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인간, 그리고 스킨십
아침을 먹고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호텔을
나오자마자 마침 리무진이 멈추는 걸
보고 망설임없이 빈 속으로 바로 올랐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좌석은 만석이었고
우린 아무말없이 바로 눈을 감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다음은 호텔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내렸다.
깨달음이 이번 한국행에서 계획했던
리조트 견학을 하기 위해서었다.
곳곳마다 구석구석 사진을 찍으며
도대체 이렇게 큰 규모의 리조트를 짓는데
누가 투자를 했는지 제일 궁금해했다.
일부만 일단 둘러보고 아침을 먹는데
꼬막 미나리무침을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솥밥을 하나 더 주문했다.
뜨거운 솥밥에 꼬막을 넣고
사정없이 비벼 먹다가 미나리만 골라
먹기도하고 김치와 고추장을 섞어서
자기만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배 불리 먹고 나와 다시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동여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곳에 와서 직원들과 하룻밤 지내면서
부대 시설들을 이용해 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내게 숙박료가 대략 얼마정도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다음은 파라다이스 시티호텔로 옮겨가
또 동영상을 찍었고 나는 광장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깨달음을 기다렸다.
밖에 나가서 전체 컷을 찍기도 하고
화장실내부까지 인테리어로 놓여있는
조각상들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 서울로 돌아온
우린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30분쯤 잠을 잤나 싶은데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깨달음이 비요뜨와
소금빵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 배 고팠어? ]
[ 아니.. 잠이 안 와서...]
[ 비요뜨에 찍어 먹을 거야? ]
[ 응, 그렇게 먹어보려고 ]
호텔로 돌아오기 전에 만두와 녹두부침,
김치말이 국수를 먹었는데 소화가 다 된 모양이다.
깨달음이 입술에 비요뜨를 묻혀가며
먹는 동안 나는 외출 준비를 하면서
어딜 갈 거냐고 했더니
[ 종로]라도 답했다.
종로 얘길 왜 안 하나 했는데 어김없이
이번에도 종로의 밤거리를 누리고 싶다고 한다.
[ 분위기가 하나도 안 바꿨어,, 포장마차도
그대로고,,근데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진 거 아니야? ]
[ 예전에도 젊은 층이 많았지..]
[ 뭐 먹고 싶어? 깨달음? ]
지난번에 와서 먹었던 파스타집을
찾아가겠다고 해서 갔는데 공사 중이었다.
확장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는지 안내가 적혀있지 않아
알 수가 없었고 그냥 근처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와인을 한 잔씩 하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뭘 먹고 있는지
서울은 안 추운지 걱정하셨다.
깨달음이 손을 흔들며 [ 술 먹어요 ]라고
했고 엄마는 깨서방 먹고 싶은 거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먹고 가라고 하신다.
또 엄마는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 집에 다
퍼 주고 갔는데 정작 당신은 우리들에게
준 게 없어서 마음이 쓰인다 하셨다.
[ 깨달음.어제 아침에 엄마한테 봉투 건넸잖아,
왜 당신이 꼭 주고 싶다고 그랬어? ]
[ 일본은 88살(米寿베이쥬)이 되면 장수하신 걸
축하하는 파티를 하니까 축하의미로
내가 드리고 싶었어 ]
[ 아,,그랬구나.. ]
한국에 갈 때마다 엄마 용돈을 따로 챙겼던
깨달음에게 언젠가부터 못하게 했다.
내가 매달 적지만 보내 드리고 있으니
당신은 하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깨달음이 친정엄마에게
용돈 드리는 게 난 불편했다.
나도 같이 드릴 시부모님이 안 계시는데
친정엄마만 받는 게 뭔가 형평성에
어긋난 것 같아서 괜찮다고
내가 대신 드린다고 말렸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드리고 싶다고 했다.
[ 작년에 드린 용돈도 당신이 내게 다시
돌려줬잖아, 그러지 마,, 나도 드리고
싶으니까 드리는 거야 ]
[ 그래,, 알았어 ]
내가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두 분에게 각자 드렸는데 그거에 비하면
장모님은 한 분이니 용돈이 적게 나가는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친정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시어머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살아계실 때 좀 더 살갑게 해 드릴 걸,
좀 더 많이 안아드릴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자꾸 들어서
깨달음이 잘하는 걸 보고 있자면
죄송한 마음이 쌓여간다.
내 이런 속마음을 와인잔을 비워가며
얘길 하다가 인간에게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갑자기 토론을 했고,
죽으면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게 가장
큰 슬픔 중에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에 장모님을 만나면 허그를
진하게 하겠다는 깨달음.
결론적으로 스킨십이란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친밀한 수단이니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
행동하자고 합의를 보고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우린
쭈뼛쭈뼛을 손을 잡았다.
왜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술기운에..
[ 몇 년만이야? ]
[ 몰라,,근데 엄첨 어색하다,,]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그렇게
한국에서의 하룻밤이 또 지나갔다.