픔 속에
녹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미라..]
빙하기 속 미라라는 그의 표현이
아프고도 시렸다.
그는 엄마에게 도망치듯 일본에 왔단다.
지금껏 10년이 넘도록 연락 없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었는데 지난달 친구한테서
엄마 소식을 유연히 듣고 나서부터는
다시 플래시백( flashback)되면서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올라서 잠을 못 잔단다.
마지막 맥주를 비우고 정리한 생각들을 전했다.
[ 00 씨.. 녹고 싶은데 녹지 못한 그 마음,,
근데..누가 녹여주길 바라면 아마 녹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스스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왜냐면 당신을 얼게 만든 당사자는
당신이 얼어 있는 걸 모르니까요..,.]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엄마에게 벗어나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엄마에게서 도망가지 못하고 미라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도 엄마에 대한 애정같은 애증이 남아있고
지금이라도 엄마가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도
서러움과 분노가 가시질 않고
깊어만 간단다.
그는 자신의 아픈 상황을
공감해 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단다.
[ 케이님은, 내 고통의 깊이를 알아줄 것 같아서]
[ 저도 빙하 속 어린아이가 있었으니까요
얼마나 추운지 잘 알죠..그런데 내가
어루만지면서 많이 녹였죠..
우리 만나길 잘했죠? ]
[ 네.. 정말 만나주셔서 고마워요 ]
그의 표정이 밝아지진 걸 보고 나니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해졌다.
우린 장소를 옮겨서도 상당히 많은 얘길 나눴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려도 되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는 상처는 부모로부터이다.
부모는 집과 같아서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가두고 속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서로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도망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나질 못한다.
독이 되는 부모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합리적인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서서히 내 감정들을 끊어내야 한다.
나 스스로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부모를 외면할 용기를
키워나가야 한다.
부모이기에 아프고, 자식이기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