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남편의 자존감을 살리는 물건

일본의 케이 2024. 11. 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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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고깃집으로 향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다시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지낸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축하할 겸 겸사겸사

가게에 들어서기 전에 작은 케이크를

몇 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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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문을 하고 간단히 기록용 사진만

찍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촛불을 켜는데

점장님이 생일이냐면서 

가게 안쪽에 조명을 모두 끄시고는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해 주시더니

축하박수까지 보내주셨다.

 

새 케이크는 점장님께 맛보시라고 전해드리고

우린 막걸리로 건배를 했다.

그리고 재빨리 고기를 구웠다.

이번에 한국에서 고기를 먹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닌데 먹지 못하고

와서인지 굶주린 사자들처럼

구워지는 데로 아무말없이

빠르게 각자의 입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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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이제 기념일 같은 거 그냥 생략하기로

하지 않았나,, 작년에도 이런 얘기했던 것 같은데 ]

[ 그러긴 하는데.. 그래도 그냥 하는 재미지..

그리고 매년 그날에 했던

약속들을 상기하는 것도 좋잖아,

그런 의미에서 하는 거지 ]

 생일이나 기념일이라고 해서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어느 때부터인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냥 필요한 게 있으면 각자 그때 그때

알아서 구입을 했고 상대가 사줬으면 

하는 게 생기면 선 구입 후 청구서를

내미는 아주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으로 살았다.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등등

포함시켜도 1년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으니 

그냥 몰아서 여행을 떠나자고 합의를 보고

실제로 온천을 가거나

크루즈를 떠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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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들이 그렇게 정작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야들야들하게 구워진 족발을 뜯던 

깨달음이 뭔가 떠올랐는지

올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갖고 싶은 게 있다며 챙겨달라고 했다.

[ 알았어, 뭐든지 괜찮아, 크리스마스 때가

아니고 지금 필요하다면 지금 사줄게 ,

뭐야? 갖고 싶은 게? ]

날  잠시 응시하더니만은 약간 망설이는

눈빛을 보였다.

[ 왜 그래?, 말해 봐, 웬만한 건 다 

들어줄 수 있어 ]

 

[ 자동번역기.. 100개국이 넘는 나라의 말을

바로 번역해 주는 기계야 ]

[ 아,,, 그게 필요해? ]

[ 응,, 나,,, 한국어 도저히 안 돼..

그래서 포기했어, 아니 포기라기보다는

그 기계의 힘을 빌리는 거지..]

[.............................. ]

나이 탓으로 돌리기는 뭐 하지만 원래부터

언어영역이 아주 약한 깨달음은 한국어를

매일 죽어라 외우고 공부를 해도

도무지 늘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그냥 현시대에 걸맞은 아이템을 찾게

되었고 이 기계가 있으면

삶이 훨씬 윤택해지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렸단다.

[ 대략 얼마야? ]

[ 내가 갖고 싶은 건 5만 엔 안 넘어,,]

[ 그래.. 알았어 ]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올봄, 깨달음은 나와 4개월간 한국어

특강을 강도 높게 했었다. 

한글의 구조 및 문장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마쳤지만 깨달음에게 새로운 언어습득은

상당히 어려운 영역이었다.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도 이렇게 학습이

늦은 학생은 처음이었고

정작 본인인 깨달음도 자신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던 4개월이었다.

그만하자는 말은 누가 먼저 꺼내지 않았지만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그렇게

특강은 끝이 났다.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취급을 당한 이유

난 재래시장을 참 좋아한다. 20대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사는 게 무언지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자연스레 재래시장으로 발길이 옮겨갔다. 그곳에 가면 농, 수산물을 펼쳐놓고 목청 높여가며 땀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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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새벽에도 하고, 회사에서도

틈나면 단어 외우고 나름 했는데..

도무지 안 외워지고,, 이번에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빨리 말하면 

전혀 안 들렸어..,,,]

자괴감이 들 정도로 자신이 싫었다는

깨달음, 다 배운 단어, 외운 단어인데도

하나도 못 알아듣고 내게 100%

의존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단다.

 

개념있는 일본인 친구의 역사의식

내 노트북에 놓여진 봉투에 요코야마 상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부재중인 나에게 뭔가를 전할 때면 깨달음은 이렇게 내 노트북 위에 가만히 올려놓는다. 열어보니 지난달, 내 책을 샀던 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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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내린 결단은 안 되는

제2외국어를 붙들고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더 이상 버리고 그냥 

최신 번역기기로 편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살고 싶다는 깨달음.

마지막으로 주문한 갈비국밥을 들이켜면서

자기 속마음을 털어놔서 시원하다고 했다.

[ 잘했어. 안 되는 건 억지로 못하니까 ]

 

일본의 배려문화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하러 주방에 갔는데 싱크대 옆에 흰 종이가 놓여있었다. 아침을 수제비로 부탁한다는 메모였다. 한번 훑어보고는 물컵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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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극복하기 힘든 영역은

어찌 보면 기계에 의존하는 게

깨달음에겐 훨씬 능률적이고 현명한

길잡이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주에 가자, 매장에 ]

[ 그래? 고마워!! ]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니 신문물을

통해서라도 자존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면 바로 사 줘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