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일 관계로 한국분들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한국분들을 찾으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는 있다.
한인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한국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올 안에 만나야 할 사람들 목록에
늘 마음 한구석에 넣어두었던
한국인을 한 분 오늘 만났다.
내가 대학원시절과 결혼 생활을 했던 곳에서
알게 된 그 분에게 정말 오랜만에
라인으로 연락을 드렸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7년이 지나가는데
그분도 내가 떠난 그 다음해에
변두리 쪽으로이사를 했단다.
핸드폰을 두 번이나 바꾸면서 카톡에 내가
친구로 안 뜨길래 그냥 그렇게 잊고 있었다며
너무 반가웠다며 정말 케이가 맞냐고 되물었다.
[ 예전에, 몇 년 전에 코리아타운에서
우연히 만났잖아, 그때 내가 남편이랑 같이
어디 가는 중이어서 얘기를 못하고 그냥
헤어졌는데.. 그때가 언제야? ]
[ 아마 5, 6년 전쯤 일거예요..]
[ 어머,, 너무너무 반갑다..]
약속장소는 그분이 정하셨다. 집 근처
맛집이라며 내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는
와규(和牛)가 메인인 아담한 식당.
[ 케이짱은 하나도 안 늙었네..]
[ 젊은 척 꾸며 봤습니다.ㅎㅎ ]
[ 아니야,, 진짜 안 늙었다,,]
[ 별말씀을,, 언니도 그대로예요 ]
작년에 65세가 되면서 연금을 받고
있다는 미숙(가명) 언니는 나를 보니까
친척 보는 것처럼 좋아서 눈물이 나려 한단다.
그동안 아프지 않았냐,
깨서방은 잘 있냐,
학교는 계속 다니냐?
아드님은 미국에 아직 있냐?
교회는 어디 다니냐?
남편분은 아직도 골프 좋아하시냐?
한국의 가족들은 잘 있냐?
돈 많이 벌었냐?
서로에게 궁금했던 두서없는 안부 인사들이
끊임없이 나와 밥을 먹는 동안
젓가락을 몇 번 멈췄다.
[ 케이짱, 올해 몇 살이지? ]
[ 저도 50대 중반이에요]
[ 아직 젊다 ]
[ 아,, 그래요, ]
[ 그러지, 요즘은 백세시대, 아니 120까지 산다며 ]
미숙 언니는 자신의 부모님 얘길 하며
두 분 모두 가시는 걸 못 본 불효녀라고
위독하다고 할 때마다 열 일 제쳐두고
쫓아갔는데 결국 임종은 지키지 못했단다.
홀 아주머니가 런치타임이 끝났다는 안내표식을
들고 가게 입구에 거는 걸 보고 우린 식당을
나와 전철을 탔다.
미숙 언니가 갑자기 우리 집 근처로 가자고
그래서 노선변경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베이커리가 꽤 맛있는 곳이라 소개해서인지
미숙 언니는 인기 있는 빵과 수프까지 골랐다.
[ 저,,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 내가 다 먹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마 ]
난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을
고백하듯 하나씩 하나씩 말을 이어갔다.
듣고 있던 미숙 언니도 자기 얘길 하다가
내가 하는 일에 자기도 참가시켜 달라고 했다.
오늘 만나자고 했던 것도 약간 관련이 있었는데
미숙 언니가 흔쾌히 참가를 원해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노후를 어디서 보낼 건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제3국에서
보내는 것도 낭만적일 것 같다는 얘길 하다가
자연스레 남편분 얘기가 나왔다,
외동아들 결혼 시키면 남편과 이혼할 거라고
20년 전부터 계획세운 거라며 이혼해서
혼자서 잘 살 수 있게 나름 계획을 차곡차곡
세웠다면서 남편도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는 것
같아서 이혼할 때 다툼 없이 바로 할 것 같단다.
[ 아드님,, 여자 친구 있어요? ]
[ 아니. 작년에 헤어지고 지금은 없어,35살인데]
[ 결혼 안 하면 이혼 못 하시는 거네요 ]
[ 그런가? 아니야 결혼하겠지. 내가 결혼
하라고 막 부담을 주고 있거든.
국적 상관없다고 했지 ..]
저도 그런 조건을 걸고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그건 자기 생각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구실일 뿐이더라고 그래서 그냥
이혼할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 케이짱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
꽤나 놀란 눈으로 더 깊숙히 파고들려고해서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고 얼버무리고
여행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크루즈 여행의 장단점, 유럽에서 주의할 것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조식을 다시 한번
먹으러 가야 된다는 등등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카페를 나오기 전, 내 바뀐 연락처를
알려주고 우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빨래들을 걷어 깨달음 와이셔츠를
방에 가져다 놓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깨서방을 너무도 예뻐하시는 우리 엄마가
속상하지 않게 돌아가시면 편히 이혼을 해야지..
아니 내 통장에 50억정도 찍히는 날 개운하게
이혼을 해야지.. 혼자 생각의 모래성을
쌓아가는 동안
벌써 14년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거의 저버렸다.
마음을 바꾼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정말 이혼이 내게 현실이 다가왔을 때 깨달음과
헤어지고 나서 내 마음이 진정 편할까라는
의문에 초첨을 맞춰 열 번, 백 번 거듭
생각해 봤는데 결코 편히 두 발 펴고
잠들지 못할 거라는 쪽으로 기울렀다.
나 편하고 싶어 이혼해 놓고도
불편한 마음이 계속된다면 무슨 소용 있나
싶어 그냥 이 상태로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냈던 것 같다.
블로그를 6개월 쉬는 동안 깨달음에
안부를 걱정하면서 혹 헤어지신 게
아니냐고 에둘러 물었던 메일도 받았다.
헤어짐이 운명이라면 언젠가 헤어질 것이고
아니라면 또 지금처럼 투닥거리며 살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직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