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살면서 생긴 습관들
영화 [ 理想郷]를 봤다. 한국에서는
[더 비스츠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합잡영화인 이 영화는
네덜란드 커플이 스페인 시골 산토알라에
정착하면서 일어났던 일을 영화한 것으로
2016년 상영된 다큐 [Santoalla]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2022년 스페인 고야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도 3관왕을 차지한
수작이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식인인 프랑스 부부는 평화롭고 소박한 삶을
위해 스페인 북서부 마을로 이사를 오고 유기농
작물을 팔며 여가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마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문제로 주민과
반대의견을 내며 이 마을의 토착민 형제와
갈등이 시작된다.
시골의 텃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라고 하기엔
국적, 언어, 문화적 사고의 다름에서 오는
대립과 혐오, 적대감이 리얼하게 묘사되었다.
인물들 간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고조 돼서
섬뜩하고 몰입감이 최고였다.
제목에서 말해 주듯이 인간의 본성,
타락이 얼마나 짐승스러운지
영화가 끝나고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깨달음은 영화 보면서 먹으려 했던 팝콘과
요쿠르트를 손에 들고 나를 쳐다보면서
음향효과와 모든 신들이 너무 긴박하고
초조해서 못 먹었단다.
[ 영화가 시사하는 주제가 너무 무거워..]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린 근처 한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배가 고파 집중해서
먹으며 영화 얘길 했다.
첫 장면부터 긴장감이 돌아서 보는 내내
무섭고 섬뜩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했다는 깨달음.
각자 인물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적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고집스러움이
아둔하게까지 보였단다.
나 역시도 화가 나면서 어쩌면 저렇게도
외지 사람을 배척하고 싶어 하는지
타협하려고도 이해하려고도 입장을
바꿔보려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본능 속에 내재된 철저한
이기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다고
했더니 심오하단다.
[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래가 이기적이잖아,
자신의 영역에 누군가를 들여놓고 싶어 하지
않는 동물적인 본능이 있지.. 나라, 민족,
인종까지 가지 않아도 옆 집 사람과도
트러블로 살인하고 그러잖아.]
[ 왜 그렇게들 싫어할까? 그냥 나는 나고
남은 남이다 생각하고 살면 편할 텐데..]
[ 그게 잘 안 되니까 인간이지..]
[ 인종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게 그렇게도 받아들이기 힘든가..]
내가 체념한 표정을 짓자 깨달음이 물었다.
이국 땅인 일본에서 살면서
이방인이라는 걸 느껴본 적 많았냐고..
[ 느끼기는 하지, 내 나라가 아니니까.
그래도 나는 유학생활 할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일본인이 나를 배척한다는 건 못
느꼈는데 그냥, 오늘 영화를 보면서
자기 나라를 떠나 제3국에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고 애를 써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락호락 받아주지 그들만의 울타리가
너무 견고하고 높다는 걸 느꼈어 ]
[ 당신도 많이 힘들었어? ]
[ 나는 지도교수랑 갈등 빼놓고는 그닥
힘든 건 없었어. 그리고 그 갈등은
이 영화 내용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었지 ]
3년간 논문 쓰는 것보다 10배, 20배는 더
고통스러워서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았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잘 이겨냈었다.
[ 내가 봤을 때 당신은 일본에 완전 적응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
[ 나는 잘 살고 있지. 여기 사람들이 하는
사회적, 문화적 습관들을 그대로
사회생활에 적용하며 사니까.. ]
[ 당신도 보이지 않게 노력했겠지? ]
[ 노력까진 아닌데 열심히 살았지..
여기서 살아남으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 살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뭘 해도 자동적으로
아리가토(ありがとう)를 표현하는 것.
쑥스러워서 하지 못하고, 굳이 고맙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아리가토라고 말을 하게 됐다.
이곳에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본이 안 된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서도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또 바뀐 건 대화를 할 때
직설법 아닌, 은유법을 사용하거나
부드러운 단어들을 선택해서
입에 뱉는 습관이다.
돌려 말을 하는 게 아닌, 조금은 더
예쁘고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어에도 예쁜 말이 있듯이 일본어도
되도록이면 부드럽고 고운 말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남들보다 먼저 솔선해서
움직이고 습관이다. 이것은 내 성격상
한국에서도 그러했지만 행동하는 데 있어
요령을 피우고 늑장 부리지 않았다.
나 혼자쯤이야라고 적당히 넘어가는
안일한 생각과 행동은 그대로 상대에게
비춰지고 이곳에서는 절대로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도 몸에 배이게 되었다.
깨달음은 자기가 만약에 한국에 살게 됐을 때
소외감이나 무시를 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충격받을 것 같단다. 모든 사람들이
일본인을 좋아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는 적대시한 사람을 못 만나서
몰랐는데 정말 만나게 되면 많이
슬플 것 같다며 나한테 대단하단다.
[ 역시,, 당신은 똑똑해, 그래서 여기
일본에서도 잘 살잖아,]
[ 당신도 무시당하기 싫으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그러면 무시 못해 ]
[ 알았어. 열심히 할게 ]
올해가 지가면 내가 이곳 일본에 온 지
24년째가 된다.
얼마나 더 오래 살 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사는 동안만큼은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