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엄마에겐 딸이 최고다
아침에 눈을 떠 사방을 살피고서야
이곳이 내 방인걸 인식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2주가 지나가는데 지금도
가끔 잠에서 깨어나면 이곳이 어딘가
엄마집인지, 호텔인지, 제주도인지
착각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어젯밤 꿈엔 자매들과 함께 어느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산등성이에서
엄마랑 잡담을 하는 꿈을 꿨다.
일본으로 유학오기 22년 전에도 나는 성인이었고
그 당시 언니들은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는데
바쁜 시기였다. 지금은 자녀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고 마음적으로 여유로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 자매들이 모여 같이
자고 같은 공간에서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내가 합류할 수 있어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중심축엔 항상 엄마가 계셨다.
어디를 가던 엄마를 모시고 가려고 했고
엄마와 함께 움직이려 신경을 썼다.
올해 87세인 우리 엄마는 혼자서도
비행기를 타고 오실만큼 씩씩? 하시다.
물론 티켓팅은 자녀들이 해 드리지만
그 외에 모든 자신의 일은
스스로 다 해결하신다.
요즘은 80대도 정정하다는 말이 맞는 건지
다른 어르신들에 비하면 걷는 것도
사고 하시는 것도 그리고 먹는 것도
아주 젊고 움직임도 빠르시다.
큰 형부네 선산에서 4월 땡볕에 고사리를
따는데 나는 20분에 한 번씩 물을 먹으며
따기 싫어 쉬엄쉬엄 했는데
엄마는 1시간이 넘도록 쉬지도 않고
고사리 따는데 전념하셨다.
원래 난 산, 숲, 풀들을 썩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이런 나물채취엔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바로 지쳤는데 엄마는 짧은 시간에도
쇼핑백 가득가득 고사리를 따오셨다.
풀어진 신발끈을 질끈 매 드렸던 여동생은
언니집으로 돌아오자마다 피곤하시니
마사지하면서 한숨 주무시라며
온열 눈 안대를 해드렸다.
눈가가 서서히 따뜻해져 오니 슬슬 잠이
온다며 꽤 긴 시간 마사지기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편한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보며
우리 자매들은 엄마에게 딸을 4명이나 둬서
얼마나 행복하냐는 말을 했었다.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하고 위로 딸을 둘 낳고,
셋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러다
아들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어 네 번째
낳았던 게 딸인 내가 나왔고 터울을 두면
또 아들을 낳을까 싶어 6년이란
텀을 두었는데 또 막내 딸을 낳아
슬하에 1남 4녀를 두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뿐인 아들을 애지중지
엄마가 원하는 만큼 키워났지만 정작 엄마
곁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자식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걸 본인도 진작에 알고 계셨다.
하지만, 한국 엄마들의 숙명 같은
아들 사랑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엄마는 늘 오빠를 향한 마음을
못 이룬 첫사랑처럼 항상 애달프고
안쓰럽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하신다.
엄마와 찜질방에 갔던 날은 돌아가신 아빠
얘기를 하기도 하고 엄마는 경제적으로 힘이
들었지만 5명의 자식들을 키울 때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며 부족한 게 많아 미안한 마음을
자식들에게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휴식공간에 나와 엄마에게 양머리를 씌우고
언니들이 너무 귀엽다며 정말 엄마양처럼
보인다고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었다.
내가 두 번째 광주를 찾았던 날은 서울에서
여동생 내외가 내려와 목포에 가서
낙지를 배불리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블카를 탔었다.
그렇게 엄마와 시간을 보낸 자매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일본으로 큰언니는 제주도로
그리고 동생과 작은 언니는
다시 서울로...
엄마는 오늘도 내게 카톡을 하신다.
맛있는 거 먹고 깨서방이랑 재밌게
잘 지내라고...
우리 엄마는 딸이 4명이나 있어
주변에서 부러움을 많이 산단다.
그럴 때마다 괜스레 우쭐해진다는 엄마.
네 자매가 모여 엄마와 함께 웃고 떠들며
보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는
[ 효도 ]라고 말하기보단
[ 함께 ]라고 표현하고 싶다.
효도가 별 게 아닌 가족이 함께 모여
한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공유하는
그 시간들인데 그게 쉽지 않아서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 해야만이 빛이 나고
살아계실 때 만들어야만이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되는 시간들..
엄마와 그리고 자매들이 또 이렇게
[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