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일본에서 만나다
지난주 주말을 시작으로 이곳은
추석(오봉 お盆) 연휴에 들어섰다.
한 달 전부터 마트에서는 오봉에 필요한 것들이
눈에 띄였지만 우리 부부는 언제나처럼
한 번도 그것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의 오봉은 우리에 추석과도 별반
차이가 없이 성묘를 가거나 돌아가신
선조의 령을 모시는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혼백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소나 말을 비유한 가지나 오이에 나무젓가락으로
다리를 만들어 혼령이 타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두고 집 앞에 등불을 켜놓는다.
요즘은 오이, 가지가 모형세트로 준비되어
있고 조상님 상에 올리는 과일, 야채들도
작고 소박하게 포장되어 나와있다.
오봉이 끝나면 그 혼백이 그들의 세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등불을 바다나 개울에 띄워보낸다.
또한 그 기간에 먹는 음식으로는
오무카에당고(お迎え団子)라는
흰떡과 장수와 좋은 일이 이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소면을 먹기도 하며,
오하기(おはぎ)라는
팥 안에 거칠게 으깬 찹쌀떡을 먹는다.
깨달음은 휴일이지만 정산을 하기 위해
회계사를 만나러 아침 일찍 나갔다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자면서
영화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 몇 시 상영인데? ]
[ 지금 바로 화장도 하지 말고 나가서
전철을 타야 상영 시간에 맞을 거야 ]
[ 무슨 영화인데? ]
[ 이순신 영화 ]
[ 왜 미리 말 안 했어? ]
[ 빨리,나와,티켓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
[..........................|
영화관에 도착해 자리에 착석을 하자
예고편 흘러나왔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노량을 한국에서 상영된 건 어렴풋이
기억되는데 일본에서 상영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 못했다.
일본인 시각에서 봤을 때, 결코
재밌는 주제는 아니라는 내 생각이
편협했던 건지 상영관엔 관객들이
만석에 가까웠다.
[ 깨달음,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 응,,영웅 이야기니까,, 아저씨들이 많네 ]
[ 그러네...]
평균 연령 60대쯤에 아저씨들이 대부분인 건
모두가 깨달음과 같은 생각?으로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근처 이탈리안에서
저녁을 먹으며 깨달음이
영화평을 하기 시작했다.
[ 꼭 그렇게 까지 해서 이겨야만 했을까?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잖아,,]
[ 어설픈 승리는 승리가 아니지,
밟을 땐, 확실히 밟아줘야지..]
[ 오,,이순신 장군하고 똑같네.. 집요해..]
[ 무슨 일이든 집요함과 끈질김이 없으면
마무리가 안 되는 거 아니야? ]
[ 그러긴 하는데.. 지난번 이순신 영화보다
이번 영화가 더 뭐랄까,, 집착 같은 게 보였어,
승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상당히
지혜로운 사람임이 틀림없더라,
거북선 모양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멋있긴 하더라,, 수염이랑,,, 그리고 역시
양반, 장군에게서 풍기는 품격 같은 게,
그 주인공이 잘 표현한 것 같아..
모가디슈에서 나온 사람이잖아,,]
[ 응,,]
깨달음 눈에는 배우 송강호와 이미지가
닮았지만 송강호에게 없는 무게감이
김윤식 배우에게 느껴졌단다.
[ 한국 사람들도 이 순신 좋아하지? ]
[ 물론이지 ]
[ 광화문에 동상도 이순신이잖아 ,
왜 인기가 있을까,,일본에 이겨서? ]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깨달음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어 바로 검색을 했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기간 중에 벌어진
수십 회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어 실력자이고
둘째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정의롭고 바른 인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자신의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위헤 바친 숭고한 리더십이
좋아하는 이유라고 설명해 줬다.
[ 완전,, 멋있다..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래서
영화를 계속 만드는구나 ]
[ 더 멋진 말 알려줄게 ]
[ 노량해전이 시작되기 전날 밤에
이순신 장군이 배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이 원수들, 모조리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라고
기도했대 ]
[ 오,무서워,,, 일본이 질 수밖에 없었네..
대단하다. 역시 내 이름을 순신으로
했어야 했어..]
[ ............................ ]
자기가 나름 많은 고심 끝에 만든
윤 신(尹 信)이라는 이름이 이제 와서
뭔가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깨달음.
우린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 순신 장군
얘길 나눴고 깨달음은 자기에게 딱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찾겠다고 한국의 장군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내일모레가 광복절인데 일본에서 본
이순신 장군은 내게 많은
생각을 낳게 했다.
내 지금 사는 곳이 일본이지만
바르고 올곧게 그리고 정의롭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