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교통사고가 아니다.
[ 왜 오늘 아침에 배웅하면서
여자 조심해!라고 그랬어? ]
[ 그냥,,]
[ 원래 그런 말 안 하잖아 ]
[ 그냥, 아무 뜻 없이 나온 말이야 ]
[ 그런 말하는 사람 아닌데 갑자기
그런 소릴 하니까 너무 이상했어 ]
[ 알았어,,이제 안 할게 ]
아침에 출근하는 깨달음에게 잘 다녀오고
차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오늘은
여자 조심해라는 한 문장을 더했다.
차 조심하라는 건, 깨달음이 어릴 적 크게
교통사고가 난 후 트라우마 같은 게 있어
신혼 때부터 출근길에 꼭 빼놓지 않고 했던
말인데 오늘 덧붙힌 말은 지금껏 그런 뉘앙스에
말을 해 보지 않아서 듣는 깨달음도
좀 황당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지난주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마치고
원장님과 차를 마시며 나눈 얘기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서였을 게다.
원장님은 요즘 너나 할 거 없이 바람을 피우고
이혼하고 삼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며
자가네 단골손님들 반 수가 넘게
배우자 외에 애인을 두고 있다면서 3년 전
코로나 때 자신이 겪었던 남편의
외도사건?을 얘기해 주셨다.
[ 깨달음, 혹시 당신은 바람피우고 싶으면
일단 나한테 말해. 몰래 그러지 말고 ]
[ 웃긴다. 그건 바람이 아니지 ]
[ 그니까,, 혹시나 뭐,, 마음이 동요되는
상대가 나타났거나 뭔가 이탈하고프면
편하게 말해 줘 ]
[ 말하면 오케이 해줄 거야? ]
[ 응 ]
원장님 주변에서 본 한일커플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아줌마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즐기고 사는지 리얼한 다큐 실화를
들려줬다며 나이가 50이 넘어 60이 넘어도
이성에게 격한 호기심을 갖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당신에게 [ 여자 조심해 ]라고
했던 거였음을 밝혔다.
자기는 눈이 높아서 웬만한 여자는
눈에 안 들어오니까 걱정 말란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한 5년 동안은
상당히 다툼이 많았다.
서로의 성격차가 심해서 예민한 나와
정 반대인 무던한 깨달음은 날이 가면 갈수록
불만과 짜증이 쌓여만 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
머리 모양이 이상했다. 어디에서 누웠는지
뒤통수가 납작하게 눌려 있었고 얼굴도
한숨 자고 온 듯한 얼굴빚을 했었다.
출근해서 아무리 피곤해서 사우나를 가서
쉬거나 그런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인데
뒤통수가 납작해질 때까지 뭘 했나 싶었지만
난 침묵을 지쳤다.
여자만이 느끼는 직감이라는 게 온몸에
전율처럼 느껴졌지만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넘어갔다.
행여나 캐물어서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쾌락의 시간?을 맛본 이후이니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이 들어서였다.
반대로 아니라고,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
나만 또 예민해서 생사람 잡는 꼴이 되니
그냥 덮어두자고 지금껏도 묻지 않았다.
야키토리를 꼬치에서 빼 내 접시에
올려주며 깨달음이
원래 바람은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 그건 말이 안 돼, 사고가 잦은 곳을
찾아가니까 교통사고가 나는 거야.
사고다발지역에 왜 가냐고?
아니, 그 말도 맞네.
교통사고가 나면 몸 다치고
마음 다치고, 돈 들고, 주변사람 다치고,
더 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바람피우면 교통사고 났을 때랑 상황이
비슷하니까 그 말이 맞기도 하네 ]
지난주 미용실에서 어깨까지 길었던 머리를
아주 짧은 단발로 잘랐는데 깨달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보통 남자들이 원래 그렇고 특히 깨달음은
눈썰미가 없는 대표적인 남자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에는 물어봤다.
변한 거 없냐고?
[ 뭐? 뭐가 변했지? 모르겠는데.. ]
[ 아니야,, 그냥 물어봤어 ]
[ 목걸이 바꿨어? ]
[ 음,,, ]
기대하지 않아서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 깨달음,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정말
당신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면 먼저 나한테
말해. 솔직하게,, 그러면 그냥 내가 너그럽게
봐줄게.. 그 대신 나에 대한 예의로
콘돔은 꼭 가지고 다녀 ]
[ 뭔 소리야,, 난 교통사고 날 일이 없지,
운전면허가 없잖아, 헤헤헤 ]
[........................... ]
중년, 이제 노년을 향해가는 부부가 앉아서
아주 영양가 없는 소리들을 해가며
나머지 술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