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는 하우스텐보스에서
호텔에 들어서자 우린 캐리어를 던져놓고는
5시부터 입장하는 티켓을 손에 움켜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올 크리스마스는 뭘 할까 고민하다 문득
티브이에서 나오는 하우스텐보스를 보고
여기다 싶어 무작정 예약을 했다.
너무 느닷없는 계획이어서 비행기도
좌석이 거의 없었지만 어렵게 구한
티켓으로 날아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8분이었다.
[ 깨달음, 근데 우리 전혀 모르잖아 ]
[ 여기 지도받았으니까
그냥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돼 ]
[ 가고 싶은 곳? 뭘 알아야 가지..]
호텔이 온통 크리스마스로 빨갛게 장식되어
있었지만 볼 틈도 없이 프런트에서 받은
지도를 휘익 급하게 훑었다.
[ 먼저 타워를 가자, 그리고 크루징, 그다음은
관람차를 타고,, 그리고 마지막은
온천을 가면 될 것 같아 ]
[ 이벤트 하는 시간을 봐야 되지 않아?
근데.. 마감시간 안에 다 볼 수 있을까? ]
[ 그건 무리야, 너무 넓고
테마별로 죤이 나눠져 있어서... ]
[ 그래, 그럼,, 보고 싶은 것만 보자 ]
비까지 내리는데 우린 우산을 받쳐 들고
먼저 6시에 시작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죤으로 달렸다.
캐럴이 울리고 트리에 점등이 되는 걸 보니
정말 크리스마스라는 실감이 났다.
깨달음도 연신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우린
메리 크리스마스를 서로에게 외쳤다.
[ 우리 그냥 무작정 왔는데 재밌다 ]
[ 맞아, 근데 우리처럼 아무 계획 없이 오는
사람들은 없을 거야 , 여기 완전
젊은 커플이랑 가족동반이네..]
[ 괜찮아, 우린 우리식으로 즐기면 되니까 ]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실컷 누리고 난 후
근처에 있는 관람차에 올라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우스텐보스는
넓고도 넓고 조명 불빛들이 화려했다.
[ 역시 위에서 보니까 다르네..]
[ 일본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잖아,,]
[ 디즈니도 큰데.. 여기도 엄청나다..]
우리 각자 지도를 펼쳐놓고
아트가든, 어드벤처파크, 플라워로드,
어트렉션타운, 타워시티..
암스테르담시티, 판타지시티 등으로
나눠진 구역을 살피며 왜 다들 아침부터
오려고 애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은 깨달음이 타고 싶다는 크루징을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는데 작은 배에
우리밖에 없어서 완전히 둘만을 위해
이곳을 빌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하우스텐보스의 야경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호텔 근처에서 내려 시간을 보니
8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놀아서인지
배도 고프지 않았는데 간단히
와인을 한 잔씩 하러 들어갔다.
[ 메리 크리스마스 ]
[ 근데, 우리 아무 준비도 없이 왔지만
진짜 재밌다.. 미리 검색해서 뭘 즐길 건지
알아두면 더 좋았을텐데 그냥 부딪히고
보자는 식인데도 항상 재밌게 지내는 거
보면 웃기지 ]
[ 응, 웃겨 ]
우린 각자의 일에 관한 것 외에
아주 즉흥적인 면이 많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동물적 본능으로만 움직일 때가 있는데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깨달음은 테마파크 오는데 젊은 애들이나
미리 계획 세우고 뭘 할 건지 정하겠지만
우리 같이 중년인 사람들은 그냥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기 위해 오는 거니까
굳이 계획 세울 필요가 없단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9시가 되니 화려했던 모든 조명이 꺼졌고
우린 온천까지 밤공기를 맡으며 뚜벅뚜벅 걸었다.
[ 깨달음, 올해는 정말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네 ]
[ 내일 오전에는 또 다른 모습일 거야 ]
[ 당신은 호텔 탐방 갈 거지? ]
[ 응 ]
놀면서도 일을 하는 깨달음은 내일 아침,
이 테마파크 안에 있는 모든 호텔들을
탐문할 계획이 있었다. 같이 갈 거냐고
확인하듯 묻는 깨달음에게 알겠다고 답했다.
온천에서 하루에 피곤함을 떨쳐버리고 호텔에
돌아오는 길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선 깨달음이
갑자기 블로그 이웃님께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해야 하지 않겠냐며 트리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 손만 흔들면 뭐 해, 말을 해야지 ]
[ 영상 메시지 보내라고? ]
[ 응, 이왕이면 영상으로 하면 좋잖아 ]
[ 왠지 부끄러우니까 사진으로 해 줘 ]
이제와서 새삼 뭐가 부끄럽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메시지는 이러했다.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고 작은 기적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되시길 기도할게요.
한 해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