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이번 생은 망했을지 몰라도

일본의 케이 2022. 12.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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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료를  만났다. 동료이면서 동기인

그녀는 여전히 차분했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가끔씩 메일로

서로의 안부와 생사를 물어와서인지

3년 만의 만남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술을 썩 즐기지 않은 그녀가 오늘은

이자카야에서 보자고 하는 건

뭔가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코로나 얘기를 시작으로 요즘 가장 핫한

월드컵 얘기까지 두서없는 대화가 오갔다.

[ 정 상, 한국 다녀왔어? ]

[ 응, 코로나로 못 가다가 10월에 다녀왔어 ]

[ 그랬구나, 아,,남편분도 잘 계시지? ]

[ 응, 잘 있어 ]

그녀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잠시 소개를 하고는 동기들 소식 전했다.

협회지를 보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동기들 근황을 난 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

누가 교수가 되고 누가 어디로 전직을 했는지

나와 상관없다 싶어 다른 화제를 꺼냈다.

[ 호소키(細木) 상은 재혼 안 해? ]

[ 재혼?,,그런 건 두 번 다시 안 할 거야.

그리고 정 상이 결혼 같은 건 하는 게 아니라고

나한테 맨날 설교했잖아,,]

[ 아,,그랬지. 그냥 애인만 만들어서 살아,

그게 딱 좋아 ]

[ 나도 그렇게 생각해 ]

 

 호소키 상은 빠르면 내년쯤 미국으로

이민을 갈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나이 50이 넘도록 시간강사만 하고 있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다 때려치고 미국에서 살까 싶단다.

[ 난, 걸릴 게 하나도 없어. 미혼에다가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고 하니까

그냥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일본어 선생님

같은 알바나 보란티어를 하며 남은 여생을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 나쁘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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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을 살아보니까 더 늙기 전에 넓은 세상에

나가 영혼이 시키는대로 살아보는 것도

이번 생에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일본어교육능력시험

공부를 하고 있단다. 

 [ 완전 계획을 다 세웠네 ]

[ 응, 어느정도는,,,]

[ 근데.. 영혼이 시키는 대로라는 게 뭐야? ]

[ 음,, 뭔가 자연인처럼 마음이 시키고

몸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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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좀 더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뭔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을 깨고 다시 제2의 인생 같은 걸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단다.

[ 무슨 계기가 있었어? ]

[ 계기라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이

싫증 났자고나 할까..]

계기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나와 그녀는 같은 길을 걸어왔고

좌절이라기보다는 포기를 택하면서

자신과 타협하는 그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 정 상은 한국 안 돌아 가? ]

[ 음,, 아마 2년 후에나 갈 것 같아 ]

[ 완전히 돌아가는 거야? ]

[ 완전히는 힘들고,, 왜냐면 남편이 있잖아,

이혼을 하면 모를까,,]

[ 그럼 왔다 갔다 할 거야? ]

[ 그러겠지. 근데 한쪽으로 정리를 할 생각이야.

그래서 남편이 한국어 배우고 있어 ]

[ 그래? 그럼 깨달음 씨가 한국생활을 하게 되네 ]

[ 그렇게 되겠지..]

그녀는 이번 생의 마지막은 미국이 될 거라며

그전에 한국에도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내게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 나,,, 이번 생은 망했으니까,, 그냥

세계일주나 하면서 늙어갈 생각이야 ]

[ 그것도 멋있다. 근데 왜 망한 거야? ]

[ 그냥,, 이번 생은 재미없는 게 많았으니까...]

[ 뭐가 그렇게 재미없었는데? ]

[ 모든 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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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파고드는 그녀의 질문이 당혹스럽긴

했지만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 나도 그래서 미국으로 간다는 거 아니야.

남은 노후는 좀 멋지고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서 ]

점원이 2시간제가 곧 끝난다며 라스트 오더를

하라고 메뉴판을 가져오길래 우린 계산을 하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남은 얘길 나눴다.

 

인간관계는 늘 복잡하다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행동패턴이나 대화, 대인관계에 있어서 문제점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사회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타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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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언제쯤 미국에 갈 것 같냐고 물었더니

일본어 교육 자격증도 따고 

영어도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미국에 이모님이 살고 계시기에 심리적인

부담이 덜하다며 마음을 굳히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단다.

[ 근데, 정 상,, 언제부터 커피 마셨어?

원래 안 마시지 않았어? ]

[ 응,, 카페인 때문에 안 마셨는데

그냥 마시기로 했어,, 나도 호소키 상처럼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이나 고정관념

같은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가끔은 남사친이 더 편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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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나이 50이 되고서야 인간이

변하기 시작한다며 크게 웃다가 

이번 생은 망했는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은

그냥 느슨하게 풀어놓고 자유롭게 살자며

우린 커피로 건배를 했다.

꿈을 접은 채 자유라는 타이틀을 걸고

떠나려는 건 새로운 자신을 찾고 싶다는

마지막 절규 같아서 코 끝이 찡해왔다.

그녀가 나 같고 내가 그녀 같아서...

 

내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17년전, 일본어학원을 다닐 적, 알바비가 나오는 날이면 룸메이트와 약속이나 한듯 손을 잡고 규동집(소고기 덮밥)으로 향했다. 한그릇에 280엔(한화 약3천원)밖에 하지 않았지만 요시노야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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