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늙어도 공부를 하는 이유
지난주, 깨달음은 3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건축사 정기강습에 출석하기 위해
아침을 거른 채로 나갔다.
9시 30분부터 시작한 수업이
5시가 넘어서 끝나는 하루종일 수업을
들어야 하는 강습이었다.
건축사라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의무와 같은
강습으로 깨달음은 마지막 시간에 치르는
시험이 있어서 너무 싫어했다.
자기 나이에 시험을 치른다는 자체도 그렇고
그 시험을 위해 5센티정도 되는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짜증스럽다고 투덜거렸다.
해년마다 건축법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법률들도 생기다 보니
그것들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3년마다 공부를 해야 했다.
큰 화제나 붕괴사고 등이 터질 때마다
건축법상 보안해야 할 점들, 개선해야 할 점들이
바뀌거나 수정되는 것들을 외워야 한다.
강습을 마치고 저녁은 영양보충을 하고 싶다길래
깨달음이 좋아하는 곳에서 만났 다.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면서 책을 보고 하는데도
답을 찾지 못했다며 자기가 늙은 건지
문제가 어려웠던 건지 지금까지
강습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 책 보고 하는 테스트인데도 어려웠어? ]
[ 책이 얼마나 두꺼운데.. 못 찾아 ]
[ 그랬어....]
오븐에 구워진 굴을 맛있게 먹으면서
강습도 힘든데 더 싫은 건 강습소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 없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 내가 보낸 카톡 봤지? 식사사진? ]
[ 응, 먹는 게 걱정이긴 했어 ]
휴식시간 때마다
깨달음은 내게 카톡을 보내왔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지루하지 않도록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 당신은 먹는 게 중요하니까 화날만하지]
[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특히 시험 보는 날에
더 잘 먹어야 되는 거 아냐?
그게 안 되니까 화가 나지 ]
[ 알았어, 당신 수고했으니까 저녁은
내가 살 테니까 많이 먹어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깨달음이 수고한 날은
항상 내가 고생했다는 의미로
식사 선물을 한 것 같다.
깨달음은 스테이크보다 부드러운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해서 2인분을 주문해
빵이 아닌 구운 감자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 근데 시험 결과는 언제 나와? ]
[ 몰라, 한 달 후쯤인가...]
[ 혹시 불합격이면 어떻게 해? ]
[ 또 보면 되지..]
[ 근데 한 번도 불합격인 적 없었어]
대답을 건성건성 하는 걸 보니 합격, 불합격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2인분을 먹고 레스토랑을 나와 커피숍에서
달달한 초콜릿케이크와 카페오레를 마시며
무슨 공부든 젊었을 때 해야 하는데
나이 먹으니까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며
내게 자격증 시험이 언제냐고 물었다.
[ 5월 중순 ]
[ 공부는 잘 돼? ]
[그럭저럭, 근데 당신, 공부 좋아했어? ]
[ 아니.. 그래도 해야 할 때는 했지 ]
우린 나이를 먹어도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들을 나열했다.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고 자꾸만 멀어져 가는 세상에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은 만큼 괜찮은 어른? 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는 얘길 나눴다.
자기 계발이라는 거창한 포장은 필요치 않고
좀 더 성숙한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내재되어 있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어떤 공부든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자며 커피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