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이케부쿠로(池袋)에서 열린 전국 물산전(物産展)
해년마다 갔던 터라 올 해도 초대장이
왔길래 갔는데 기분 탓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방문객이 줄어들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맛볼 수 있는 특산물은 물론
여기저기에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맛집 중에 맛집들이 모였는데도
방문자들은 출품자들보다 적었다.
이벤트 관계자와 도우미가 어색하게 서 있고
푸드코트에도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 이러다 이 행사도 곧 문을 닫겠는데...]
[ 응,, 맛있는 게 많이 있긴 한데..
뭐가 문제일까...]
[ 홍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 다른 이벤트에
비해 끌림이 없다는 거겠지 ]
우린 달달한 몽블랑을 사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아마다덴키(ヤマダ電機)로 옮겼다.
지난번에 가스레인지가 고장이 나서 바꿨는데
이번에는 화장실 비대기(ウォシュレット)가
말썽을 부렸다.
비대기에서 갑자기 물이 센다며
호들갑을 떨길래 나사가 풀린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닌 금이 가 있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변기까지 통째로, 센서가
달린 자동변기로 바꿀까 싶어
둘러봤는데 꽤나 비쌌다.
요즘 연말세일이 시작되어서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으러 빅크카메라( ビックカメラ)까지 갔지만
가격은 별 반 차이가 없었다.
[ 정말 통째로 바꿔? 그럼 공사해야 되는데? ]
깨달음이 나한테 이렇게 물었을 때는 그냥
번거롭게 하지 말고 비대만 바꾸자는
의도라는 걸 잘 알기에 알았다고 맘에
드는 걸 고르라고 하고 난 뒤에서 지켜봤다.
비대와 함께 다리미 판,
대형 빨래 건조대까지 같이 주문을 하고
우린 식사를 했다. 올해 들어
10년 이상 된 가전과 생활용품들이
다들 수명을 다했는지 고장이 나거나
부러지고 짜그라지기 시작했다.
[ 깨달음, 다리미도 그냥 새 거 살 걸 그랬다 ]
[ 아니야,, 아직 더 쓸 수 있어 ]
[ 그거,, 내가 유학생 때 쓰던 거야, 벌써
20년 넘은 거야 ]
[ 내가 끈을 테이프로 다시 붙여서 멀쩡해 ]
[ 하긴 다리미 본체는 별 문제없지..]
우리 부부는 절약파는 아니지만 물건을
소중하게 쓰는 편이긴 하다.
새것이나 유행에 따라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만 구매해서 사는데
세월의 힘이 무서운 건지 생활용품들의
유효기간이 하나씩 하나씩 끝나가고 있다.
강산도 변하는 시간들이니 당연한 거라
생각하자며 식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깨달음이 화장실에서
비대를 뜯어내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은 남녀가 바뀐 게 많다.
깨달음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말하는
남자들이 한다는 집안일? 이
상당히, 많이, 아주 많이 서툴다.
서랍장을 조립한다거나, 전구를 교체하는 거
새로 산 전자제품을 설치하는 것도
거의 내가 한다.
깨달음은 그런 일에는 아주 똥손이다.
서랍장에 못을 잘 못 박아서 구멍을
뚫어버리기도 하고, 나사를 앞 뒤 잘 못 끼워
먹통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위아래 선반을 거꾸로 매달아 떨어트리는
바람에 모둥이가 나가기도 하고,,
노즐을 너무 꽉 조여서 부러트리기도 하고,,
프러스 마이너스 선을 잘 못 연결한 채로
엉뚱한 스피커로 최근까지 듣고 있었고
가스스토브 연결선을 잘 못 잘라서
그대로 버렸던 적도 있었다.
아무튼 지금껏 13년 결혼생활동안 깨달음
손에 닿으면 멀쩡한 것도 고장이 나서
모든 걸 내가 하는 게 속이 편했다.
신혼 때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나 싶기도 하고 일본인이 일본어 설명서를
보고도 저렇게 헤맬 수가 있을까 이해가
되질 않아 그럴 걸로 말다툼이 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 원래 못하는 사람, 즉 똥 손]이다라고
생각을 해서인지 화가 나거나 다투는 일은 없다.
기계치인건 분명하고 보통 사람들은 물건이나
사물을 보면 소, 중, 대로 뭐가 크고, 뭐가 작은지
대충 아는데 깨달음은 눈대중이 전혀 맞질 않아
부품이나 뭔가 필요한 도구를 살 때도
두 번 이상 샀다가 교환하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오늘도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또 자기가 해 보겠다고 손을 댔다.
매장 아저씨가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정확이 2시간을 낑낑거리던 깨달음이
교환했다며 비대 물조절도
문제없다고 나보고 앉아 보란다.
고생했다며 앉아서 옆으로 엉덩이를
약간 움직여 봤더니 비대가 덜컹덜컹
삐걱삐걱 거렸다.
[ 이거 너무 움직이는데.. 고정시켜야
되는 거 아니야? 볼트 안 채운 거야? ]
[ 볼트? 없는 것 같던데..]
아마도 또 뭔가를 빠트린 것 같아서
얼른 설명서를 훑어 보고 볼트를 다시
확인해야 될 것 같다고 하니까
자기가 끝까지 하겠단다.
그렇게 또 20분이 지나고서 정말 완벽하게
끝냈다며 손을 씻고 거실로 와서는
볼트를 거꾸로 끼워서 아귀가 맞지 않아
덜컹거렸던 거란다.
[ 내가 말 안 했으면 몰랐던 거야? ]
[ 아니.. 원래 좀 그런가보다 했어.. 근데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다시 열어봤더니
거꾸로 끼어놔서 헐렁한 거였어 ]
[ 볼트,,앞 뒤가 전혀 달랐는데..]
[ 난,,같은 줄 알았지...]
수고했다고 다시 말하고 나서 앞으로
이렇게 교환, 교체가 필요한 작업은 당신이
힘드니까 그냥 기사님 불러서 해결하자고
했더니 자기도 이런 건 자기 체질에
안 맞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옛말에 여우 같은 사람하고는 살아도
곰 같은 사람과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이런 쪽에 약한 남자랑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답답함이 있다.
깨달음은 운전을 못한다. 남자가 운전을
못한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가끔은 센스 있고 빠릿빠릿한 남편으로
바꾸고 싶을 때가 있지만
부족한 모습으로 곰처럼 우직하게
그래도 최선을 다한 깨달음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너무 확연한
깨달음은 정말 곰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