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상형은 이 여배우였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秋分)
이곳 일본은 추분의 날이 공휴일이다.
이날은 지난 추석(8월15일)에 고향에
못 갔던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 성묘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부분은 실버위크를 즐기기위해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떠난다.
우린 태풍이 도쿄 쪽을 지나고 있어서
얌전히 집에 있기로 했다가 날씨가 좋자
치가사키(茅ヶ崎)에 있는 호텔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지금 리조트 호텔 디자인중인 깨달음은
의뢰인이 한 번씩 언급했던 호텔들을 빠짐없이
탐방하고 있는데 이곳은 인스타에
자주 올라와 젊은 층에 인기가 있다고 했다.
타깃이 젊은 층은 아니지만 핫한 느낌에
디자인이 필요치 않냐는 한마디가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고 한다.
난 근처 커피숍에서 달달한 팬케익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근처 다른 호텔도
몇 군데 둘러볼 생각이라며 먼저
에노시마(江ノ島)로
이동해도 좋다고 했다.
에노시마는 유학생 시절부터
참 좋아했던 곳이어서 자주 왔었는데
요 몇 년 사이엔 거의 오질 않았다.
역 주변을 둘러보니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묻어났다. 그 장소만이 담고 있는 냄새와
분위기가 여전히 그대로여서 좋았다.
깨달음에게서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다는
메시지가 왔길래 난 수족관에서
기다리겠다고 답을 했다.
물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참 좋아하는 난
갖가지 모양으로 생긴 녀석들을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고 지루하지 않다.
요상한 움직임을 하고서는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난 매번 같은 후회를 한다.
공부를 잘해서 수의사가 됐었다면
애네들의 모든 걸 구석구석 파헤쳐
알았을텐데라고...
한 바퀴 돌아보고 돌고래쇼 시간을
깨달음에게 알렸는데 아무 연락이 없다.
난 앞줄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머리에 둘렀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박수를 치고
돌고래는 관중들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냉동 정어리를 받아먹으러 조련사 앞으로
다가가 입을 벌렸다.
동물학대에 해당되는 동물들의 쇼가
언제쯤 없어지는지 검색을 해봤는데
예정일뿐 정확한 일정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성황리에 돌고래쇼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스튜디오에 멍하니 앉아
빈 수조를 바라보고 있는데 깨달음에게서
전화가 왔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수족관 어땠어? ]
[ 좋았지 ]
내가 찍어 놓은 동영상을 보여줬더니
우영우가 생각난다며
동물학대니 없어져야 한단다.
깨달음은 원래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지난달에 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너무 좋아서
주인공 박은빈 사진을 자기 핸드폰에
고이 간직해서 생각 날 때마다
꺼내보고 있다.
화제를 바꿔야 될 것 같아서 호텔 탐방은
어땠냐고 물었더니 사진 찍어서
회사로 다 보냈다며 다시 우영우 얘길 했다.
얼굴도 예쁘고 연기를 너무 잘한다며
침을 튀겨가면서 고래 얘기를 하길래
알았으니 진정하라고 하니까
워- 워-라고 해야 한단다.
[ 당신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너무
자주 바뀌는 거 아니야? 이 은미
좋아할 때도 너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콘서트까지 가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 들어보라고 하더니
송가인이 나타나니까 그때는 또 진도 가야
된다며 송가인 만나게 해달라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박은빈이 좋아서
사진까지 넣고 다니고,,,]
[ 이은미하고 송가인은 노래를 잘해서 좋아하고
박은빈은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여자 배우
좋아하는 건 박은빈이 처음이야 ]
[ 도깨비 여주인공 김 고은도
좋아하지 않았어? ]
[ 그 배우는 그냥 귀엽지, 박은빈은
내 이상형이야 ]
[ 아,, 그래..]
지금껏 드라마에서 본 여주인공들,
최지우, 고연정, 손혜진, 김희선, 송혜교,
김태리, 아이유, 한지민, 한효주도 예쁘지만
박 은빈은 완전히 자기 이상형라며
내가 조인성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란다.
[.......................... ]
그러고 보니 깨달음이 이상형이라고 말한
여배우는 지금껏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예쁜 사진 찾아 주겠다고 하니까
자기가 한글로 검색을 할 수 있으니
자기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를 수 있단다.
언제까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형이라니
팬카페라도 가입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깨달음은 혼자서 은밀하게? 조용히
좋아하고 싶단다.
뭘 은밀하게? 좋아한다는 건지..
깨달음 눈빛이 약간 응큼했지만
자신의 이상형이라니 실컷 좋아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다. 또 새로운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바뀔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